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조계종주지협의회 “밥 한끼에 공덕을 담아 나눕니다”

급식봉사를 이끌고 있는 청주 조계종주지협의회 회장 각연스님이 국밥에 숙주나물을 얹고 있다.

 24년간 1000회 무료급식. 청주 조계종주지협의회(회장 각연스님, 용화사 주지)가 청주 중앙공원서 매주 일요일마다 실시하고 있는 무료급식이 1000회라는 기록을 남겼다. 추울 때는 800여명에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1500명까지 ‘국밥’을 대중공양하는데, 한회 평균 200여 만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1000회면 20억원이다. 지난 12일, 1000회를 맞은 중앙공원 현장을 찾았다. 새벽 시장을 들러 재료를 준비한 봉사자들이 오전 8시부터 모여들었다.

“중앙공원에 무료급식 하는 곳 아세요?” 꽤 큰 공원이라 생각하며 택시기사에게 물었더니 “일요일에 4군데서 무료급식을 하는데, 중앙공원이 제일 유명하다. 일요일 오전에 교회가지 않는 어르신은 다 그리로 가는 것 같다”며 차를 몰았다. 예상과 달리 청주 구도심에 위치한 중앙공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3~4000명이 모이면 가득 찰 정도의 공원이었다. 주변의 다세대주택에서 어르신들이 온다고 해도 매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까. “이곳에 정말 800명 넘게 와요?” 기자의 질문에 “아직 추워서 그렇지, 날씨가 풀리면 1000명, 1500명까지 와요.” 봉사자의 답변이 돌아왔다.

봉사단체 봉우회와 지역 사찰별로 꾸려진 봉사단, 개별 봉사자들이 참가해 매주 일요일마다 800여 명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대중공양을 펼치고 있다.

1000회를 기념하는 작은 플래카드가 배식대 천막에 설치됐다. ‘청주 중앙공원 대중공양 법석잔치 1000회’ 문구가 쓰여있다. 주관 청주조계종주지협의회, 봉사 봉우회. 아빠랑 자원봉사를 나온 초등학생도, 70대 후반 고령의 봉사자도 눈에 띈다. 바쁜 손길로 재료 다듬기가 끝나 국에 김이 오르기 시작하자, 봉사자들이 잠시 한곳에 모였다. 간단한 기념식을 위해서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에 이어 각연스님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의 자원봉사는 제4의 물결로, 인류의 가장 중요한 활동의 하나가 되며, 자원봉사로 인해 국가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휴일도 마다않고 참여해 말보다 행동으로 나서는 봉우회 회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짧은 인사말을 마치고 봉우회 유영천 회원에게 청주불교연합회장 현진스님의 공로패가, 일반 봉사자 장복화ㆍ하양수 씨에게 조계종주지협의회장 각연스님의 감사패가 전달됐다. 축하케익 절단식과 사홍서원까지, 15분 남짓의 기념식을 마치자마자 봉사자들은 각자 정해진 위치로 돌아가 다시 바쁘게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어느새 식사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100m 넘게 줄을 이루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 대중공양은 24년전 도심포교당 ‘연꽃피는절’이 시작했다. 중앙공원 한쪽에는 YMCA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주중에 그곳 식당에서 어르신을 대상으로 국수를 나눠줬다. 하지만 일요일에는 갈곳 없는 노인들이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점심을 해결하지 못하는 분이 많았다. 이에 중앙공원 인근에 있던 연꽃피는절 주지 자행스님이 100명 남짓 어르신들에게 일요일마다 점심공양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봉사단이 모여 봉우회란 단체를 구성했다. 소문이 나면서 “밥을 먹기 위해” 일요일에 중앙공원 찾는 노인, 장애인들이 늘어나면서 작은 포교당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어려움을 알게 된 조계종주지협의회에서 대중공양을 이어받았다.

“청주에서 가장 맛있는 무료급식”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찾아오는 어르신도 늘어났다. 특히 IMF 때에는 공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 모두를 가리지 않고 일요일이면 국밥 한그릇 전해줬다.

11시가 조금 넘자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배식대 뒤편에 나란히 자리를 한다. 배식을 기다리는 행렬은 어느새 공원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10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이후 매주 일요일마다 급식소를 찾고 있다는 손상구(72) 씨는 “매주 일요일이 생일 같다. 밥도 맛있고,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하루를 보낸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운동을 겸해 일요일이면 한시간 거리를 걸어 중앙공원에 온다는 김달호(68) 씨도 “사고 후 절망적일 때 무료급식소를 보면서, 희망을 가졌다. 저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에 용기가 났다”며 “이제는 일요일에 중앙공원에 와서 식사를 하는 것이 생활의 한 부분이 됐다”고 말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어르신도 지팡이에 의지하며 한쪽 벤취에 앉아 급식을 기다렸다.

