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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용성진종조사] <9> 향상일로①
  •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 승인 2017.03.2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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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무짜가 무엇입니까?

다시 일러주십시오.”

말이 떨어지기 바빴다.

“자유자재의 지혜를 여는 열쇠다.”

“그 열쇠가 어떠합니까?”

“홀로 하늘을 걸을 수 있으나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이다.”

“잘못했다가는 몸뚱이가

두 동강 나겠군요?”

백남현은 장수 조대감 집으로 청혼서와 상규 사주를 보냈다 곧 조대감 집에서 납폐와 전안(奠雁)과 택일단자가 왔다. 다음 차례는 납폐서와 혼수품을 조대감 집으로 보내면 된다. 일이 이렇게 척척 진행되고 있는데, 규수 얼굴을 보러 간 상규가 오리무중이었다. 조대감 집에서 납폐서와 혼수품을 보내오면 정해진 날짜에 혼인을 치러야 한다.

상규는 영민한 아이인데다 배울 만큼 배웠다. 뉘 집 자식 못지않게 정직하고 올곧은 아이였다. 어릴 때 백운천에서 낚은 고기를 살려준 일 외에 부모 속을 썩이거나 말썽을 부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덕밀암으로 가 2년 나마 집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은 서당에서와 달리 색다른 학문을 접하다보니 거기에 탐닉되어 날짜 가는 것을 몰랐던 것으로 백남현은 이해했다. 

낯 들고 다니는 처녀도 선을 보아야 된다는 속설도 있거니와 누구보다도 탐구심이 강한 상규가 규수를 보러가겠다고 하기에, 평생 해로하면서 살아야 할 사람, 미리 얼굴 좀 보는 것쯤이야 그러고는 허락을 했는데, 행방이 묘연했다. 가서 보니 신부될 규수가 언청이거나 먹곰보인 것을 보고 도망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물집 매파할머니도 그렇고, 상규에게는 서모이지만 선을 보고 온 제 어미도 신부 감이 보기 드문 미인이라 했다. 대사에는 낭패가 없다는데, 규수가 하도 예뻐 상규가 속도위반으로 덥석 끌어안았다든가 입을 맞춘 실수를 저질렀다면 조대감 집에서 택일단자를 보내오지 않았을 터, 북두칠성이 앵돌아졌는지, 어쩐지 전개되는 일이 꺼림칙했다. 이 혼사가 잘못되면 백남현이나 조대감이나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체면에 손상을 입는다. 

백남현은 어떤 총각이 방물을 팔러와 규수 집 마루에 방물보따리를 펼쳐놓은 채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상규가 그런 엉뚱하기 짝이 없는, 더구나 뒷감당 못할 일을 저지를 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사람을 풀어 상규를 찾아 나섰다. 뻔히 아는 덕밀암에는 가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급하면 업은 아기도 찾는다고 교룡산 꼭대기 암자로 올라가보니, 혜월화상은 시자를 데리고 출타하고 없었고, 부목 양처사도, 공양 간 할머니도 상규가 지난 번 집으로 간 뒤 한 번도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랑 없이는 혼사를 치를 수 없는 일, 혼사가 깨지면 백남현이나 조대감이나, 봐라! 양 새끼는 아무리 잘 키워도 준마는 안 된다는 소문이 자자하겠지…. 물집 매파는 항우도 댕댕이 넝쿨에 넘어진다고 평생 중매를 하면서 혼사가 깨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방물장수총각이 상규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했다. 누구보다도 아들을 믿는 백남현은 매파할머니의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혼사는 깨지고 백남현이나 조대감은 남새스러운 얼굴로 사람들을 대해야 했다.

진종으로 이름이 바뀐 상규는 집안에 그런 사단이 생긴 줄도 모르고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겹쳐져 있다는 과제에 몰두해 있었다.

하루는 화월화상이 찾아서 갔다.

“앉아는 보았느냐?”

참선을 해보려고 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예 덕밀암에서 시늉으로 앉아보다 말았습니다.”

“앉아보니 어떻더냐?”

“처음에는 다리가 저리고 엉덩이에 옹이가 박힌 것 같더니, 차츰 풀리면서 가가에 미타불이요, 처처에 관음보살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칭찬을 해줄 줄 알았더니 도리질을 하면서 다시 물었다.

“조주무짜 이야기는 들어 보았느냐?”

“예! 지난 번 동안거 결제 때 큰절 방장 스님이 법상에 올라 조주무짜 이야기를 해서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래 어떻더냐?”

“답이 뻔히 나와 있는 말씀이더군요.”

“어떻게 답이 나와 있더냐?”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왜 가죽부대 속에 들어가 있느냐고 물으니, 알고 범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겁니다. 또 다른 수좌가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는 똑같은 질문을 하니, 이번에는 없다는 겁니다.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깨달음의 인자가 있는데, 왜 없느냐고 하니, 본래평등무차별이라는 것을 지각 못해서 그렇다는 거 아닙니까?”

