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로 살자] ⑥ 신화의 거품 걷어내고 읽는 인간 붓다의 삶

 

지금은 말법시대 또는 

‘중생일 뿐’이란 한계의식

비주체적 타율적 숙명론

스스로 붓다 되는 삶 막아 

부처님의 출가는 

개인의 실존적 고뇌 넘어

사회의 모순 해결 위한 길

남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인간 붓다’의 의무  

흔히 세속을 버린 붓다의 첫 번째 출가에만 주목하지만, 사실은 기성 종교문화의 굴레를 벗어난 두 번째 출가, 즉 중도의 길이야말로 출가의 진면목이다. 사진은 종단의 구족계 수계산림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모든 경전은 삶의 현장에서 설해졌다. 현장에서 펼쳐진 붓다의 삶과 역할을 기록한 것이 경전이다. 따라서 그 분의 삶과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교리 이해는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아함경>에는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보는 자이고,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는 자”라고 하였다. 이 때의 ‘나’는 바로 역사적 붓다의 삶을 말한다. 현장 속에서 펼쳐진 붓다의 삶과 역할을 바르게 이해해야만 붓다가 설한 진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대부분의 불교경전에는 붓다의 인간적 삶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지 않다. 붓다의 일생을 기록한 <불본행집경>이나, 붓다의 삶을 한편의 서사시로 쓴 <불소행찬>(붓다차리타) 같은 기록물은 붓다의 인간적 모습을 생생히 옮기기보다는 그 분의 특별하고 거룩한 모습을 다분히 신화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나라별로 문화권별로 붓다의 삶은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었다. 대승불교권인 동아시아의 불화(佛畵) 가운데에는 붓다가 부왕 숫도다나(정반왕)의 관을 매고 가는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성도이후에도 관을 매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을 정도로 효자였음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남방 경전에는 전혀 없는 이야기다. 또한 대승경전에는 붓다가 왕과 귀족들을 대상으로 법을 설할 때 자신의 7대조까지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붓다 자신이 귀한 가문의 후손이며, 순수한 혈통임을 언급하는 이러한 묘사는 유교가 지배하던 동북아시아의 사회질서를 고려하였던 흔적이다. 붓다가 신분차별을 부정하였던 역사적 사실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스리랑카, 미얀마 등 남방불교에서 붓다는 석가모니 붓다 한 분 뿐이다. 그러므로 보통사람인 우리는 붓다가 될 수 없으며, 성문 아라한이 되는 것이 수행의 궁극적 목표라고 한계를 짓는다. 상대적으로 신화적 기술이 적고, 인간 붓다의 체취가 많이 남은 남방의 니까야에서조차 붓다는 이렇게 범접할 수 없는 외경의 대상이 되었다. ‘붓다로 돌아가자’는 기치로 생겨난 대승불교권 또한 마찬가지다. 56억7000만년 후 사바세계에 나투실 미륵부처님 이전은 붓다가 없는 시대이므로, 보통사람인 우리는 금생에 붓다될 꿈을 접고 먼 훗날 미륵부처님 시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신화적 기술은 신화가 지배하던 시절 불교가 널리 퍼지는데 기여했지만, 역으로 우리를 인간 붓다의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였다. 붓다를 이렇게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로 인식하는 한 우리는 붓다로 살기가 아니라 붓다 되기, 그 마저도 기약할 수 없는 먼 미래의 일로 미뤄놓게 된다. 어떤 이들은 “붓다 당시의 제자들은 근기가 높아서 금세 성자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법이 쇠퇴한 말법(末法) 시대이고, 중생들의 근기가 낮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불교사 2700년 내내 지금은 말법시대라는 한탄이 없었던 적이 없다. 봉건시대 왕들이 스스로를 부처라고 칭하는 것을 막고자 그런 장치를 두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 스스로를 이렇게 깎아보는 비하하는 붓다가 그토록 타파하고자 하였던 비주체적이고 타율적인 숙명론과 다름없다. 