어느 새 커다란 솥이 끓기 시작했다. 각연스님이 푹 삶아진 재료 위로 숙주나물을 얹었다. 갑자기 봉사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어르신은 익숙하게 밥과 반찬을 받아 삼삼오오 공원 곳곳에 둘러앉았다. 24년간 한결같이 마음을 나누는 현장이다.

 

- 대중공양 1000회의 주역들

청주 조계종주지협의회 회장 각연스님

“저는 이제 참여한지 10년 밖에 안돼요. 오랜 봉사자들에게 비하면 참 부끄럽습니다. 인터뷰는 봉사자들이 해야 해요.”

10년 전, 주지 소임을 보면서 무료급식에 참여했다는 각연스님<사진>은 “24년간 1000회를 달성했다는 기록이 쉽지 않다. 많은 스님들의 도움과 사찰 자원봉사, 그리고 봉우회원들의 마음이 모여 일궈낸 성과”라며 “매주 한끼 식사를 위해 공원을 찾는 분들을 보면, 1000회가 아니라 2000회, 3000회도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사찰이 과거처럼 기도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면서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함께 할 때 불교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무료급식을 지속하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과 봉사참여가 필요합니다. 함께 동참해주는 사부대중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조계종주지협의회의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무료급식을 꼽는 각연스님은 “여러 사찰에서 다양한 봉사활동과 지역사회 참여를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용화사도 ‘무심천 지킴이’ 활동과 새터민을 대상으로 한 봉사, 연말 김치나눔, 용화봉사단을 구성해 각종 사회봉사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내덕노인복지관과 율량3어린이집 위탁운영을 통해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각연스님은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불교계의 손길이 필요한 곳도 많아졌다. 한 사찰에서 모두 감당하기 힘든 만큼, 지역사회 사찰이 함께 논의하며 다양한 봉사에 참여한다면 불교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하며 “24년 이어진 무료급식의 인연이 오랫동안 지속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나눔을 실천하는 자원봉사자들

지난 12일 급식 1000회를 기념해 축하 케잌을 절단하는 봉사자들.

“연초가 되면 봉사할 사찰 명단 1년치가 나옵니다. 이번 주는 어느 사찰, 다음 주는 어느 사찰하고 명단이 나와요. 봉우회원은 19명인데, 모두 불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재료 구입, 배식대 준비 등을 주로하고, 매주 배정된 사찰 봉사자들이 재료를 다듬고 배식을 해줘요. 큰 비가 오거나 명절날이 일요일과 겹칠 때 빼고는 매주 대중공양을 합니다. 비 온다고 밥을 굶는 건 아니잖아요.”

김영준(63) 봉우회장은 15년째 부인과 함께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공원을 지나가다가 급식을 하길래 봉사를 한 것이 인연이 됐다”는 김 회장은 “한시간 걸어서 점심을 먹으러 오는 분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보람된다”고 말한다.

국림사 신도인 이옥화(78) 씨도 오늘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적십자 회원 활동을 시작으로 40년째 여러 단체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는 이옥화 씨는 올해 ‘공식적인 봉사활동 정년퇴임’을 한단다. “적십자사 규정에 따라 봉사활동 정년이 78세로 돼 있다”는 이 씨는 “연말에 적십자사 봉사는 정년퇴임하지만, 몸이 허락될 때까지 여러 봉사를 할 생각이다. 특히 무료급식에 더 자주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또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한끼 건네는 공덕이 가장 큰 공덕이라고 했다. 봉사자들이 모두 큰 자비보살이다”며 “비록 일주일에 한번 드리는 식사지만, 잘 드시고 건강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봉우회 봉사를 19년째 이어오고 있는 최분옥(68) 씨는 “32년 전 남편이 희귀병으로 쓰러지면서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무 돈도 없던 형편인데,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특별히 가져온 의료장비로 치료받을 수 있었다. 10년간 병간호를 하면서 남편 병이 나으면 그 고마움을 사회에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참가동기를 밝혔다. 최 씨는 그 결심대로 재적사찰인 지장사에서 기도하며, 봉사하는 삶으로 일관하고 있단다.

초등학생인 박주완ㆍ시완 군도 아버지 박헌섭 씨를 따라 참가, 일손을 도왔다. 오창에서 왔다는 박헌섭 씨는 “효와 봉사를 함께 전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봉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노연(76) 씨는 자발적 자원봉사로 급식에 참여하고 있단다. 배 씨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고마워하는 봉사가 중앙공원 일요일 급식이다”며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아 교통 안내를 위해 일요일이면 중앙공원을 찾고 있다.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도록 봉사를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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