“의심을 해보지 않고 어째서 그게 뻔한 답이라는 게냐?”

“불법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구르는 수레바퀴와 같아, 살아 있는 것들이 몸뚱이로 또는 생각으로 저지른 잘못 때문에 생사를 반복한다는 것을 밑바탕에 깔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알고도 잘못을 저질렀으니 개도 될 수 있고, 개가 되었으니 제가 지니고 있는 평등무차별한 깨달음의 인자를 지각 못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화월화상이 들어보니 ‘조주무짜’를 책보고 배운 지식으로 꿰어 맞추어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너는 교학을 공부하지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아느냐?”

“노자도 읽고 주역도 보았습니다. 그만큼 읽었으면 알 만한 내용 아닙니까?”

“의리선 이야기를 들어 보았느냐?”

진종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못 들어 봤습니다.”

“원래 선에 ‘의리’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의리에 선이라는 말을 붙여 ‘의리선’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근래에 백파긍선 선사가 말이나 문자의 속뜻에 맞추어 초보자는 의리선으로 출발해 여래선으로, 그리고 조사선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나, 선문에서 의리선은 ‘죽은선(死句禪)’이라 하느니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래선이다, 조사선이다 그런 이름에 사로잡히지 말라.”

“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어!”

“예!”

“어떤 수좌가 조주선사한테 물었지, 털끝만큼 견주어 보는 것이 있으면 어떠합니까?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느니라. 수좌가 다시 물었어, 털끝만큼도 견주어 보는 것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느니라 그랬다. 자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끓는 가마솥에 종발소리요, 귀신 굴에 살림살이’라더니, 참 희한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진종은 말이 막혔다. 

“옛날에 진정(眞爭)선사가 그 말을 듣고 ‘선방으로 들어와 차나 마셔라’ 했다.”

이거야말로 바람으로 구름 잡는 소리다. 조롱박도 모양을 보아야 그릴 수 있는 법인데, 어찌 가르쳐주는 선지식의 얼굴도 모르고 부처님을 본다는 이야긴가. 좌우지간 선원 주변에 떠돈 이야기들은 낮에 나온 도깨비처럼 해괴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 많았다.

“저도 차나 마실까요?”

한 번 대질러 보았더니, 화월화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공연히 애쓰는 것은 원숭이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찬찬히 생각해보겠습니다.”

“생각으로는 되지 않는다!”

탁, 못을 박았다. 더 앉아 있다가는 가슴만 터질 것 같아 진종은 밖으로 나왔다. 쌀 한가마니를 어깨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온몸이 무거웠다. 봄바람이 불면 꽃이 피고, 잎이 푸르면 새가 울고, 하늘이 높아지면 단풍이 지는 극락암에 이리 무거운 짐 덩이가 웬 일인가. 이거야말로 괜히 자초해서 벌어들인 고초 같았다.

선원이라는 곳이 원래 그런 곳인가, 달거리 없는 여자가 아이를 낳으니 4월 보름이라느니, 며느리가 나귀를 타고 시어머니가 말구종을 한다느니, 몽둥이로 후려갈긴다느니 하여간 별의별 이야기가 떠돈다. 

하나 진종은 몽둥이를 두드려 맞는 일이 있더라도 맞서기로 했다. 그 길로 큰절 방장실로 찾아갔다. 몇 십 년 씩 참선을 한 수좌들도 방장실 앞에서는 가슴이 통게통게한다는데, 엊그제 사미계를 받은, 한 마디로 애송이가 방장실로 뛰어 들어가니 모두 이상히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종은 방장 스님 앞에 엎어져 삼배를 하고 단정히 앉았다.

“조주무짜가 무엇입니까? 다시 일러주십시오.”

말이 떨어지기 바빴다.

“자유자재의 지혜를 여는 열쇠다.”

“그 열쇠가 어떠합니까?”

“홀로 하늘을 걸을 수 있으나,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이다.”

“잘못했다가는 몸뚱이가 두 동강 나겠군요?”

“길 위에서 자취마저 사라진다.”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코에 끈을 꿰어 똑바로 가게 해야겠군요.”

방장 스님이 진종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엊그제 계를 받은 아이가 틀림없는데, 말을 척척 받아넘기는 모습이 예사가 아니다 싶다 그런 것 같았다.

“네가 앉아 있는 곳이 어디냐?”

“그걸 모르겠습니다.”

“사천하를 비춘다.”

“시간처럼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함께 싸잡아 지나가는군요.”

“허허, 이놈! 시자야 몽둥이를 가져오너라.”

방장 스님이 시자를 불렀다.

“이놈이 주둥이만 열렸어!”

“저 몽둥이 안 맞겠습니다.”

진종은 황급히 일어나 절을 하고 방장실을 나왔다.

[불교신문3283호/2017년3월22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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