산통을 지나온 나는

이제 완전히 알겠다

꽤 오래전부터 

아득한 먼 곳에서부터 

그냥 나를 찾아온 것을…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이 비어 있을 때가 많았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아 집을 몇 바퀴 돌고 가까운 밭에서부터 먼 밭까지 엄마를 소리쳐 부르며 쏘다니곤 했다.…그렇게 돌았는데도 부모님을 찾지 못하고 적막한 빈집으로 돌아오면 왠지 외로워지고 서글퍼지고 급기야는 무서움에 사로잡히곤 했다. 나는 식구들이 나만 버리고 모두 어디론가 떠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을 훌쩍이다가 까무룩 낮잠이 들었다.” 김도연 산문집, <영(嶺)> 중에서 

최근 첫 시집을 펴내게 된 나는 몇 작가들이 책을 내며 쓴 ‘산통’이라는 표현을 이해하게 됐다. 꺼내 놓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리라. 살과 사랑과 나를 버무려 꺼내 놓는다는 것은. 그런데 상기된 쑥스러움 한편에 생긴 질문 하나는 내 몸을 쑥 빠져나간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내 몸을 빠져나간 시편들이 무엇으로부터 출발하여 무엇으로 맺어졌는가 하는 물음이 시집을 출간하는 내내 들었다. 그러다 문득 필사 노트에 끄적여 놓은 한 소설가 산문집 발췌 부분을 발견하고 진통 끝에 쏟아져 나온 나의 시들을 ‘아득함의 시’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경상북도 봉화는 그 이름만으로 막막한 ‘두메산골’이다. 사춘기를 막 지나고 학업 때문에 홀로 도시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 아득한 곳에서 살았다. 마을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산새와 짐승 소리뿐이었고, 보이는 것은 초록과 산뿐이었다. 친구들이 갑갑해 하는 그곳이 어린 나는 싫지가 않았다. 오히려 눈이 내리면 하염없이 고립이 되고 마는 그 가마득한 곳이 애틋하고 좋았다. 어린 시절, 마루에 앉아 바라다보던 먼 앞산의 흐린 실루엣이, 새벽 허공에 돌던 산새 소리가, 오후 하굣길 비포장도로의 마른 공기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통된 느낌이 있었다. ‘산통’을 지나온 지금에서야 생각해보건대 그것은 가마득한 두메산골이 주는 설명할 길 없는 ‘아득함’이었다. 적막한 산, 두메 속 고립, 그 아득함이 시가 되어 있었다. 산통의 밑천은 봉화가 어린 시절 내 몸에 쌓아 놓은 아득함이었다. 그 아득함이 좋았던 소녀에게 시는 당연히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작년 말 만난 어떤 시인은 “작가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산천과 사람들에게 빚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고향을 떠난 이들이 자신을 키운 곳으로 귀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나는 시를 쓰면서 내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한 권으로 묶인 시편들을 잇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설명하고 싶었다. 왜 시를 쓰게 되었는지, 왜 시여야만 했는지 완전하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그 답 역시 시에서 찾았다. 

최근 재개봉한 영화 ‘일 포스티노(1994)’에서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다시 만났다. 유명 시인의 우편물을 배달하게 된 주인공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파블로 네루다의 시, ‘시(詩)’ 중에서 

사람들은 자주 물어온다. 왜 시를 쓰게 되었느냐고. 산통을 지나온 나는 이제 완전히 알겠다. 꽤 오래전부터, 아득한 먼 곳에서부터 그냥 시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불교신문3291호/2017년4월19일자] 

신효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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