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에서 온 대지에 움트고 있는 생명의 기운과 마주하고 돌아왔다. 겨울 내내 꽁꽁 얼었던 논과 밭이 동면에서 깨어나 부드럽고 따스한 숨을 쉬고 있었다. 땅은 이렇게 얼고 녹는 일을 반복하면서 거룩한 모성의 에너지를 만든다. 

강원도 황태 덕장의 생선도 추위 속에 얼고 녹으면서 깊은 맛이 깃들고, 곶감 또한 햇볕에 마르고 풀어져야 단 맛이 배이게 된다. 사람도 이와 같이 혹독한 시련의 시절을 경험해 보아야 인생의 역사가 풍성해지고 단단해진다. 이를테면 행복과 불행이 반복되는 과정을 겪어야 삶의 리듬이 보다 유연해지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종일 바람이 불어서 한겨울보다 창문을 더 야무지게 닫았다. 이렇게 봄꽃이 피기 전에 바람이 부는 것은 천지의 조화다. 이즈음에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주어야 깊은 잠에서 깨어나 수액을 공급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지 않으면 수목들이 마냥 게으름을 피워 꽃망울이 늦게 터질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왜 하느냐하면 세상사는 그때그때의 역할과 이유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추운 날만 있어서도 안되며 무더운 날씨가 계속 되어도 안 된다. 사계절의 기운과 정서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인생의 무늬가 보다 다양하고 촘촘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계절의 변화를 두려워말고 삶의 축복으로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사람에게는 봄기운처럼 따스한 마음이 필요하고, 여름처럼 뜨거운 열정도 필요하고, 가을처럼 멋과 낭만도 필요하며, 겨울처럼 냉철한 이성이 스며 있어야 한다. 이처럼 사계절의 기운이 부족한 사람은 남자건 여자건 성격이나 성품이 원만하지 못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선문염송>을 읽다보니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피우면 힘이 적게 든다”는 가르침이 있었다. 자연의 질서에도 순리가 있듯이 일의 원리에도 순리가 있다. 지금, 삶이 힘들다면 세상의 순리를 역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불교신문3284호/2017년3월25일] 

현진스님 청주 마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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