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행증의 화두는 제 인생의 나침반”

가톨릭 신자로 잘 알려진 문 전 대표에게 불교와 인연을 묻자 그는 해남 대흥사에서 고시 공부하던 시절을 얘기했다. “대흥사에서 공부하면서 불교적 세계관에 매료돼 잠시 스님이 될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고 소개한 그는 “두륜산 정기를 받아 사법시험을 합격할 수 있었다”며 대흥사에서 보낸 시간이 각별했음을 언급했다. 불교철학과 사상에 대한 관심이 많아 서재에 불서가 많다는 그는 <벽암록>과 같은 선어록을 탐독했다고 한다.

불교신문을 통해 스님과 불자들에게 인사를 전한 그는 “독자들 중에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고, 안보 프레임으로 저를 바라보는 분이 있다”며 “그것에 대해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나는 지금 우리 상황이 보수 진보라는 이분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라는 점이다. “촛불광장에도 보수진보가 따로 있지 않다. 보수냐 진보냐를 뛰어 넘어 대한민국을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목소리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하나는 앞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안보성적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문 전 대표는 “안보나 국가관 하면 여당이 확실하다고 오해하는데 실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고, 국민들이 전쟁을 걱정하게 만들었다”며 “북한 핵은 고도화됐는데 속수무책으로 방치해뒀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여권이 만들어놓은 안보프레임은 가짜 안보세력이 집권연장을 위해 안보팔이 장사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정말 제대로 안보를 생각하고 국가안보를 생각하는 것은 저 문재인”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부처님 자비정신, 모든 중생이 구제되고 난 후에 성불하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의 원력이 요즘같이 경제적으로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시대에 우리 민중을 살려내는 데 꼭 필요한 정신”이라며 “그것이 현대화되고 정책화된 게 복지이고 일자리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정치세계에서 구현하고 싶다”고 피력했다.  다음은 10문10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문재인 전 대표

대선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 지난 대선패배 이후 ‘재수’하며 패배의 이유를 되돌아보고 더 치열하게 준비해 왔다. 단지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 정치를 바꾸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대한민국’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이전에 먼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나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한다. 전국 어디서나 고루 지지받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어 그런 국민통합의 힘으로 반칙과 특권, 부정부패를 청산하겠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이념과 지역, 종교 갈등으로 분열시킨 국민의 마음을 다시 하나로 모아 대한민국의 새 시대를 여는 첫 차가 되고자 한다.

대통령 임기 내에 꼭 해내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 일자리 혁명을 통해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일자리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첫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일자리는 최고의 경제회복 방안이자 최선의 복지방안이다. 일자리를 차기정부 국가의 최우선과제로 삼고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정책수단과 재정능력을 총 투입할 것이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정부와 공공부문 역시 일자리 만들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를 만들고,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실’을 설치해 대통령이 직접 챙길 것이다. 정부의 모든 정책과 예산사업에 ‘고용영향평가제’를 전면 실시해 임기동안 좋은 일자리 만들기가 국정운영의 중심이 되도록 할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의견은?

▶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말씀하신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이라는 화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저 역시 어떠한 혐오나 차별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반대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신분, 학력, 신체조건 등 일체의 차별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법으로 금지한 평등권 침해와 차별행위가 반드시 근절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 또한 인권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과 공감대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

차별 없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불교계, 특히 조계종단에서 가칭 ‘화해와 평등위원회’ 구성을 제안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 창달은 국가와 대통령의 의무이다. 조계종은 소중한 자연유산인 국립공원 등 환경과 유무형 전통문화를 통합하는 정부기구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는데, 국립공원 문화재 관련 정책이 있다면?

▶ 우리가 계승 발전시켜야 할 유산은 전통사찰과 같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 등 다양하지만 이를 총괄하는 정부 부처와 기관은 제각각 다른 게 현실이다. 따라서 전통사찰 등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등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 분산돼 있는 각 부처와 기관의 업무를 통합 조정하는 기구 설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통사찰을 포함한 국립공원 내 문화재를 보전하는 것은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 창달을 위한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국립공원 내 문화재뿐 아니라 유무형의 불교문화재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사업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옛 한전 부지에 건립 예정인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개발계획 중단과 봉은사 역사문화환경 보존은 조계종의 주요 화두다. 590m 고층건물이 들어서면 전통사찰인 봉은사 일조권 침해 및 문화재와 주위 생태훼손이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 봉은사를 방문해 본 분들이라면 불교계가 왜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에 반대하는지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겨울에는 봉은사 전역에 4시간 동안 그림자가 져 목조건물인 봉은사와 봉은사 내 문화재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 그리고 서울시의 건축심의와 교통영향평가가 남아 있다. 서울시는 최근 교통영향평가 심의제도를 전면 개선해 자동차에 치우쳤던 기존 심의를 보행환경 개선대책, 관광버스 주차, 수요관리, 준공 뒤 관리 등으로 강화했지만, 아직 불교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부분 역시 국토교통부, 서울시 등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의해 불교계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

