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 용성진종장학재단(총재 도문)    

“격발은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격렬하게 솟구쳐 주먹으로 치고

머리로 들이 받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온몸으로

맹렬히 달려들어 뒤로 넘어져

숨이 헐떡거릴 지경에 이르러야

그것을 조금 눈치 채게 된다.”

진종이 눈을 까막거리며

듣고 있다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내일부터 네가 알고 있는 것

모두 싹싹 쓸어

홍류동에 내다 버리고

대적광전으로 올라가

아무 생각 없이

절을 3000번씩 하거라.”

미련한 놈도 한 고집은 있다. 나라 다스리는 위치에서 권력을 잡으면 설삶은 말 대가리 같아 똥구멍에 불송곳도 안 들어간다. 그러고는 돈 많은 사람 지갑만 넘겨다본다. 여자의 경우 그 정도가 지나쳐 여우 뺨치는 동업자를 불러들여 ‘가보시키’ 하자며, 권력을 사적으로 활용해 ‘머니 론더링(money laundering)’으로 백성들 돈을 빼돌린다. 그러다보면 욕심이 놀부 너는 저리 가라며 국정농단으로 이어진다.

민비가 그런 여자라는 뜻은 아니다. 고종이 나이가 들었으니 친정을 한다하여 대원군을 몰아내고 권력 공유의 ‘책실(策室)’로 들어앉았다. 책실이 나라밖 사정에는 생쥐 멍석 구멍 내다보듯 그러면서 제 안방 거울만 나무랐다. 조선이 이 지경이 되니 일본 놈들이 활개를 아니 칠 수 있겠는가. ‘조일수호조규’ 부칙 ‘조일무역규칙’을 들이대 쌀, 콩, 금 등을 똥값으로 수입해 들이고, 제 놈들 나라 쌀은 국제시장에 비싼 값으로 내다 팔아 국익을 챙겼다. 어찌 일본뿐이랴, 고종 책실 뒤에 썩은 생선 속에서 나온 벌레들이 자빠지는 나라의 기둥을 헌 사챙이로 세우겠다고 달려들었는데, 사자 아가리 같은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여러 나라와 통상조약을 맺어 미친년 떡 퍼주듯 국민 세금을 퍼주었다. 이리되니 민 씨 패거리들이 온갖 감투를 나눠 쓰고 가만히 앉아 나라 금고만 파먹는 벌레가 되었다. 나라의 운명이 잿불화로에 불씨 꺼져가듯 그 지경으로 치닫던 때였다.

화월화상은 진종이 큰절 방장실로 대거리를 하러 들어가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진종을 불러 슬쩍 속을 떠보았다.

“그래 방장 스님 직하불긍(直下不肯)이 무엇이더냐?”

방장 스님께서 직하에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더냐고 물었다.

“별 것은 아니고요…, 몽둥이로 때리겠다고 하기에 도망쳤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틀림없이 머릿속에 든 것으로 덤벼들었을 터인즉, 몽둥이질 하겠다는 말씀이 나오지 않을 리 없을 터였다. 화월화상은 방장 스님과 진종이 마주보고 앉아 어떤 정경이 펼쳐졌는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책을 보아 아는 식견도 아무나 갖추기 어려운 귀한 지식이기는 하지만 지식이 기연(機緣)을 방해하는 장애물임은 두 말할 나위없다. 차라리 돼지를 길들인 것보다 좀 안다는, 견식이 있는 자들을 길들이기가 더 어렵다. 진종과 같이 견식이 뛰어난 수행자들은 일단 온몸을 부딪쳐 알아가게 해야 한다. 숨을 못 쉬고 헉헉대며 발버둥 치게 하는 것이 약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육조대사께서 대중들에게, 나한테 한 물건이 있는데,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다. 보면 있는 듯 하고, 없는 듯도 해, 메아리처럼 빨라 따라갈 수 없고, 황홀해서 측량할 수 없다고 하셨다. 무슨 물건인지 알겠느냐?”

진종이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있기는 있으나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다. 위로는 하늘에 닿고 아래로는 땅에 꽉 차, 밝기로 말하면 태양과 같고 검기로 말하면 옻칠과 같다, 그것이 늘 움직여 우리가 항상 쓰고 있는데도 손으로 잡으려 하나 잡히지 않는 그것을 한 물건이라 한다. 제자들한테 그런 물건이 있는데, 알 수 있겠는가 하고 물었다.”

“그래서요?”

“신회라는 어린 제자가 벌떡 일어나, 그게 부처님의 애당초 깨달음의 인자이자 저의 본래 성품입니다, 그랬어.”

