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이타주의자

윌리엄 맥어스킬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선의와 열정에만 의존한

‘경솔한 이타주의’ 경계

현명한 보시 위한 길잡이

불교계도 눈여겨 볼만해

“따뜻한 가슴, 차가운 머리

결합해야 좋은 결과 나와”

광고기획자였던 트레버 필드는 극빈층도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우연히 남아프리카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농업박람회에 갔다가 회전 놀이기구인 일명 ‘뺑뺑이’와 펌프 기능을 결합시킨 ‘플레이펌프’를 발견했다. 이후 물 부족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자선단체인 ‘플레이펌프인터내셔널’을 설립해 현지에 플레이펌프를 설치했다. 그러나 펌프 동력공급에 아이들의 노동이 동원되면서 사고가 속출하고, 관리체계가 허술해 자체 유지보수도 불가능해지면서 플레이펌프는 마을의 흉물로 전락했다. 각종 폐해가 드러나 국제사회에 비난을 받게 됐고, 결국 플레이펌프 미국 지부는 폐업했다.

비영리단체 ‘기빙왓위캔(Giving What We Can)’의 공동설립자인 윌리엄 맥어스킬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과 부교수가 최근 발간한 <냉정한 이타주의>는 플레이펌프의 사례처럼 선의와 열정에만 의존한 경솔한 이타주의는 오히려 해악을 끼치기 쉽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법을 제안해 주목된다.

저자는 “남을 도우려 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행동으로 옮기곤 하는데, 이는 숫자와 이성을 들이대면 선행의 본질이 흐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그 탓에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만다”고 강조했다.

자연재해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지난 2010년 아이티에서 일어난 지진은 2011년 일본 도호쿠에서 일어난 지진보다 사상자 수가 100배 더 많았고 대응 자원 보유량은 1000배 더 적었지만 국제사회에서 몰려온 지원금은 동일했다. 앞서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의 국제원조금은 5억 달러에 불과했다. 쓰촨성 지진의 사상자는 도호쿠 지진보다 5배인 8만7000명에 달했다. 그러나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않은 탓에 기부규모가 작았다.

이는 재해의 규모와 심각성이 아니라 정서적 호소력이 얼마나 더 널리 알려지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광범위한 사업을 전개하는 월드비전, 옥스팜, 유니세프 등 거대 자선단체도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보건사업에 비해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에도 재해구호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효율적인 자리이타행을 강조하며 냉정한 판단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역설한 윌리엄 맥어스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의 최근 저서 <냉정한 이타주의>가 최근 국내 서점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조계종 아름다운동행이 식량지원에 나선 탄자니아 무감바 초등학교 학생들. 불교신문 자료사진

우선 공정무역 인증 기준이 상당히 까다로워 가난한 나라의 농부들이 기준을 충족시키기가 어렵다. 또 공정무역 커피산지는 에티오피아 같은 최빈국보다 상대적으로 10배나 부유한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이 대다수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최빈국의 비공정무역 상품을 사는 게 빈곤퇴치에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그렇다면 실생활에서 우리가 노동착취 기업의 불매운동이나 착한소비로 자비 나눔을 실천하는 방식은 어떨까. 저자는 소비자가 구매력을 무기 삼아 세상을 바꾸려는 운동인 윤리적 소비도 세상을 바꾸는 데는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빈국의 노동자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상품에 웃돈을 지불하고 구입한다는 선의에 반대하는 이는 없겠지만, 실제로 의도한 결과를 낳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선진국 사람들은 노동착취 공장의 비인간적 노동 환경에 분노해 불매운동을 확산하는 데 앞장서지만 사실 절대빈곤층에게는 그만한 일자리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널리 확산되고 있는 운동인 공정무역 커피구매도 마찬가지다.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한다고 해서 무조건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에 수익이 돌아가는 건 아니다.

때문에 저자는 따뜻한 가슴(이타심)에 차가운 머리(데이터와 이성)를 결합시켜야 비로소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마이클 크레머가 설립한 기생충구제 자선단체를 제대로 된 대표사례로 꼽았다. 크레머는 아프리카 학교의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분석한 후에 기생충 감염치료를 시행했다. 분석결과 교과서 제공, 교사 1인당 담당 학생 수를 줄이는 것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감염치료는 학생들의 출석률뿐 아니라 빈혈, 장폐색증, 말라리아 등 다른 질병의 발병위험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10년 뒤 추적 조사한 결과 감염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주당 3.4시간 더 일했고 소득도 20% 높았다. 구충제 복용이 세수 확대로 이어져 실행비용을 자체 충당할 정도였으니 효율성 면에서는 단연 눈에 띄는 지원 사업이다.

“선의만으로 좋은 결과를 낳을 순 없다”고 지적하며 효율적 이타주의를 따져 선행과 기부의 허상을 파헤치는 저자의 이야기가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다. 남을 돕는 특정 방식이 “소용 있다, 없다”를 논하기보단 가장 효율적인 보시행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그것을 실천해 보자는 제안이다. 의례적인 기부가 아닌 진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자리이타행에 대한 이야기다.  아프리카에 기술농업학교를 건립한 조계종 공익기부재단 아름다운동행과 동남아에 생명의 우물 건립 및 교육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국제구호단체 지구촌공생회 등 국내외에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는 불교계도 눈여겨 볼만한 제안서다.

저자인 윌리엄 맥어스킬 교수는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을 이끌며 기부문화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단체는 종신기부 서약 등을 통해 5억 달러(5900억 여 원) 이상 모금하는 성과를 거뒀으며, 그 활약상이 뉴욕타임스, BBC 등 세계 주요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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