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열흘

 

홍사성 등 지음 / 책만드는집

 

 

홍사성 이경철 등 시인 10명

실크로드 함께 다녀온 인연으로

한편의 로드무비처럼 울고 웃고

 

중년의 시인과 소설가 10명이 작년 여름 열흘간 실크로드를 다녀와 시집 한권을 냈다. 중국 서안에서 출발해서 난주, 돈황, 투루판, 우루무치까지 옛 대상들이 걷던 길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80여편의 시에는 ‘사막에서 열흘’간 마음에 흘러들었던 생각과 느낌이 오롯이 스며있다.

‘속도는 소용없는 단어/ 천천히/ 천천히 가자/ 동서남북이 필요없는/ 시공간의 자유// 남루하지 않다.’ 시의 첫 문을 연 김금용의 싯구처럼 중년의 시인과 소설가들은 시공간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아주 천천히 사막을 걷는다. 김 시인이 타클라마칸 사막 한가운데 맥적산 절벽과 돈황 막고굴에서 만난 부처를 두고 노래한 시 ‘진짜 부처’는 불교의 진면목을 새삼 일깨운다. ‘…금칠 은칠 한 벽화 다 뜯어가도/ 이마에 박힌 화려한 보석 다 가져가도/ 깨진 코와 입술, 뭉개진 얼굴로 고개숙인 채 귀를 열고 계신다// 종루도 마당 한 평도 없이/ 토굴마저 허물어지는 사막 한가운데서/ 공즉색, 색즉공 펼치는/ 다친 부처들….’

윤효 시인은 사막을 폐사지에 빗대기도 했다. ‘알겠다/ 폐사지를/ 왜 가장 성스러운 절이라 하는지/ 이제/ 알겠다// 다만/ 너무 많은 말을 지껄여온 게/ 맘에 걸렸다.’(시 ‘사막3’ 전문) 황하협곡에 조성된 병령사에서 만난 와불을 두고 이경철 시인은 미당 서정주의 시 ‘황혼길’을 떠올렸다. ‘…낮잠에 드신 걸까, 열반에 드신 걸까/ 묻고 물어보는 우리들에게/ 아서라, 관둬라 하시며/ 넌지시 웃음만 흘리시네// “새우마냥 허리 오그리고/ 뉘엿뉘엿 저무는 황혼을/ 언덕 너머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인제는 잠이나 들까”// 서정주 시 따라 나도 인제는 잠에나 들어볼까/ 소태같이 쓰디쓴 삶 온화하게/ 저 와불 옆에 누여나 볼까 스르르 눈감는 찰나// 죽비처럼 내리치는 아서라, 관둬라/ 소태같이 쓰리고 아린 그리움이 열반이니.(’황화삼협 병령사 와불‘中) 메마르고 건조한 사막 한복판에 선 시인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질곡 앞에서 한없이 겸손한 시선으로 원없이 사랑을 외친다. ‘가장 성스러운 절’ 사막에서 ‘진짜 부처’를 만나고 ‘소태같이 쓰리고 아린 열반’을 온몸으로 겪는다.

실크로드 길목 난주 병령사에서 홍사성 시인이 찍은 석굴. 홍 시인은 이 석굴을 ‘덜 된 부처’라고 이름 붙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덜 된 부처는 덜 돼서 될 게 더 많아 보였습니다…그 앞에 서니 나도 덩달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사진제공 책만드는집

홍사성 시인의 ‘실크로드 시편’은 시집 속 또다른 ‘오아시스’다. 웃음을 유발시키고 눈물샘마저 자극시킨다. ‘…새벽이 밝아오자 사막의 달은 이제 헤어질 때 됐다는 듯 서역하늘 가득 그리움 같은 달빛만 남기고 사라졌다// 우리 만남은 진사겁(塵沙劫)의 인연, 가는 길 달라도 다시 못 만나더라도 저 달 보면 서로 그리워하자던 그 친구 닮은 달이었다.(시 ‘사막의 달’中)’ 실크로드 길목 난주 병령사 14호 석굴 앞에서 노래한 시는 공감 100%다. ‘눈도 코도 입도 귀도 없이 겨우 형체만 갖춘/ 만들다 만 덜 된 불상이 있습니다// 다 된 부처는 더 될게 없지만/ 덜 된 부처는 덜 돼서 될 게 많아 보였습니다// 그 앞에 서니 나도 덩달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시 ’덜 된 부처‘中)’ 막고굴에서의 단상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여기서는/ 불모(佛母)의 손이 닿기만 하면/ 흙도 부처 되고/ 나무도 부처 되고/ 돌도 쇠도 다 부처 되었다 한다// 아직 부처 못 된 건/ 부처의 형상을 한 인간뿐이라 한다.(시 ‘막고굴 방문기’ 전문)’ 투루판에서 문득 든 생각을 옮긴 듯한 시도 시선을 모은다. ‘해발 마이너스 154미터/ 연간 강수량 30밀리/ 여름 평균기온 54도// 그동안 나는 불평이 너무 많았다.(시 ‘투루판’ 전문)’ 전세계서 가장 오래된 토성, 교하고성에서 읊은 홍 시인의 시는 좁은 시야와 편견에 휩싸여 살아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참회하게 만든다. ‘집은 땅 위에만 짓는 줄 알았다// 성은 반드시 돌로 쌓는 것인 줄 알았다// 40도가 넘어면 사람이 못 사는 줄 알았다// 지상에는 종교가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다// 사랑은 잘생긴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다// 못난 인생은 인생도 아닌 줄 알았다// 무너지면 역사가 아닌 줄 알았다// 정말 다 그런 줄 알았다.(시 ‘교화고성에서’ 전문)’

한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시집은 소설가 이정의 에필로그, ‘고비 사막의 밤’으로 막을 내린다. 고비사막을 건너는 야간기차 안에서 알콜지수 42도짜리 백주를 술병 마개에 따라 나눠 마시면서 기차 창문사이로 사막의 달빛을 마주한다. 누군가 스마트폰에 저장한 장사익의 ‘찔레꽃’을 누르자 일행의 합창이 객실을 채우고…. 소설가 이정은 말한다. “체면, 신분, 염치 따위 뒤에 숨은 본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오랫동안 이 날을 기다려온 것처럼 세파에 시달린 영혼이 본능과 교감을 나누는 시간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이다…훗날 이 밤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으리라. 그래서 저 금빛 찬란한 달을 다시 보면 떠나간 연인처럼 문득 못 견디게 그리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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