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 용성진종장학재단(총재 도문)     

“옛 조주선사는

앞니에 수염이 났더니라.”

가당찮아 고개를 불쑥 들었다.

“찾아봐라. 앞 이빨에

수염 난 사람이 있다.”

의심하지 말라?

코밑이나 턱밑에 털이 났다면

수염이라 하겠지만

이빨에 수염이 나다니?

상규는 어리벙벙해

의심으로 꽉 차

은적당을 나왔다.

상규가 덕밀암에 머물 때, 혜월화상의 연금이 완화되어 지리산 실상사와 운봉현까지 왕래가 허용되었다. 한 치 앞을 못 본 외눈깔 식자들의 조정에서 연금은 무엇이고 완화가 무엇인가. 나라의 앞날을 꿰뚫는, 식견 있는 사람들은 이런 걸 ‘꼴값 떤다’고 한다. 양민을 쥐 잡듯 해왔던 왕권은 밀려드는 외세에 곰 새끼가 되었다. 외교 무대에서 왕따를 자처해온 대원군의 쇄국은 민비세력에 밀려났고, 승냥이 떼를 닮은 서구열강과 통상도 맺었다. 그 틈새를 늑대처럼 엿보던 왜놈들은 항구가 열리자 정치, 군사, 경제적 침략의 본색을 드러냈다. 동학은 최시형이 최재우의 뒤를 이은 제2대 교주로 신도들을 다시 조직, 교화하고 확장해 경상도 영해에서 시국집회를 열었다. 주둥이로만 전통을 지키며 옹호한다는 꼴통보수들이 그 꼴을 못 봤다. 왕권에 이권으로 고리가 연결된 그들이 설쳐대니 실패로 끝나, 최시형이 탄압을 받던 때였다.

상규는 그 무렵 혜월화상을 따라 운봉에 사는 임상학 거사를 만났다. 임상학은 남원에서 이름난 부가옹으로 상규는 그의 아들 임동수와 가까워져 노자, 장자를 읽었다. 노자를 읽고 나니, 시시콜콜 허접스러운 경험의 가치를 유가들이 으뜸가는 규범으로 내세워, 사람마다 각각인 사고와 특성을 그놈의 틀 속에 집어넣으려는 획일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그것을 노자가 유연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듬해 덕밀암에도 여름이 왔다. 상규는 은적당 선실에서 혜월화상과 마주 앉았다.

“사서삼경에 노자, 장자를 읽었으니 머리로 아는 것은 그만하면 되었고, 이제부턴 마음으로 아는 것을 배워라.”

“예!”

그 때 상규는 혜월화상을 스승으로 받들었다.

“보니, 네 마음이 어지간히 차분해졌더구나…. 마음으로 아는 것은 앉는 것으로 시작된다. 앉는 것이 무엇이냐?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을 다 때려 부수어 의식을 한 곳으로 모아 하나로 딱 뭉쳐있게 하는 것이다.”

“생각을 때려 부수다니요?”

“잔말 말고 귀담아 들어! 그렇게 하려면 우선 부처님처럼 가부좌를 하고 단정히 앉아, 반쯤 뜬 눈으로 코끝을 보고 간절히 이뭐꼬? 의심하면서 네가 너를 스스로 보아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라는 것이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시범삼아 가부좌를 틀고 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리가 아프거든 잠깐잠깐 일어나 쉬어가면서 해도 된다.”

“방에서만 앉아서 해야 됩니까?”

“아니다, 네가 좋아하는 숲이나 바위 위도 괜찮다.”

까짓것 앉아 있기로 한다면 날인들 못 세우겠는가. 상규는 자신만만, 방으로 들어가 혜월화상이 가르쳐 준대로 앉아보았다. 그리 오래 앉아 있지도 않았다. 발목에서 무릎으로, 다시 엉덩짝으로 이어진 혈관이 꽉 막혀 아랫도리가 절절 저려오는데, ‘이뭐꼬?’고 지랄이고 온 신경이 장딴지와 허벅지에 가 있었다.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저리는 것은 당연지사, 이를 악물고 절절 저려오는 것을 꾹 참고 좀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는 굳은살, 허벅지와 다리는 감각이 없는 나무다리가 되었다. 이럴 때는 잠깐 일어나 쉬어가면서 하라고 그랬지,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아랫도리가 뻣뻣하게 굳어 옆으로 꽈당! 쓰러지고 말았다.

이거 쉬운 게 아니구나, 뻣뻣해진 다리를 북촌마님 빈대떡 주무르듯 주물러 정신을 차린 뒤 힘겹게 일어나 방안을 절룩절룩 걸어 근육에 피가 돌게 했다. 원상을 회복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시 자리에 앉아 ‘이뭐꼬’를 생각해보니, 상규는 지금 무슨 지랄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미워 혜월화상이 골탕 먹이겠다고 부러 벌을 세우러 앉아 있게 하지는 않았을 터이나, ‘이뭐꼬’를 되풀이 되풀이 뇌까리다보니 교룡산이 평지가 된 것 같고, 평지가 교룡산이 된 것도 같았다. 이태백이도 술을 사양할 때가 있는 법이다. 누가 알랴? 이러다 천지개벽하는 일이 벌어질지…. 하나 얼마 안 가 다시 다리가 저렸다. 이게 무슨 네굽질도 아닐 터인즉, 꼭 지랄발광을 해야 도를 통하는가. “염병할…!”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가 도로 쏙 들어갔다. 하긴 미련한 놈이 담벼락 뚫는다지 않던가, 그런 생각으로 입을 꾹 다물고 가부좌틀기와 사투를 벌였다.