“잘못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잘못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육조대사께서 차후에 너는 많은 사람들 선생은 되겠으나, 밑바닥 없는 배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지 못 하겠다고 막 나무라셨지, 그게 뭔지 알겠느냐?”

진종이 말이 막혀 대답을 못했다.

“그걸 알아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알아낼 방법이 있습니까?”

화월화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다! 내가 너한테 격발이라는 말을 했던가?”

“네 하셨습니다.”

“격발은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격렬하게 솟구쳐 주먹으로 치고, 머리로 들이 받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온몸으로 맹렬히 달려들어 뒤로 넘어져 숨이 헐떡거릴 지경에 이르러야 그것을 조금 눈치 채게 된다.”

진종이 눈을 까막거리며 듣고 있다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내일부터 네가 알고 있는 것 모두 싹싹 쓸어 홍류동에 내다 버리고 대적광전으로 올라가 아무 생각 없이 절을 3000번씩 하거라.”

“사시, 조석예불, 맨날 절만 하는데, 그것도 한꺼번에 3000번을 하라 그 말씀이십니까?”

“하겠느냐 못하겠느냐?”

거두절미 우격다짐으로 닦달했다.

“밑바닥 없는 배를 탈 수 있다면 해야죠.”

“날마다 3000번이다. 알았냐?”

사정이 이렇게 되어 진종은 대적광전에서 절을 시작했다.

이듬해(1880) 동안거 해제가 되어 혜월화상이 극락암을 찾아왔다. 사제 화월화상 근황도 알 겸, 상규가 사미계를 받아 진종이란 새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화월화상은 사형 혜월화상을 맞아 예의를 갖추고 앉았다.

“공양을 차리겠습니다.”

“아닐세, 먹고 왔네.”

“그럼 차나 하시죠.”

화월화상은 시자를 불러 다담을 가져오라 하고 다관을 화로에 얹었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뵈려던 차에 잘 오셨습니다.”

“소식 없으면 잘 있는 게지, 그 먼 곳까지 올 것 뭐 있나.”

“진종이 때문입니다.”

“말썽을 피우든가?”

“그런 건 아닙니다만, 길만 제대로 들어서면 쇄락한 불가를 일으켜 세울 큰 그릇이 되겠습디다. 그런데 유가는 말할 것 없고 도가의 학문까지 재간이 펄펄 넘쳐 정작 보아야할 칼날을 못 보고 있습니다.”

혜월화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야, 그 녀석 알음알이 습을 나도 알고는 있네.”

혜월화상이 우려낸 차를 따라놓은 잔을 들면서 물었다.

“그래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

“대적광전으로 올라가 절을 하라 했습니다.”

“거, 아주 잘했구먼.”

“일념발기(一念發起)의 길로 들어서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혜월화상이 한참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주력의 문으로 들어가게 하세.”

주력이란 기이하고 존엄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으로 특수하게 감추어진 비밀의 언어를 말한다.

“그게 좋겠습니다. 우선 자신감이 넘쳐 움직이지 않는 굳센 믿음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면 ‘지혜를 여는 길(dhyna)’이 무엇인지 제 스스로 알겠군요.”

혜월화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말 할 것 없네. 고운사로 보내세.”

“수행에 방해되는 다섯 가지 장애(五障)를 없애주는 데 영험이 있다는 고운사 말씀입니까?”

“거기 수월영민(水月永旻) 장로님 계시느니.”

“저도 이야기 들었습니다. 주력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은 장로님이란 거….”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진종이 대적광전에서 3000번 절을 마치고 극락암으로 내려왔다. 화월화상 시자로부터 덕밀암 혜월화상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월화상 방 앞으로 달려갔다.

“스님 저 왔습니다.”

곧 방안에서 대답이 나왔다.

“어서 들어오너라.”

방으로 들어가니 혜월화상과 화월화상이 다담접시를 놔두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진종은 혜월화상에게 세 번 절을 올렸다.

“스님께옵서는 연금이 풀렸사옵니까?”

최재우의 사도난정 사건으로 덕밀암과 실상사만 오갈 수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깜짝 놀라게 했다.

“법속에는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하느니라. 지금 조선왕조 조정에서 내리는 법에 그런 양식이 들어 있더냐? 높은 자리에서 백성들 사표가 되어야 할 배웠다는 자들이 백성들의 안위와 국익은 내팽개쳐놓고, 되레 일자무식보다 더 막되어 먹은 막말을 쏟아내는 나라에 무슨 법이라는 것이 있느냐?” 

“그래도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 말에 혜월화상이 ‘흐흠—!’ 하면서 곁눈으로 쳐다보았다. 

[불교신문3284호/2017년3월25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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