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정사 낙성식 법문에 가슴은 벅차오르는데…

부처님께서 

자신이 보시한

스라바스티 사원에서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니 

수닷타 장자는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 있는 

장자의 가족들은 그저 

환영연에 참석했을 뿐 

그의 가슴 벅찬 기쁨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스라바스티의 거부 수닷타 장자는 여동생 부부가 살고 있는 라자가하에서 부처님을 뵙게 되었다. 그는 부처님의 출현에 감격하였고 법문을 들은 뒤 수다원과를 성취하였으며 삼보에 귀의해 재가제자가 되었다. 또한 장자는 부처님께 자신이 살고 있는 스라바스티에 와주실 것을 간곡히 청하였다. 장자의 간절한 마음은 마침내 부처님의 허락을 얻어냈다.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스라바스티로 돌아가는 수닷타 장자의 발걸음은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했다. 

라자가하에서 스라바스티까지 

수닷타 장자가 살고 있는 코살라 왕국은 아직 부처님의 가르침이 공식적으로 전해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교단의 상수제자인 사리불 존자가 장자와 동행하였다. 스라바스티에 도착한 후, 부처님과 스님들이 머물 적당한 장소를 찾아 사원을 짓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수닷타 장자는 라자가하에서 스라바스티로 돌아가는 길에, 1유자나(약 11km)마다 부처님과 스님들이 쉴 수 있는 사찰을 하나씩 세웠다. 스라바스티로 오실 때를 불편을 겪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한 것이다. 그렇게 스라바스티에 도착하기 전, 45개의 사찰이 세워졌다.

수 일이 지나 스라바스티에 도착한 수닷타 장자는 사리불 존자와 함께 사원을 짓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다녔다. 탁발을 위해서는 마을과 너무 멀지 않아야 했고 수행과 정진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많은 곳보다는 조용한 곳이어야 했다. 도시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되 수행자가 머물기에 적당한 자연의 고요함을 간직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수닷타 장자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사원을 짓기에 완벽하게 알맞은 장소를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코살라 왕국을 다스리는 파세나디 왕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기타 태자가 소유하고 있는 왕실의 정원이었다. 

태자와 왕의 후원까지 얻고

수닷타 장자는 기타 태자를 찾아가 정원을 사고 싶다며 가격을 물었다. 그러자 기타 태자는 자신의 정원을 황금으로 덮는다면 모를까 그 전에는 팔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기타 태자는 감히 왕실의 정원을 구입하겠다고 한 수닷타 장자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하지만 장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셀 수 없이 많은 황금을 주고 기타 태자의 정원을 구입하였다. 

스라바스티 최고의 부자인 수닷타 장자가 엄청난 황금을 지불하여 기타 태자의 정원을 구입하고, 그곳에 부처님과 스님들이 머무실 기원정사를 짓는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정원을 팔 생각이 없었던 기타 태자는 수닷타 장자가 사원을 짓는데 아낌없이 재산을 쓰는 것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장자가 저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일이라면 분명 대단한 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수닷타 장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기타 태자는 그의 지극한 신심을 보면서 불사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결국 기타 태자는 사원을 짓는데 필요한 목재와 정원을 꾸미는데 사용할 나무를 보시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도 불사에 동참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알리기 위해 사원 입구에 커다란 대문을 세웠다. 소문을 들은 파세나디 왕도 공덕을 짓고자 하는 마음에 불사에 동참하였고 사원 안에 건립된 네 채의 커다란 정사 중 한 채를 자신의 이름으로 건립하였다. 수닷타 장자의 신심과 기타 태자와 파세나디 왕의 후원이 더해져 기원정사는 점차 웅장하고 아름다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웅장한 대문을 지나 잘 닦여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스님들과 대중들이 햇빛과 비바람을 피해 모임을 가질 수 있는 커다란 네 채의 전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각과 전각 사이는 지붕 있는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시원한 그늘이 있는 정자와 누각, 경행과 산책을 할 수 있는 정원, 스님들이 사용할 요사채 등등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마실 물을 길어 올릴 우물과 목욕을 할 수 있는 연못, 창고 등등 교단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아름다운 사원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가족과 함께 부처님을 맞이하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스라바스티에 도착하는 날, 수닷타 장자는 성대한 환영연을 준비하였다. 장자의 아들 깔라와 젊은 청년 500명이 다섯 가지 색으로 만든 깃발을 손에 들고 맨 앞에 서서 부처님과 제자들을 맞이하였고, 장자의 두 딸 마하 수밧다와 쭐라 수밧다 그리고 500명의 처녀들이 맑은 물이 담긴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그 뒤를 따랐다. 수닷타 장자의 부인이자 위살라 장자의 누이동생인 뽄나랙칸나데위는 아름답게 단장한 500명의 여인들과 함께 황금사발을 두 손에 들었고, 장자 또한 새 옷으로 잘 차려입은 500명의 남자들과 함께 했다. 수닷타 장자의 아들과 딸, 아내 뿐 아니라 남동생 부부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가족 중에 빠진 사람은 조카 수부티(수보리) 뿐이었다. 

