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에 눈이 내리면 하얀 눈 위로 밤새 산짐승이 다녀 간 흔적들이 남는다. 발자국이 큰 것부터 작은 고양이 발자국 까지 줄지어 남아 있다. 작년에 울타리용 사철나무를 마당 가장자리에 심었다. 겨우내 고라니가 밤에 내려와 잎사귀를 다 뜯어 먹어 나무가 뼈만 남았다. 그래서인지 일년 동안 나무가 자라지 못했다. 맥문동은 아예 밑둥만 남았다. 겨울산에 먹이가 없어서인지 짐승들이 먹이를 찾아 헤맨다. 과일껍질과 부실한 야채를 산 주변에 뿌려둔다. 요란한 세상과는 무관하게 계절은 입춘을 지나고 매화나무는 꽃망울을 키우고 있다.

나라 안팎의 정치 경제 사정과 국민들의 팍팍한 삶은 안중에도 없는, 귀 막고 눈 가린 한 사람과 여의도 둥근 지붕 아래에서 저마다 옳다고 떠들어 대는 정치인들은 대선레이스에 대한 관심뿐이다. 영원할 것 같은 명예와 권좌의 끝이 눈앞에 있고, 대를 이어 누리고자 했던 재물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 코앞에 있다.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자기 얼굴도 못 가리는 작은 손바닥 하나로 민심과 천심을 가리려고 했다니 이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말이다. 

먹이를 찾아 겨울산을 헤매던 산짐승은 도량에 내려와 필요한 만큼만 먹고 간다. 그러나 누군가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업의 먼지를 털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배를 채우기 위해 온갖 수단과 힘을 동원했고, 그 주변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주워 먹기 위해 손과 발이 되었던 사람들이 줄줄이 굴비처럼 엮여가고 있다. 욕심과 어리석음의 끝에 기다리는 것은 유·무형의 감옥뿐이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고 그림자가 그 주인을 따른다. 어떤 모양의 발자국과 그림자를 남기고 싶은가. 각자의 몫이지만 그 발자국과 그림자로 인하여 민심과 천심을 괴롭게 한다면 그것은 대대로 역사 속에 죄인이 될 것이다. 빨리 겨울이 지나 봄이 오길 기다린다. 이 복잡한 나라 상황도 춘풍에 밀려나길 바라며.

[불교신문3275호/2016년2월22일자] 

진명스님 논설위원·전국비구니회 사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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