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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머문 그 곳] <25>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꽃송이가 금당과 전각 되어 옛 가람을 채우다
언젠가 벚꽃엔딩을 이곳에서 맞이하리라 다짐했었다. 그 약속을 지킨 행복한 여정이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시작됐다.

어디를 가냐 보다 누구랑 가냐가 중요하다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디를 언제 가냐’가 화두같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풀어내고 싶은 숙제가 되기도 한다. 몇 해 전 익산 왕궁리에서 마주한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이 그러했다. 탑의 모습은 네 모서리에 8각으로 깎은 주춧돌을 기둥삼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큰 네모난 돌을 지그재그로 맞물리게 여러 층 쌓아 올려놓아 목조탑 형식을 재현했다. 조성 시기는 백제말·통일신라·고려초기까지 다양한 견해가 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가녀리면서 정제된 조형미가 일품인 백제의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닮아 백제계열의 석탑임을 짐작케 한다. 외형상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상대적으로 많이 크다는 것이다. 높이가 9m에 이르고, 큰 키에 걸맞은 당당한 체격을 가졌다.

1965년에 해체복원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유물이 나왔을 뿐 아니라, 석탑 밑에서 건물의 기초가 발견된다. 이 건물의 기초는 목탑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렀다면 이 석탑의 자리에는 목탑이 먼저 존재했다는 것이 된다. 

①익산 심곡사 전경. 약사여래부처님이 도량을 아우르고 있다.

또한 석탑이 서있는 왕궁리 유적은 1989년부터 현재까지도 발굴조사가 계속되고 있는 백제의 주요유적이기도 하다. 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백제 무왕때 왕궁으로 건립되어 운영되다 후대에 왕궁의 중요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찰이 건립된 것으로 확인됐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의 멸망, 그 후 어떤 이유로 왕궁이 헐어지고 어떤 변천을 통해 사찰이 건립되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홀로 남겨진 석탑은 거대하고 빼어난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폐사지의 쓸쓸함을 메울 길이 없어 보였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주변의 제법 커다란 벚나무들이었다. 화사한 봄날의 만개한 벚꽃이라면 높이가 9m인 거대한 석탑 주변 여백을 메워 줄 것 같았다. 이번 여정은 미뤄 두었던 기억 속 약속을 지키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②해체보수 과정에서 다량의 보물을 쏟아낸 심곡사 칠층석탑.

포도송이 같은 탐스러운 벚꽃의 절경은 3일 내외로 찰나에 가깝다. 같은 익산지역이라도 도심과 외곽 벚꽃의 개화 시기는 차이가 난다. 다행히 왕궁리 유적전시관이 바로 옆에 있어 사무실로 연락해 시기를 맞출 수 있었다. 벼르고 벼른 그날이 지난 10일 이었다. 올해는 서울 여의도 윤중로와 석촌호수의 벚꽃 만개시기와 같았으니, 다음 봄에 이것을 찾을 사람들은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왕궁리 유적에서 도드라지게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이 석탑이 유일하다. 이 날 마주한 왕궁리 오층석탑은 화사한 벚꽃에 묻혀있었다. 주변에 흔적만 남아 있는 금당과 전각들의 공간을 이날은 벚꽃 송이들이 메워주었다. 

몇 해 전 피어난 망상 한 소절을 놓치지 않고 따라왔던 여정은 미륵산 심곡사로 이어졌다. 차량으로 20분 거리로 아주 작은 마을을 거쳐 오르는 정겨운 산사다. 나지막한 부도밭이 먼저 반겨준다. 크지 않은 사격에도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헌데 제법 큼직한 공연장이 사찰에 자리하고 있다. 정정렬 명창 득음기념 ‘떡목 공연장’이다. 정정렬(1876~1938)은 근대 판소리 5대 명창으로 불린다. 선천적으로 판소리를 하기에는 치명적인, 목성이 탁하고 음량이 부족해 상성(上聲)이 막힌 ‘떡목’을 갖고 있었다. 익산 출신인 정 명창은 어린 시절 소리에 입문했으나, 50세가 넘어 서울의 중앙무대로 진출해 판소리 애호가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정 명창은 타고난 목소리는 좋지 못했지만 성음의 장단, 다양한 조의 변화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본래의 장단보다 길게 늘이거나 앞당겨 불러 음악적 재미를 극대화했다. 심곡사는 그를 기리며 2012년 경내 떡목공연장을 개관하여 매년 가을이면 산사음악회를 개최한다. 호젓한 산사를 2000여명이 찾아 올만큼 인기가 좋다. 또한 국악인들이 소리를 연마하기 위해 이곳을 찾기도 한다.

③경내 입구 키 작은 나란한 부도들이 정겹다.

법당은 이보다 위에 있다. 근래에 조성한 약사여래부처님이 도량을 아우르고 있다. 법당 앞에 칠층석탑이 조성되어 있는데 석탑이 기울어져 2012년 보수정비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 초기 불상 7점과 이 불상들을 안치한 금동불감 1점이 발견되어 2016년 보물 제1890호로 지정되었다. 이외 통일신라 불상 2점도 함께 발견됐다. 그 옆으로 명부전이 있는데 문이 활짝 열려있어 그 안에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동자상, 금강력사 등 25구의 권속을 볼 수 있다. 조선후기에 조성된 흙으로 빚은 소조상으로 보존상태가 좋아 다양한 표정에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④정정렬 명창을 기리는 떡목공연장.

내려오는 길에 경내에 찻집이 있다. 주문을 받는 사람도 돈을 받는 사람도 없다. 찻집 이름은 구달나(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다. 여러 종류의 차와 다구가 준비되어 있다. 나무데크로 꾸민 야외 자리도 마련되어 있어 산사의 풍경을 차와 함께 음미하기 제격이다. 한켠에 보시함이 놓여 있는데, 이곳에 모여진 돈은 지구촌 이웃들에게 희망을 나누는 지구촌공생회 후원에 사용된다. 

⑤심곡사 무인 찻집 ‘구달나’. 호젓한 산사의 정취를 맘껏 즐기기에 제격이다.

[불교신문3291호/2017년4월19일자]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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