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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97> 진감혜소(眞鑑慧昭) 육조선맥 계승 삼신산 법신      
  • 해제=정안스님 설명=문화부 문화재팀장 이용윤
  • 승인 2017.03.2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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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衲淸賓 黑頭陀人    누비옷의 맑은 정신을 한 흑두타라는 사람은

辭國師己 便入三神    국사 되기를 사양하고 삼신산으로 들어갔다.

觀磎路 捿一法身    쌍계의 길을 들여다보니 한 법신이 머물며

每食松實 以度空春    늘 소나무 열매를 먹고 빈 봄을 보내면서

是何境界那    아~ 아~하는 이는 무슨 경계인가?

頭流山色插天碧    두류산 빛과 하늘이 푸르다. 

하동 쌍계사에 모셔진 진감혜소(眞鑑慧昭, 774~850)스님의 진영에 실린 영찬이다. 비록 영찬을 지은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그 내용은 진감스님의 행장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스님의 삶을 함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찬문에서 진감스님을 흑두타(黑頭陀)라 칭한 것은 스님이 785년에 중국 당(唐)으로 건너가 창주(滄州)의 신감(神鑑)스님에게 출가하자 그 문도들이 스님의 검은 얼굴빛을 보고 ‘흑두타’라 부른 일화와 관련이 있다. 나머지 찬문 내용은 세속적 명리를 멀리하고 쌍계사를 창건하고 수행과 선법의 본분수행자로 살다 간 진감선사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830년에 신라로 귀국한 진감스님은 흥덕왕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지리산 화개곡에 들어가 쌍계사를 창건해 머물렀다. 원래 이곳은 삼법(三法)스님이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선사의 두개골을 봉안한 사찰터로, 진감스님은 여기에 옥천사(玉泉寺, 쌍계사 전신)를 세우고 법통을 헤아려 조계의 현손(曹溪之玄孫)으로서 육조영당(六祖影堂)을 건립했다. 흥덕왕에 이어 민애왕도 친견을 여러 번 청하였으나 스님은 쌍계사를 떠나지 않고 오로지 수행 정진과 선법(禪法)을 펼쳤다. 스님이 입적하자 문성왕은 스님의 행적과 공덕을 기리는 비를 세우고 헌강왕은 진감국사라는 시호를 내려 승탑을 대공영탑(大空靈塔)으로 추증하였다. 

이처럼 진감스님의 입당구법, 귀국 후 쌍계사 건립과 선법(禪法) 활동은 887년에 최치원이 지은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에 선명히 새겨져 천년을 넘어 전승되고 있다. 이 긴 세월 속에서 후손들은 진영을 끊임없이 제작해 사찰 창건주이자 달마와 육조의 선맥을 계승한 진감스님에게 존경과 예우를 표하는 한편 전설과 같은 진감스님의 이야기가 불가(佛家)의 실존하는 역사임을 드러냈다. 

[불교신문3283호/2017년3월22일자] 

해제=정안스님 설명=문화부 문화재팀장 이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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