어찌 한 술에 배부르겠는가? ‘간산용이상산난(看山容易上山難)’이라 산을 바라보기는 쉬워도 오르기는 어렵다. 좀 고약스럽기는 했지만 상규는 꾀를 쓰거나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이러다 보면 개울 속의 용도 하늘을 날 때가 있겠지, 제법 느긋하게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옹이가 꽝꽝하게 박힌 것 같던 엉덩이가 부드러워지면서 ‘이뭐꼬’가 가가에 미타불이요, 처처에 관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 혜월화상이 불러서 갔더니 앉으라 했다.

“옛 조주선사는 앞니에 수염이 났더니라.”

“옛—?”

가당찮아 고개를 불쑥 들었다.

“찾아봐라. 앞 이빨에 수염 난 사람이 있다.”

배나무에 사과가 열린다는 소린가? 거기에다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의심하지 마라.”

의심하지 말라? 코밑이나 턱밑에 털이 났다면 수염이라 하겠지만 이빨에 수염이 나다니? 상규는 어리벙벙해 의심으로 꽉 차 은적당을 나왔다.

가을이 되어 요사채 뒤, 팍 쪼개듯 깎여 벽을 이룬 바위 아래 낙엽을 모아 자리를 만들고 가부좌를 틀었다. 급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이뭐꼬’가 잘 나가던 판인데, 뜬금없이 ‘이빨에 수염 난 사람을 찾으라고?’ 그런 사람을 찾으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 난장판이나 약장수 굿판으로 돌아다녀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나절을 앉아 있어도 다리가 저리거나 엉덩뼈가 아프지 않을 만큼 단련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눈썹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날벼락이라 하니, 무슨 망혹을 버리고 스스로 성정머리를 봤다는 게 아니고,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아버지가 덕밀암을 찾아오셨다. 

암벽 밑에 둥지를 틀고 이빨에 털 난 사람을 어떻게 찾지? 그러고 있는데, 아버님이 오셨다는 시자의 말에 잠시 망설였다. 이럴 땐 어찌해야 하나, 살 맞은 뱀처럼 냅다 달아나 버릴까하다가 도적놈 눈자위 굴리듯 얼을 먹고 은적당 문을 열었더니, 아버님이 혜월화상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눈에서 번쩍 번개가 치면서 등허리에 보리까끄라기를 짊어진 심정으로 방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어버이를 저버린 죄 죽어 마땅하옵니다.”

숨을 죽이고 가만히 엎어져 버렸다. 머리통에 당장 목침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의외로 차분했다.

“이놈아, 2년 넘게 집에 돌아오지 못할 일이 생겼으면 인편에 연락이라도 해줘야 할 것 아니냐?”

이게 부자유친인가,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생각과는 달리 목소리에 불같은 기운이 빠져 있었다.

“내 이제야 발을 뻗고 잠을 자겠구나.”

그러고는 확인이라도 하듯 얼굴을 들여다보고 다시 혜월화상을 돌아보았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나간 자식이 2년이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를 낳아 길러보지 않으셨으니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아비 심정이 뭔지 잘 모르실 겁니다….”

그 말에 혜월화상이 아버지의 말을 잘랐다. 

“아버님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암자에 머물게 한 소승의 잘못이 크옵니다. 너그럽게 용서하시지요.”

“아닙니다. 제가 자식 놈을 잘못 가르친 탓이지요.”

“별말씀을…, 상규가 영특하고 또래답지 않게 아는 것이 많아 앞날이 촉망됩니다.”

“저 불효막심한 자식 놈을 그렇게 봐주셨다니 고맙습니다.”

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화제를 바꾸었다.

“그나저나 소문을 듣자하니, 스님께서는 큰 도를 깨치신 훌륭한 분이라고 칭찬이 자자합디다. 불가의 학은 말할 것 없고, 유학에 도학까지 식견이 높다 하시던데, 그런 어른께 제 자식 놈이 가르침을 받았다니, 죽은 나무가 산 나무로 자라난 듯하옵니다.”

“원, 과찬의 말씀을….”

아버지와 혜월화상 사이에 그런 이야기가 오가고, 상규는 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을 찾으려고 남원, 순창, 전주, 장수, 함양, 구례, 지리산까지 샅샅이 뒤졌다고 했다. 그래도 못 찾고 지난번 남원 5일장에서 허생원을 만나 막걸리를 마시다가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2년 전 누른대삼거리에서 상규를 보았는데, 교룡산성을 찾더라는 것, 그 말을 듣고, 만사 작파하고 정신을 빼 꽁무니에 달고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허—! 업은 아기 삼년 찾는다더니, 이 녀석을 교룡산에 놔두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웃음이 절로 나온 듯, 그동안의 시름을 잊은 쾌활한 모습이었다. 앞으로는 어디를 가면 간다고 말하고, 언제쯤 돌아오겠다는 허락을 받으라고 단단히 일러 주었다. 물론 상규는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한 뒤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드렸다.

[불교신문3275호/2016년2월22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