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자비롭고 때로는 위엄 있어야

스님, 제가 (이은영, 74, 여) 애지중지 키운 막내아들이 이혼을 한다 하면서 저 때문이라고 어깃장을 놓습니다. 막내며느리가 생활형편이 어려워지자, 제가 아파트를 팔아서라도 도와주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했답니다. 너무 기가 막히고 속상해서 말이 안 나오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 남편이 막내아들 중학교 1학년 되던 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막내아들이 가여워서 위의 두 아이들 보다 더 많이 신경 쓰면서 키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막내아들과 저와 사이도 위의 두 아이들보다 더 각별했고 믿음직했습니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결혼을 하고 2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더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시로 돈을 가져갔습니다. 처음에는 오죽 힘들면 혼자 살고 있는 엄마에게 손을 벌리겠는가 싶어서 조금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에는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한다 하면서 수시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노후생활 자금으로 모아두었던 현금 대부분이 막내아들 사업자금으로 다 탕진되면서 지금 제 수중에 거의 돈이 없는 상태입니다. 저에게 남은 노후자금이라고는 이제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전부인데, 이마저도 내놓으라고 하니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은영 님이 애지중지 키우신 만큼 당연히 잘 살줄 알았던 막내아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아무런 생활능력 없이 어머니에게만 의지하고 있으니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그런데 이은영 님. 안타깝게도 막내아들의 현재 모습은 이은영 님이 너무 애지중지 키우신 탓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와 아낌없는 지원 속에서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자랐고,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어머니가 앞장서서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힘든 자신의 문제들을 어머니가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아내와의 이혼문제까지도 어머니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으로 키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가르침과 계율을 받들게 하는 것도 부모가 당연히 해야 할 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에게 무조건 주기만 하는 것은 진정으로 자녀를 위한 일이 못됩니다.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가르쳐서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키게 하고, 금해야 할 것은 반드시 금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도리를 가르치지 않으면 자녀들은 몸은 어른이지만 인격은 어른이 되지 못합니다. 인격적으로 어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힘들거나 곤란한 상황이 오면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자신의 욕구대로만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은영님이 속상하신 부분도 막내아들의 이런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속상한 마음 뒤에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막내아들의 앞날이 더없이 걱정스러우시기에 막내아들의 요구와 원망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지도 못하시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이제라도 막내아들에게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봐라”라고 단호하게 말씀해 주세요. 물론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일을 어떻게 선뜻 받아들겠습니까? 은영님 역시도 막내아들에게 한 번도 취해보지 못한 행동이기에 망설여지고 마음 아프실 줄 압니다. 그러나 진정 막내아들의 앞날을 걱정하신다면 은영님의 태도가 먼저 단호하고 분명해져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자녀들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현재 막내아들의 상황을 숨김없이 말씀하시고, 막내아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함께 의논해서 도와줄 일은 반드시 도와주어야 합니다. 앞에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셔야 하지만, 뒤에서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뒷받침도 되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도 우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농부가 땅에 볍씨를 뿌리면서 천신에게 기도를 했습니다. “매일 매일 햇빛이 비쳐서 곡식이 잘 자라 풍년들기를 소망합니다.” 농부의 소원대로 그해 여름은 유난히 햇빛이 찬란했고, 들판은 황금빛으로 출렁였습니다. 그 황금들녘에 신이 난 농부가 추수를 하려고 하자, 이게 무슨 일인가요? 낱알마다 모두 쭉정이 뿐이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다면서 천신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천신이 대답하기를 “너는 햇빛만 달라고 했지, 곡식들이 영그는데 필요한 찬 이슬과 바람을 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며 농부를 꾸짖었습니다.

곡식이 잘 자라는 데는 햇빛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알맹이가 영글기 위해서는 찬 이슬과 바람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은영님의 막내아들에게도 어머님의 한없는 지원과 사랑도 중요하지만, 찬 이슬과 바람 같은 인고의 아픔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자기인생의 주인으로서 성숙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신문 3276호/1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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