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독경소리 들으며 연꽃속으로…

“예쁜 할머니. 이렇게 추운데 가시려구요? 꽃피는 사월쯤이면 좋을텐데….” 어느 날 중환자실로 내려오신 예쁜이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갑자기 기력이 떨어지고 호흡이 불규칙해 중환자실로 오셨다. 평소 할머니는 폐가 좋지 않았으며, 천식을 앓고 계셨다. 그래도 늘 즐겁고 유쾌한 성품으로 잘 지내셨는데, 임종기에 접어드니 각별히 마음이 쓰였다.

“어데요 스님. 아입니다. 지금이 딱 좋은 때라예. 설도 지났지, 스님들이 밤낮으로 기도하는 소리 들어가면서 가게 되니 이게 무슨 복입니꺼.” “할머니. 어디로 가시려고요?” “저는 예 극락으로 가야지예. 관셈보살님 오고 계심니더. 걱정마이소.” 보살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들이 거들었다. “어머니. 아부지도 만나보시고 극락에 가셔야 하는데.” “그래, 너그 아부지는 진즉 극락에 가 계시다. 너그들도 열심히 염불해서 극락에서 보자.” “보살님. 꼭 극락세계 가시어 연꽃 속에 태어나셔야 합니다. 무슨 색깔 연꽃 좋아하세요?” “빨간게 좋지요. 빨간 거.” “그럼 홍련이겠네요. 꼭 붉은 홍련에 태어나세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할머니는 조금씩 몸을 벗을 준비를 하셨다. 입원하신지 3년. 80대 초반의 할머니는 병원 생활 중 매주 한차례 스님들과 작은 목탁을 치며 염불수행에 열심이었다. 숨이 차고 때로는 기침도 심하게 했지만 누구보다 열성이었다.

할머니는 오래전에 남편을 여의고 다섯 남매를 키웠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 법회에 참석하고 새벽마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한 힘으로 자녀들을 키웠다며 할머니는 늘 “자식 농사 잘 지은게 모두 부처님 가피”라며 자랑했다. 낮에는 농사일을, 밤에는 바느질로 자식들 학비를 감당하며 살았다. 가진 것 없지만,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무언가 내 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단다. 그렇게 고단하지만 신심있는 삶을 살아온 예쁜이 할머니다.

정토마을에서는 매년 정초가 되면 21일간 스님들이 번갈아 가며 밤낮으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다. 그 울림이 깊어지는 정월 초사흘이 지나고부터 환자분들이 매일 한분씩 돌아가셨다. 아마도 자재병원 도량에 법화가 피어나는 순간들이 좋아서 독송기도 주간에 가신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자녀들이 당번을 정해 할머니 곁에서 염불을 놓치지 않고 돌보는 사이 할머니는 너무도 평온하고 사랑스런 눈빛으로 곁을 지키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할머니의 염불소리는 입에서 온몸으로 번져나갔고, 야윈 몸은 연꽃처럼 맑고 청아하게 피어났다. 내가 가끔 ‘보살님’하고 부르면 눈을 크게 떠주면서 염불소리로 대신 대답을 했다. 손을 힘주어 쥐면서 ‘걱정하지 마소’라고 신호를 보냈다. 정말 감격스럽고 가슴 뛰는 순간순간이 이어졌다.

초승달이 그 빛을 더해가던 밤. 할머니는 다섯 자녀들이 번갈아 효도할 시간을 주고 5일간의 여정을 끝으로 별똥별 빛을 타고 관세음보살님이 계신 곳으로 떠났다. 몸과 마음의 고통도 없이, 푸른 하늘에 구름 한점없이 텅텅 비어버린 허공처럼 그렇게 가셨다.

<법화경> 독경소리가 은은하게 퍼지는 정토마을 도량에 새벽 여명이 깃들고 있었다. 염불수행을 한 공덕으로 이렇게 편안하게 죽음의 다리를 넘어가는구나 싶다. 붉디붉은 연꽃속에 태어났을 할머니의 또 다른 삶을 축복해 본다.

능행스님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이사장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