이윽고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도착하셨다. 황금 주전자에 담긴 물을 입구에 부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승가에 사원을 보시하는 낙성식이 치러졌다. 의식이 끝난 뒤 부처님께서는 사원을 보시하는 공덕에 대하여 축원 법문을 들려주셨다. 부처님께서 스라바스티에 오시고, 자신이 보시한 사원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니 수닷타 장자는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꿈일까 두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 함께 있는 장자의 가족들은 그저 환영연에 참석했을 뿐 그의 가슴 벅찬 기쁨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응석받이로 자라난 외아들 깔라

수닷타 장자는 부인과의 사이에서 세 딸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내리 딸 셋을 낳고 실망했던 그의 아내는 네 번째 임신을 했을 때 열 달 내내 아들 낳기를 간절히 소원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이 태어났다.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금이야 옥이야 아들을 키웠다. 그러다보니 아들 ‘깔라’는 어머니의 과도한 보호와 사랑 속에서 응석받이로 자라났다.

고민이나 고생이라고는 해 본적이 없던 깔라는 나이가 들어서도 그저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보내는 것에 만족했다. 아버지의 사업을 배울 생각이나 뭔가 스스로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신나게 놀러 다니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집안일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수닷타 장자의 일을 돕는 것은 오히려 딸들이었다. 첫째 딸 마하 수밧다와 둘째 딸 쭐라 수밧다, 막내딸 수마나는 아버지를 도와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일은 맡아서 하였고 법문을 듣는 것도 좋아하였다. 

수닷타 장자가 부처님과 스님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공양을 올릴 때면 그의 세 딸들은 안주인 역할을 해내며 모든 스님들이 만족스럽게 공양을 하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장자의 아들 깔라는 스님들의 모습이 보이면 급히 몸을 피하기에 바빴다. 스님들께 공손하고 얌전하게 예배를 올리고, 공양을 마치시기를 기다리고, 장시간 법문을 듣는 일이 그에게 너무나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한량아들을 감싸기만 …

깔라의 관심은 오직 노름과 내기 등에 있었다. 그는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어울리며 노름에서 돈을 잃으면 술을 마셨고, 노름에서 돈을 따도 술을 마셨다.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닷타 장자는 유흥과 쾌락에만 정신이 팔린 아들을 단속하고 싶었으나 그럴 때마다 아내가 나서서 아들을 변호했다. 사업에 있어서는 빈틈이 없는 장자였으나 아들 문제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깔라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그의 아내에게 있었다. 그녀에게 깔라는 세상의 중심이자 우주의 중심이었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부처님보다 훨씬 귀하고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녀는 오직 깔라의 수발을 들고, 그가 즐거워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깔라가 웃으면 그녀도 웃었고, 깔라가 우울해하면 그녀는 얼굴도 덩달아 우울해졌다. 

깔라가 버릇없는 행동을 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였다면 장자는 아버지로서 당연히 그를 나무랄 수 있었다. 하지만 장자가 깔라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하면 아내가 나서서 아들을 보호하곤 했다. 그녀는 아들을 대신하여 변명을 하고, 화를 냈으며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눈물을 흘리거나 식사를 거부했다. 그러다보니 깔라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막무가내에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한심한 한량이 되었고 장자의 아내는 아들 외에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상황을 살필 줄 모르는 어리석은 여인이 되어갔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불교신문3276호/2016년2월25일자] 

글 조민기 삽화=견동한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