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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1 (2017).5.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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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맥박 다시 뛰게 하는 숨결

뭉클

신경림 엮음/ 책읽는섬

‘시력 60년’ 신경림이 선별한

그립고 가슴 뭉클한 산문선집

 

이상에서 법정스님, 손석희까지

근현대 명사 수필 40여편 수록

 

“오래전 가슴 뭉클하게 만든 글

지금 읽어도 감동이 여전하다”

폐결핵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소설가 김유정(1908~1937)가 친구에게 돈을 부탁하는 간절한 편지에 피를 토하듯 아프게 다가온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쏙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김유정의 ‘필승 전(前)’ 중에서

일생을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한 법정스님(1932~2010)의 글에서는 도반과의 일화를 통해 생을 향한 따뜻한 결기가 느껴진다. “수연스님! 그는 정다운 도반이요, 선지식이었다. 자비가 무엇인가를 입으로 말하지 않고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그런 사람이었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 때로는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듯이, 그는 사소한 일로써 나를 감동케 했다.…그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로 떠오른다.” 법정스님의 ‘잊을 수 없는 사람’ 중에서

햇빛과 함께 시작되는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손석희 JTBC 뉴스룸 앵커의 우울한 다짐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햇빛과도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 밝음으로, 또한 감내할 수 있는 우울함으로…그것이 나의 어릴 적 소망이었다. 중간쯤에 와 되돌아본 나의 삶이 내가 소망했던 것과는 이만치나 동떨어져 있는 것이라 해도 나는 내 바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제 겨우 세상에 눈을 뜬 내게 한 번쯤의 ‘관대함’은 가능하지 않을까. 삶이란 것이 늘 밝은 것도. 견뎌낼 만큼의 고통만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라면.” 손석희의 ‘햇빛에 대한 기억’ 중에서

민중의 삶과 고뇌를 노래하며 ‘국민시인’으로 꼽히는 신경림 시인이 마음의 책장 속에 간직해두었던 여러 수필들을 모아 펴낸 책 <뭉클>에서 인용한 글들이다. 시력(詩歷)만도 60년을 훌쩍 넘긴 세월 동안 그가 만난 많은 글 중에서도 유독 지워지지 않는 그립고 가슴 뭉클함을 느꼈던 글 40편을 모았다.

이상, 정지용, 박목월, 채만식 등 우리의 근대문학을 풍성하게 수놓았던 주인공들은 물론 법정스님, 김수환 추기경, 이해인 수녀, 문익환 목사 등 종파를 초월해 존경받는 종교인들, 최인호, 류시화, 박형준, 박민규, 함민복 등 현대 한국문학계에서 사랑받는 시인과 작가들, 유홍준, 장영희, 신영복, 이어령, 이중섭 등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고수들의 날카롭고도 진중하며 내밀한 산문이 담겨 있다.

이 글들에서 느껴지는 마음의 색깔과 무늬를 통틀어 신경림 시인은 ‘뭉클’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나를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한 데는 선행 시의 힘이 물론 컸지만 산문의 영향도 그에 못지않았다”면서 “가령 김기림의 ‘길’이나 정지용의 산문들을 읽었을 때 뭉클하게 가슴에 와 닿던 감동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이어 “오래전에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던 글들은 지금 읽어도 감동이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책을 엮는 기쁨을 맛보았다”면서 “글을 선(選)하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문학적’이 아니고 ‘뭉클’임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뭉클’은 ‘문학적’보다도 한 자리 위의 개념일 터이다”라고 의미를 전했다.

신경림 시인의 고백처럼 수필 앞에서는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무장 해제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의 망설임과 부끄러움이 느껴지고, 그걸 읽는 독자들도 왠지 모를 수줍음이 밀려오기도 한다. 책이 책의 부제에 있는 ‘인간적으로’라는 투박한 표현이 정겹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성운동의 선각자였던 나혜석(1896~1948)이 ‘여인 독거기’를 통해 “고적이 슬프다고? 아니다. 고적은 재미있는 것이다. 말벗이 아쉽다고? 아니다. 자연과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나는 평온무사하고 유화한 성격으로 변할 수 있다”며 독신이라고 무시당하지 않고 주인집의 신용을 얻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은 짠하기까지 하다. 정작 나혜석은 일본 동경 여자미술학교에서 그림공부를 시작해 당시로서는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사유(思惟)를 하며 살았던 인물이다.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이면서 1918년 뚜렷한 여성의식을 보여주는 소설 <경희>를 발표한 근대 최초의 여성작가이기도하다.

또 1919년 3.1 만세운동에 참가해 5개월 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녀였지만, 수필에서 세상의 편견과 맞서는 역설적인 모습은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신 분, 나를 있게 하고, 나를 가장 사랑하신 분, 나를 위해서는 열 번이면 열 번 다 목숨까지라도 바치셨을 분”이라는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의 글에서는 촌스러운 정이 묻어나고, 진정 사랑했던 단 한 사람과의 시간을 그린 문익환(1918~1994) 목사의 연서는 애잔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한 편의 글이 길을 열어주고, 한 줄의 문장이 힘이 되기도 한다. 더불어 삶이 지쳤을 때 위로고 되어주고, 메말라가는 감성을 촉촉이 적셔주기도 한다. 책을 엮은 신경림 시인도 이 글들에 대해 문학이 아니라, 심장이 싸늘해질 때마다 영혼의 맥박을 되살려주는 숨결 같은 존재였다고 말한다. 마음에 간직한 채 가끔 꺼내 보는 위안서로 삼을 이유가 여기에 있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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