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와 착각 무너뜨리고 자유와 평화 누리다

부처님은 뭇 생명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온전한 존재로 태어나 둘레의 도움을 받으며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성장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은 부처님이 깨달은 직후 여섯 명의 비구에게 최초로 법문을 하고 있는 초전법륜상(初轉法輪像).

 

모든 존재들의 살아있음은 

그 자체로 신비요 불가사의

지식 견해 생각 습관 탈피해

자신의 참모습을 확연히 인식

인간은 신이 만든 열등한 존재?

행한 대로 이뤄지는 위대한 존재!

붓다의 삶과 깨달음을 왜곡해

또 다른 속박 만들지 말아야…

누군가가 ‘붓다는 어떤 존재인가’하고 묻자, 한 선사는 이렇게 답했다. 

‘頂天脚地(정천각지) 眼橫鼻直(안횡비직) 飯來開口(반래개구) 睡來含眼(수래함안)’

“머리는 하늘을 향해 있고 두 발은 땅을 딛고 있으며, 눈은 가로로 놓여있고, 코는 세로로 드리워져 있다. 밥이 오면 입을 벌리고, 잠이 오면 눈을 감는다.” 법당에 걸린 주련의 한 구절이다. 붓다의 모습과 그의 삶이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모습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내용이다. 생김새도 먹고 사는 것도 지극히 평범하다. 눈을 씻고 봐도 특별한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 왜 신비하다, 불가사의하다고 했을까? 생명의 참모습을 제대로 알고 보면 붓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의 살아있음 그 자체가 그대로 신비요 불가사의이기 때문이다. 한번 확인해보자. 어떤 존재이든 숨 쉬면 살고 숨 못 쉬면 죽는다. 밥 먹으면 살고 굶으면 죽는다. 관념적으로는 어딘가에 특별한 신비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숨 쉬고 밥 먹는 일 말고 특별히 다른 신비란 있지 않다. 붓다의 위대한 힘은 바로 평범한 일상의 삶이 곧 신비요 불가사의이자 기적임을 발견하고, 그 앎을 나누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데 있다. 

붓다는 산스크리트어로 ‘깨어난 자’를 뜻하는 보통 명사이다. 무지와 착각, 미혹(迷惑)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뜻이다. 잘못된 지식, 견해, 습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무지의 상태가 미혹이다. 붓다가 미혹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잘못된 지식, 견해, 생각, 습관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앎이 생겨났으며, 이를 통해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삶으로 전환되었다는 의미다. 붓다의 탄생게가 더 명료하게 이를 드러내 주고 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우뚝 존귀하다. 온 세상의 고통을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 이 열여덟 글자에 붓다의 삶, 붓다가 밝힌 불교의 대의가 온전히 함축되어 있다. 앞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붓다가 찾아낸 답변이다. 자신만이 존귀한 존재라는 오만한 표현이 아니라 우리 각자는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존재이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제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인간해방의 의미가 담겼다. 뒤의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붓다의 답변이다. 주인된 삶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고통 받는 모든 존재를 안락과 행복으로 이끄는 큰 자비(사랑)의 삶이어야 함을 말한다. 

탄생게는 붓다의 육성이 아니다. 그를 떠나보낸 후 제자들이 많은 고민과 토론 끝에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압축하고 또 압축해 낸 키워드다. 너무도 쉽고 익숙한 표현이라 “설마…”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보다 더 명료하게 붓다란 존재를 설명하기 쉽지 않다. 

붓다 당시 인도사회는 신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에 불과한 열등한 존재였고, 전생의 업보에 따라 신분을 물려받고, 현실의 처참한 고통도 그저 감내하며 사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붓다는 수천년간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억압해 온 고정관념과 편견, 두려움의 어두움을 걷어냈다. 그는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완성된 거룩한 존재인줄 모르고, 기성의 관념과 제도에 속박 당한 채 지배받고 있었구나. 본래 붓다이니 순간순간 기꺼이 붓다로 살면 될 것을 스스로 부족하다고 자학하면서 끝없이 엉뚱한 곳을 향하여 갈구하였구나.” 