싯다르타는 2700년 전 인도에서 우리와 다름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비록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났다고 하나,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에 비하면 훨씬 열악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그는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를 잃고 계모의 손에 자랐다.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겠지만 허무함과 죄의식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붓다의 전기에서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을 출가동기로 설명한다. 부왕 숫도다나가 왕자를 환락과 풍요에 젖어 살도록 하였지만, 어느 날 우연히 성문 밖으로 나간 싯다르타가 늙은이, 병자, 죽은 이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고, 북문 밖에서 출가 사문을 본 후 출가를 결심하였다고 한다. 당시 석가족은 코살라국 내의 작은 부족국가였다. 아무리 귀하게 자랐다 해도 15세가 될 때까지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싯다르타는 아홉살 때 농경제에서 살벌하고 비정한 약육강식의 현장을 보며 깊은 연민의 명상에 들 정도로 감수성이 탁월한 아이였다. 그런 싯다르타가 청소년기인 15세 때 성 밖의 버려지고 비참한 삶, 병듦, 늙음, 죽음을 접하게 됩니다. 그 참상을 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버려진 사회적 약자들의 생노병사에 한없는 연민을 느꼈고, 개인의 실존적·사회적 고통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끝없이 물어야 했다. 붓다의 출가동기인 ‘사문유관’은 싯다르타가 생노병사 자체를 처음 접했다기보다는 약자들의 처참한 생노병사, 즉 인간의 실존적·사회적 고통에 대한 물음으로 해석되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출가할 때 싯다르타의 나이는 29세였다. 사문유관이 있었던 15세 때 출가를 결심한 후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까지는 14년이라는 긴 공백이 있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일까? 붓다 당시 보통 사람들은 10대 후반에 출산을 하였다. 더구나 왕위를 계승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붓다의 결혼과 출산은 일반인보다 매우 늦었다. 이 때문에 붓다가 청년기에 왕궁을 떠나 다른 삶을 살다가 온 것으로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청소년~청년기에 해당하는 14년의 긴 시간 동안 싯다르타는 자신의 삶의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과 방황을 했다. 그가 깨어난 자, 붓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수억겁 동안의 전생에 갈고 닦아 신비한 능력을 갖고 태어난 특별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젊은 날 긴 시간동안 온 존재를 바쳐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성찰하고 고뇌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붓다가 애초부터 우리와 다른 별종의 인간이었다고 취급하는 것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본래부터 누구나 깨어난 자 붓다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던 불교의 대의에도 어긋난다. 

붓다의 출가이유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천착해야 한다. 보통 생노병사라는 개인의 실존적 고뇌 때문에 출가했다고 하는데, 이는 너무 단순한 해석이 아닌가 한다. 개인의 실존적 고뇌 때문에 집을 떠난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무척 많았다. 더구나 온 나라가 그렇게 말리는데도 처자식을 버리고 출가한 붓다의 출가동기가 그저 제 삶의 실존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면, 너무 궁색해진다. 또한 인류사를 전환시킨 붓다의 위대한 깨달음의 삶과 인과 관계로도 잘 연결되지 않다. 앞서 사문유관을 사회적으로 소외된 성문 밖 사람들의 삶과 고통에 대한 연민으로 해석하였듯이, 붓다의 출가는 이러한 연민심을 바탕에 두고, 사람들과 세상의 고통에 대한 아픔과 고뇌, 또 그것을 해결하고픈 사회적 열망 때문에 출가를 결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싯다르타의 출가이유가 이렇게 설명되어야 오늘날 출가하는 스님들이 어떤 문제의식으로 출가하고, 출가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도 명확해질 수 있다. 

출가란 싯다르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불본행집경>은 “온 세상이 붙잡아도 나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기 위해 반드시 출가하겠다. 그리고 그 길을 찾으면 반드시 돌아오겠다. 나는 내 부모형제를, 나아가 온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싯다르타는 크게 두 번 출가한다. 세속을 버리고 기존의 출가를 선택한 것이 첫 번째 출가이고, 출가 후에 인도종교사회에서 제시된 최고의 길이었던 선정의 길과 고행의 길, 두 가지 단견의 길을 경험해 본 후 미련 없이 버리고 새로운 중도의 길을 선택한 것이 두 번째 출가였다. 우리는 흔히 세속을 버린 붓다의 첫 번째 출가에만 주목하지만, 사실은 기성 종교문화의 굴레를 벗어난 두 번째 출가, 즉 중도의 길이야말로 싯다르타를 깨달은 자, 붓다의 삶으로 이끌었던 위대한 출가였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불교신문3291호/2017년4월19일자] 

도법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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