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함께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겠습니다”

 

붓다의 ‘깨달음과 삶’ 
기도문 형식으로 정리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행복과 불행이 결정 

진실하고 겸허하게 
따뜻하고 정의롭게 
평화롭고 소박하게
이것이 곧 붓다의 길

종단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에서 참석자들이 발원문을 독송하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먼저 붓다로 살자의 총론격인 발원문을 소개한다. 일찍이 부처님이 행하고 설했던 불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여러 고민과 토론의 과정을 통해 붓다의 불교관과 실천론을 온전히 함축하여 만들어낸 것이 ‘붓다로 살자 발원문’이다. 기본적으로 화엄경의 정신을 바탕으로 만든 이 발원문은 붓다의 삶을 기록한 초기경전, 붓다의 사상과 정신을 깊고 풍부하게 담고 있는 대승경전, 불교사상을 혁명적이고 독창적으로 계승한 선불교어록 등 여러 불교 전통을 기반으로 붓다의 불교가 지향하는 바와 그 의미를 담아내려 했다. 어려운 교리용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따라할 수 있는 기도문 형식으로 정리했다. 

기도문 전반부는 붓다의 깨달음과 삶을 노래한 것이다. 맨 앞의 ‘신기하고 신기하도다.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보니 사람이 오롯한 붓다이네’’라는 표현은 화엄경에서 깨달음을 설명할 때 첫머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잘 모를 때엔 사람이 죄 많은 업보중생이었는데, 제대로 알고 보니 사람이 거룩한 본래붓다’라는 뜻이다. 

미혹했을 때 붓다의 이름은 중생 싯다르타였다. 그 또한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것처럼 인간이란 ‘신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는 자, 자신도 모르는 업보 때문에 고통스런 벌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자, 무조건 빌고 한탄하고 죄의식에 벌벌 떠는 이외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싯다르타는 이러한 신의 굴레, 운명의 굴레, 업보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고 출가수행의 길에 나섰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길로 제시된 선정수행과 극한적 고행수행의 끝까지 다다랐지만,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모든 것을 과감히 버리고, 백지상태에서 기존의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진실(자신의 참모습)을 보고자 했다. 있는 그대로(中道) 주의 기울여 관찰하고 꾸준히 사유한 끝에 마침내 인간의 참모습이 ‘본래 위대한 붓다’라는 진실을 알아냈다. 이때부터 그는 ‘죄 많은 업보중생 싯다르타’라는 이름을 버리고 깨달은 자 ‘붓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늘도 땅도 놀랄 일이었다. 

붓다가 발견한 인간의 참모습은 ‘본인이 행위 하면 행위 하는 대로 그 뜻한 바가 바로 이루어지는 창조주’라는 것이었다. 행위하는 대로 실현되는 존재라는 뜻은 무엇인가? 아무리 성자로 칭송 받는 이라도 도둑질 하면 그는 도둑놈이다. 반대로 도둑놈이라고 지탄받는 이라도 자비행을 하면 그는 자비로운 사람이다. 자연과 사람을 평화롭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면 어찌 될까? 당연히 평화로운 사람이 되고 그 삶도 평화롭게 된다. 붓다는 “나의 진리, 나의 가르침은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바로 이해·실현·증명된다”고 말했는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 사람은 그가 행위하는 대로 바로 이루어지는 위대한 존재이다. 지금 여기 나에게 주어진 조건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극락과 지옥이 만들어지고 행복과 불행이 좌우된다. 

사람의 참모습이 본래 붓다라는 사실을 잘 알고 확신하면 털끝만큼의 결핍감도 생기지 않는다. 결핍감을 채우기 위해 고달프게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부산을 떨 일도 없다. 그런데도 본래 붓다인 사람들이 무지와 착각의 늪에 빠져 업보중생의 길을 고집한다. 소를 타고 있으면서도 부질없이 다시 소를 찾는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인도로, 티벳으로, 미얀마로, 동서남북을 쫓아다닌다. 

‘내 이제 마땅히 중생이라는 낡은 믿음을 버리게 하리 갈피 못잡고 헤맴에서 깨어나게 하리’. 붓다는 자신이 본 진실을 알리기 위해 죽는 그날까지 전 존재를 바쳐 길에서 길로, 마을에서 마을로, 집에서 집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했다. 기생집도 천민의 집도 무당집도 싸움터도 심지어는 전쟁터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로지 사람들이 업보중생이라는 낡은 믿음을 버리고, 본래 붓다임을 알도록 하기 위해 평생 길 위의 삶을 살았다. 

사람이 본래붓다라는 데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 진실을 알아 확신하고, 죽을힘을 다해 붓다처럼 살기만 하면, 그가 누구든 붓다이다. 유식하든 무식하든, 학벌이 좋든 나쁘든, 돈·명예·권력이 있든 없든, 남자든 여자든, 진보든 보수든, 장애가 있든 없든, 어른이든 젊은이든, 자본가든 노동자든, 금수저든 흙수저든,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인이든 무종교인이든 관계없이.

그러한 붓다의 삶과 깨달음을 이어받은 우리들은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 천지를 진동시킨 붓다의 말씀을 따라 진실하고 겸허하게, 따뜻하고 정의롭게, 평화롭고 소박하게 살면 된다. 그것이 곧 지금 여기 거룩한 붓다로 사는 길이다. 

[불교신문3275호/2016년2월22일자] 

도법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