2월24일 홍대 앞 한 카페에서 문재인 전 대표를 만났다.

불교는 사찰문화재 조사와 인도적 차원의 지원 등을 통해 북측과 교류해 왔으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남북교류가 단절된 상태다. 남북교류 재개 계획은?

▶ 남북 간의 종교인 교류와 종교계의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남북관계의 경색을 풀 수 있는 우선적인 정책으로서 반드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특히 불교계에서 희망하고 있는 북한 지역의 불교문화 자원의 공동 조사 및 발굴은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원하겠다.

대한민국은 다종교 사회이고, 정부보조금을 두고 종교간 갈등도 상당하다. 천주교신자인 대표님 평소 종교관은?

▶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각 종단 지도자들과 두루 자주 만나고 나라의 주요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많이 나누시는 것으로 안다. 종교를 초월한 종교지도자들의 그런 모습 자체가 국민들에게 화해와 통합의 강렬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종교 간 벽이 아니라 존중과 공존과 배려의 마음이야말로 대한민국 통합의 큰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어느 종교에도 치우치지 않고 사랑과 자비와 포용의 정신으로 정치를 해 나가고자 한다.

 대통령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신해행증(信解行證)을 말씀한 바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

▶ 젊은 시절 해남 대흥사에서 고시공부를 했었다. 그 당시 불교의 가르침을 완성하는 말씀으로 ‘신해행증’에 대한 배움이 있었다. 비록 세상이치에 어두운 범부(凡夫)이긴 했지만 하늘을 보며 땅의 길을 찾아가게 해주는 이정표를 본 듯한 전율을 느꼈다. 가르침을 믿고(信), 가르침을 이해하며(解), 가르침을 실천하고(行), 마침내 가르침을 완성한다(證)는 신해행증의 화두는 길을 잃을 때마다 저를 이끌어준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다.

정치가 국민을 믿고 국민의 고통을 이해할 때에만 국민의 요구를 실천할 수 있고 국민의 행복도 완성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젊은 시절 가슴에 담았던 신해행증의 발원(發願), 늘 되돌아보고 실천해나가려고 한다.

불교와 인연이 있다면?

▶ 특전사를 제대한 뒤 대학 복학이 기약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신 후 1978년 사법시험 도전을 위해 찾았던 곳이 해남 대흥사였다. 당시 예비군 훈련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아예 주소까지 대흥사로 옮겼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틈틈이 경전 말씀을 귀담아 듣고, 풍경소리를 벗 삼았다. 암울하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절박한 상황에서 대흥사와 불교는 저에게 새로운 삶을 향해 용맹정진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돼 주었다. 지금도 산사의 일주문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스님과 불자 및 국민들에게 당부말씀이 있다면.

▶ 대흥사에 머물던 시절 일주일에 한번 절 아래 마을로 내려갔다 밤늦게 돌아오곤 했다. 대흥사 경내에는 포장된 길도, 가로등도 없었다. 칠흑 같은 밤길을 더듬어 올라오다보면 자주 길을 잃곤 했다. 길인 줄 알고 가보면 길이 아닌 곳에서 헤매기도 하고 샛길로 빠져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우침이 찾아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길이 보이는 것이었다. 길 양 옆으로 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었기 때문에 길 위로 열린 하늘만 바라보고 가면 무사히 암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길은 험하고 발밑이 어두운 시대다. 그렇다면 하늘을 보아야 한다. 휴일을 반납하고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빈자일등(貧者一燈)같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국민의 마음을 보자. 그 길이 우리가 따라야 될 하늘길이다.

본지에 전할 메시지를 작성하는 문재인 전 대표.
문재인 대표는 이날 전한 메시지에서 화쟁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문재인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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