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라”

‘억울한 사람 없도록 해야 정법’

잘못된 법은 조금씩이라도 개정

최소 비용ㆍ모든 거래 보장돼야 

자유시장경제도 꽃피울 수 있어 

미국에서는 옆집과 담장을 놓고 분쟁이 일어나면 각자 변호사를 고용해서 싸우도록 한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길에서 마주쳐도 소송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다른 이야기, 즉 강아지는 잘 크냐, 정원의 나무는 잘 자라느냐 등의 이야기만 한다고 한다. 이런 방식의 갈등 해결은 내가 보기엔 지혜롭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라 당사자들이 다투면 싸움이 될 수밖에 없고 대화는 각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제기하는 장이 될 수밖에 없다. 변호사들은 남의 일이라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는 사실과 논리에 근거해야 하니 더 객관적이다. 모든 것을 법에 의존하다보니 소송 만능이라고 하지만 나는 법적 해결이 좋다고 느낀 경우가 많았다. 

최근 아는 후배가 전원주택을 지었는데 워낙 부실건축이라 입주해 주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공사와 후배가 대화를 해도 평행선을 달리다보니 나는 법적 해결을 권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법으로 가면 막가는 것이니 웬만하면 참으라고 권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법으로 해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놈이 법대로 하자고 하네’라고 화를 낸다. 미국에서는 법이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담보해줄 수 있다고 믿는 측면도 있다. 이에 반해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전 세계적으로 바닥을 기고 있는 한국에서는 법이 제대로 내 권리를 찾아줄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있기에 사람들이 법적 해결을 피할 수도 있다.

선진국은 법치국가가 아닌 나라가 없다. 대한민국은 소득 2만 달러 대에서 오랜 기간 머물러 있자 선진국 진입이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한탄도 나온다. 하지만 사실 소득이 문제라기보다는 국민의식, 정부시스템, 사법체계, 제도와 관행 등이 더 문제다. 과연 대한민국이 법치국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소득만 늘어서도 안 되고 법치국가도 갖추어지지도 않은 채로 소득만 늘기도 어렵다. 법치국가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자유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건이다. 만약 우리가 자유시장경제를 꽃 피우고 싶고 소득의 증가를 원하고 부자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면 법치국가부터 돼야 한다.

“바른 법(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려라. 부디 치우치거나 억울하게 하지 말라. 온 나라 안에 법 아닌 것이 행하지 않게 하라. 이것이 곧 ‘내가 다스리는 것’이라 한다.” 부처님은 <장아함경>에서 불교의 법치국가관을 설하고 계신다. 

불교에서는 법치국가라는 단어 대신 정법국가라는 단어를 썼으면 좋겠다. 법치국가라는 단어보다 정법국가라는 단어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악법도 법이라고 국민을 탄압하던 독재국가 시절의 악몽이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법에 의해 처벌 받았기에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하는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독재자들에게는 ‘전가의 보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조사해보니 소크라테스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악법을 어떻게 봤을까? 부처님은 악법도 지켜야 한다 혹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으셨지만 잘못된 법에 대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법이라는 단어 대신 정법, 즉 바른 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거래를 할 때 속이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모든 거래에 담보를 제공하고 공증하고 보증금을 치러야 한다. 정부가 사법제도를 통해 거래가 최소의 비용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자유시장경제가 꽃 피울 수 있다.

미국에서는 기업이 법을 어기면 징벌적 손해배상이라고 해 실제 끼친 손해의 몇 배를 배상하게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잘못해 100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면 600억, 1000억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고, 그 중 100억원은 손해 받은 당사자에게 주고 나머지는 국고에 편입한다. 한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주장이 오랫동안 주장됐으나 정부가 시행하지 않았다. 여당이 이번에 정책공약으로 내세운 것을 보니 비로소 대한민국에도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는가 싶어 반갑기 그지없다. 구태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운운할 것도 없이 지금 법 테두리 내에서도 법을 잘 운영하고 부처님 말씀대로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면 법치국가가 될 수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잘못된 법 조항을 조금씩이라도 개정해 바른 법을 만들어야 한다. 자연법 사상에 의하면 잘못된 법은 국민이 지키지 않아도 되고 악법을 강요하는 정부에게는 국민이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법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는 악법을 바른 법으로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국민은 바른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정법이다.

[불교신문3275호/2016년2월22일자] 

 

윤성식 논설위원·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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