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 마친 후에야 대가사를 벗으셨다

출가자 역시 의식주가 삶의 기본

불제자 아니더라도 모든 행위가

양심에 부끄럽지 않아야 바른 삶 

<금강경>은 특이하게 의식주(衣食住) 얘기로 시작했다. 의(衣)는 걸식 나갈 때 가사(袈裟)를 수함이고, 식(食)은 걸식하여 먹는 것이며, 주(住)는 기원정사이다. 의식주는 현상적 삶을 꾸려가는 기본이다. 바로 이 기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출가자도 역시 현상적 삶은 의식주를 기본으로 하는데,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아야 한다. 사실 불제자가 아니더라도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행위가 양심에 부끄럽지 않아야 바른 삶이 아니겠는가.

걸식(乞食)은 단순히 밥을 비는 비굴한 행위가 아니다.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수행한 것을 일반인들과 나누는 소통의 시간이다. 부처님 이전의 수행자들도 그렇게 해 왔던 것이 인도의 전통이었지만,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법회와 같은 수준의 중요한 시간으로 봤기에 법회 때와 마찬가지로 대가사를 입었던 것이다. 현재 남방의 탁발의식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관행이지만, 부처님 당시의 탁발은 상담 시간을 겸했을 것이다.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탁발을 나가시던 때에 일어나는 많은 얘기들이 있다. 현재 이 걸식의 정신은 불공(佛供)과 기도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불공과 기도를 통해 스님들은 신도와 만나며 아울러 갖가지 상담을 한다. 반면 신도들은 자기의 목표를 설정하고 혼신의 힘을 쏟는 것이다. 따라서 불공과 기도는 스님들과 신도가 마음을 열고 만나는 시간이다.

수행자는 도량에 머물러야 한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단생활을 했다. 집단수행은 부처님이나 장로 스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석존 당시의 죽림정사(竹林精舍), 기원정사(祇園精舍), 대림정사(大林精舍), 영산회상(靈山會上) 등의 유적이 남아 있고 그 이후로도 아잔타나 엘로라 등의 집단 수행처가 있는 것이다. 집단수행은 혼자 수행할 때의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만일 대중처소가 아닌 곳에서 스승도 없고 탁마할 도반들도 없이 지낸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대중이 스승이고 도반들이 스승이 되는 법인데, 수행이 얕은 상태에서 스승도 없이 마음대로 사는 것은 수행자라고 보기 어렵다. 재가자라도 혼자 살면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석존께서는 출타하실 때 대가사를 착용하셨다. 사람들은 먼저 외모로 판단한다. 흐트러진 복장을 하고 다니면 누가 봐도 수행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상대로 하여금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은 전법이나 포교에 장애를 일으킨다. 우리나라의 옛 스님들은 장삼에 가사를 수하고 다니셨다고 한다. 지금 똑같이 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두루마기까지는 잘 갖춰 입고 다녀야 한다. 사업을 하는 재가자도 상담자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출가자와 재가자의 모습은 다를지라도 삶을 영위하는 이치는 같다.

수행자의 식사는 어떠해야 할까? 석존께서는 걸식하고 돌아오시어 그대로 밥을 드신 후에야 대가사를 벗으셨다. 그것은 법회나 걸식 및 식사가 동일하게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다. 현재 조계종의 발우공양도 그런 정신을 계승한다. 발우공양을 할 때는 장삼과 대가사를 착용하고 <소심경>을 외운다. <소심경>의 내용은 부처님의 일생을 요약한 것과 불보살의 명호를 외워 그 은혜를 기리고, 공양물이 자기에게 올 때까지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며, 아울러 아귀까지도 배려하면서 자신의 공부를 돌아보고 반드시 성불하겠다는 원력을 굳건히 한다. 공양이 끝날 때까지는 <소심경> 외의 어떤 말도 허용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식사를 마친 후에 대가사를 벗으시고 발우를 거두신 후 이윽고 발을 씻으셨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맨발로 다니셨기 때문에 씻으신 것이기도 하지만, 걸식하러 다녀온 시간의 그 모든 것을 다 정리해 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가부좌로 앉으시어 정념의 경지에 드셨다. 이것이 일체의 행위를 종식하는 적멸의 경지이다.

<금강경> 제1분에서는 부처님께서 가장 깊은 반야바라밀을 보여주셨다. 반야바라밀은 목석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현상(事)으로는 지극히 미묘한 것(妙用)이며, 본성(理)으로는 적멸한 삼매(眞空)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전법교화 45년의 삶이었다. 여기에서 마음이 열리면 곧 여래를 본다.

[불교신문3274호/2017년2월18일자]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 삽화 박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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