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기심과 굴절된 내면의 속마음을 묘사한 영화 ‘라쇼몽(羅生門)’은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자와 아키라(黑澤 明)를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두 편의 단편소설(라쇼몽, 숲 속에서)’을 배경과 스토리로 엮은 이 영화는 감독에게 제15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겨주었다. 1950년에 제작됐음에도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아 영화학도들이 필수적으로 공부하는 고전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헤이안(平安) 시대 교토의 어느 숲속에서 일어난 강간과 살인사건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살인을 한 산적과 죽은 사무라이, 강간당한 사무라이의 아내, 그리고 이를 목격한 스님과 나무꾼 등을 시켜 각기 자기가 본 사건을 말하게 한다. 문제는 사건은 하나인데 진술하는 내용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불교의 유식학(唯識學)은 이런 현상을 ‘일수사견(一水四見)’의 비유로 설명한다. 같은 물이라도 하늘사람은 보배로 장엄된 땅(天見是寶嚴地)으로 보고, 인간은 마시는 물(人見是水)로 보고, 물고기는 보금자리(魚見是住處)로 보고, 아귀는 피고름(餓鬼見是膿血)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기심이 본성인 중생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일은 일상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좋은 예다. 똑같은 사실을 놓고 탄핵과 기각을 주장하는 사람의 견해가 하늘과 땅처럼 다른 것은 한쪽 눈은 가리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이 세상의 모든 대상과 사건에 대해 정견(正見)과 정로(正路)를 찾을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이기심과 아집을 꺾고 자기주장의 반대편 진실을 살펴보려는 순간 바른 안목이 열린다. 말 많은 세상에서 갈등과 대립을 최소화하며 살아내자면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훈련에 잠시도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 길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불교의 반야지혜다.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불자다.

[불교신문 3282호/2017년3월18일자] 

홍사성 논설위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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