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축을 따라 심줄처럼 

뻗어 오른 나무뿌리에서 

옛 자취를 더듬어 가니 

나물 캐는 할머니들이 …

빙그레 웃음이 났다 

나도 홍귀호 할머니에게 

해물 드릴 일이 있어 

애월에 간 거였구나

“사랑을 아는 바다에 노을이 지고 있다/ 애월, 하고 부르면 명치끝이 저린 저녁/ 노을은 하고 싶은 말들 다 풀어놓고 있다.”

이렇게 ‘애월 바다’(이정환)를 노래한 시인이 있듯 물가의 달, 애월(涯月)은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훌쩍 제주로 향한 건 귤 농원에 있는 곶자왈을 보러간다고 간 게 아니라, 혼자 애월 바다 어디를 배회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혼자. 

이끼류 양치류 온갖 나무가 어우러진 곶자왈을 안마당처럼 가진 서귀포 시인이 부러웠다. 가까이 사는 시인 몇이 합류하여 밤늦도록 노래하고 정담을 나누다, 이튿날 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른 아침 숙소를 나오며 도망쳐서 미안하다고 전화했다. 여기는 애월이라고. 

택시를 타고 애월 제일 명소로 가자했다. 한담해변 동화 같은 카페 ‘봄날’. 마시던 커피와 가방을 두고 중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찻집을 나와 갯바위 해변으로 내려갔다. ‘하늘색’ 하늘이 펼쳐진 바다. 파도는 내 쪽으로 자꾸 밀려오고 멀리 부표처럼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해녀들 물질이 한창이다. 해초 따개비 갯강구가 어우러진 바위틈에는 맑을 대로 맑은 바닷물이 밀려오고 밀려왔다.

괭이갈매기 비스듬히 나는 갯가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물질 끝낸 해녀가 수확을 펼치고 있었다. “이거 아무한테나 파는 거 아니죠?” 그냥 한 말인데 소라집하장으로 가는 물건을 고르던 해녀가 해삼 홍삼 돌문어를 가리키며 만원만 달라 했다. 횡재한 듯 얼른 사가지고, 가방을 두고 온 카페로 향했다. 생물을 가지고 비행기를 탈 수 없으니 손질해서 바닷물을 담아가라 한 해녀의 말대로 손질할 곳을 찾았다. 카페 옆의 해물라면집 ‘놀맨’. 라면을 주문하며 주방장에게 부탁했더니 몸값이 얼만 줄 아냐고 했으나, 미소 띤 얼굴로 기꺼이 손질해주었다. 이제껏 먹어본 적 없는 감칠맛에 후루룩 국물까지 비웠다. 놀맨을 나와 왼편 해안을 끼고 걸었다. 

유채꽃이 피기 시작한 바닷가 마을길을 따라 가다 해안경계도 하고 봉수대로 썼던 사다리꼴 석축 ‘애월 연대’를 만났다. 석축을 따라 심줄처럼 뻗어 오른 나무뿌리에서 옛 자취를 더듬어 가니 나물 캐는 할머니들이 보였다. 다가가며 셔터를 누르는데 화들짝 놀라는 할머니도 있었다. 나물 캐는 모습이 아름답다니 환히 웃으며 취나물 한 아름을 건네주던 분. 주름살이 고운 홍귀호(77) 할머니. 서로 남양 홍가라며 반가워했다. 취나물 한 포기만 받아 가방에 넣고, 아까 손질해둔 해물을 드렸다. 일 끝나고 함께 드시라고. 

고마워 아름다워 마냥 흔들리며 걷는 동안 옥빛 바다 ‘고내 포구’에 닿아 생각난 시가 있었다. 원로 스님 한 분이 산마을을 지날 때 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 쥐어주고 꾸벅, 절을 하고 갔다는데, 노스님은 할 말을 잃고 섰다가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라는 거였다. 노스님은 오늘도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고 했다. 빙그레 웃음이 났다. 그렇구나. 나도 홍귀호 할머니에게 해물 드릴 일이 있어 애월에 간 거였구나. 그래. 꽃처럼 유리병에 꽂아둔 취나물 한 포기가 아직 생생하다. 

[불교신문3281호/2017년3월15일자] 

홍성란 시인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