붓다에게 깃든 통찰은 한마디로 ‘인간은 자신이 행위하면 하는 대로 즉시 뜻한 삶이 이루어지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본래 죄 많은 중생이므로 업대로 태어나거나 신분의 굴레가 씌워진 대로 살아야 하는 노예가 아니라, 자신이 행위하는대로 즉각즉각 창조되는 매우 주체적이고 위대한 존재라는 자각이었다. 후일 선가(禪家)에서는 붓다의 이 위대한 통찰을 ‘본래 붓다’라고 정의하였다.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이러한 붓다의 통찰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뜻으로 간추려 일부를 옮겨본다. 

“신기하고 신기하여라. 많고 많은 생명들마다 모두 여래의 지혜덕상을 온전히 갖추고 있건만 스스로 어리석고 미혹하여 그 사실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구나. 내가 마땅히 성스러운 진리로 그들을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죄 많은 못난 중생이라는 잘못된 지식과 믿음을 영원히 버리게 하리. 스스로 자신이 본래 붓다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하리. …… (중략) ……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평화롭고 자유롭게 하리.“

뭇 생명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온전한 존재로 태어나 둘레의 도움을 받으며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성장해 간다. 그러나 둘레의 도움이 왜곡된 방식으로 진행되면, 그는 자신의 참모습에 대해 미혹에 빠진다. 스스로 붓다가 아니라 죄많은 중생이라는 착각에 빠져 자신의 참모습이 본래 붓다임을 잃어버린다. 사람들이 이렇게 중생 노릇하고 있는 것을 붓다는 너무나 안타까워하였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그림 ‘십우도’에서는 이를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어리석음이라고 일침하고 있다. 

탄생게를 만든 이들이 바라본 붓다의 삶은 ‘전도선언’에 더욱 명쾌히 드러나 있다. 5비구에 이어 녹야원에서 붓다는 쾌락에 젖어 방황하던 대부호의 아들 청년 야사와 그 친구들을 출가의 세계로 이끌어 마침내 출가승이 60명이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나는 신과 인간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신과 인간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라. 여러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세상에 대한 깊은 연민심으로 길을 떠나라. 두 사람이 한 길도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와 문장을 갖춘 법을 설하라. 아주 원만하고 청정한 행을 드러내 보여라. 세상에는 마음에 먼지와 때가 적은 자도 있다. 그들이 법을 듣지 못하면 퇴보할 것이지만, 법을 들으면 바로 알게 되리라. 비구들이여! 나도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의 세나니 마을로 가리라.”

- <초전법륜경>

붓다와 비구들이 ‘신과 인간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브라만과 아트만이라는 기성의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본래 붓다답게 삶이 자유롭고 평화로워졌다는 의미다. 붓다의 탄생게인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맥을 같이 한다. ‘여러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는 것 역시 온 세상의 고통을 편안케 하겠다는 ‘삼계개고 아당안지’와 같은 맥락이다. 전도선언 역시 탄생게와 마찬가지로 붓다의 앎(깨달음)과 삶(실천)을 명징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신의 굴레, 그리고 신을 앞세워 인간이 쳐놓은 굴레로부터 벗어난 붓다와 비구들은 거리낌 없이 법을 전하는 여행길에 나섰다. 복잡한 자격이나 조건은 없었다. 신과 인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자유롭게 행복하게 일상을 누리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들은 저자거리에서 민중을 만나 이렇게 설명하였다. “빈부귀천, 성스러움과 속스러움은 신의 뜻이거나 전생의 업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행하는 행위에 달려있다. 해탈열반은 지금 여기에서 고통의 원인으로부터 벗어남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지 별천지의 신비한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 

붓다는 자기인식의 혁명을 통해 신화의 시대를 지탱하던 무지와 착각의 금기를 무너뜨렸다. 세계관의 일대전환을 이뤄냄으로써 인류 사상사를 바꾸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혹시 붓다의 삶과 깨달음을 곡해하여 신비화함으로써 불교 안에 또 다른 신화와 속박의 굴레를 만들고 그 안에 스스로 갇혀 있지는 않은가. 

 

도법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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