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대를 속박하는가

법현스님 지음 호남출판

수행의 목적은 자비행이다
그것을 마음으로 깨달을 때
삶도 행복해진다…

보시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바래서 안된다
보시는 넘쳐흘러야 한다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을 얻었느냐고 한다면 꼭 할 말이 없어요. 굳이 얻을 것도 버릴 것도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이요, 잡을 수 없는 바람이란 것을 알고, 부지런히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온갖 속박에서 벗어나고, 올바른 삶을 살게 됩니다.”
전남 장수 죽림정사에서 수행하고 있는 법현스님은 두 번에 걸쳐 출가를 했다. 20살 때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가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환속했다. 그러나 사회에서의 삶은 늘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40살 나이에 다시 출가해 25년이 지나고 “이제야 알겠다”고 말한다. 무엇을 알았을까. 스님은 저서 <누가 그대를 속박하는가>를 통해 동서양의 철학과 고전을 인용하며 “삶이란 구름같고 바람같은 것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마음으로 깨달을 때 삶도 행복해진다”고 전한다.

장수 죽림정사에서 수행하고 있는 법현스님. 스님은 불자들에게 ‘어떤 삶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인가’에 대해 과거 여러 스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시한다. 결론은 “수행이란 자비심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스님은 한중일 많은 선사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일본 백은 혜학스님이 살던 사찰 아랫마을에 만두집이 있었다. 만두집 부부는 스님을 존경하며 공양을 마다하지 않았다. 부부에게는 혼기를 앞둔 딸이 있었는데 어느날 그 딸이 임신한 것을 알았다. 격노한 아버지가 상대가 누구냐며 무섭게 다그치자 딸은 어떨결에 “윗 절 스님이…”라고 거짓을 말했다. 존경하던 스님이 아이의 아빠라는 말에 부부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몇 달 뒤 딸이 아이를 낳자마자 아버지가 사내아이를 들고 선사를 찾아가 아이를 주고 왔다. 이유도 모른채 난감한 상황에 빠졌지만 선사는 아이를 업고 젖동냥을 다니며 “선사가 아니라 호색한”이란 멸시도 감내했단다. 얼마뒤 심한 자책감에 빠진 딸이 사실을 고했다. 부부는 선사에게 달려가 땅이 이마에 땋도록 사죄를 올렸다는 일화다.
법현스님은 “선사의 대답은 아이가 아빠를 찾았으니 다행이라는 단 한마디였다. 선사는 이미 분노하거나 분별하는 마음도 없이, 그냥 한 생명을 지킬 뿐이었다. 그래서 세간의 비난도 스님에게는 비난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전하는 듯, 법현스님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어떤 마음이 바른 불자의 자세인지 제시를 한다. 보시를 하는 마음은 어떠해야 하나. 스님은 허름한 옷을 입고 한 잔치집을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던 한 고승의 이야기를 전하며 “보시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바래서는 안된다. 보시는 나누어 가지는 것이므로 넘쳐흘러야 한다. 넘쳐흐르는 것을 헤아려서도 안된다”며 “보시하는 이, 보시하는 물건, 보시 받는 사람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삼륜공적(三輪空寂)’의 의미를 전한다.
또한 불자들이 수행하는 목적에 대해 ‘자비행을 근본에 둬야 한다’고 지적하며 한 스님의 자비행을 소개한다. 어느 시골 마을, 매일 새벽이 되면 사람들 왕래가 잦은 네거리에 짚신이 걸렸다. 아무나 가져다 신으면 되는 신발이었다. 매일같이 짚신이 걸리자 마을 사람들이 누군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거리에 인적이 완전히 끊긴 시각, 암자에 사는 스님이 짚신을 걸어놓고 가는 것이 아닌가. 짚신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민초들을 위한 스님의 자비행은 그 이후로도 20년이나 이어졌다고 한다.
일제시대, 수월스님이 만주에 머물면서 조선을 떠나 만주로 오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같이 짚신과 주먹밥을 나눠줬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법현스님은 “수행은 결국 중생을 위한 자비행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곧 자비심”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결말은 “나누고 걸림없이 살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더 가지려는 마음과 분별하는 마음이 결국 내게 독화살이 돼 나를 구속하고 괴롭게 만드는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진리란 상상과 관념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을 지켜 나가는 평상심에 있다”고 법현스님은 말한다.
1951년 남원에서 출생한 법현스님은 대학시절 1970년 자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가 환속, 고려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다. 이후 국문학과 겸임교수, 아태환경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1990년 도문스님을 은사로 재입산했다. 에세이집 <삶이란 한 조각 흰구름>을 비롯해 다수의 시집과 수필집을 출간했다. <초발심자경문> <천수경> <원각경> <법화경> 등을 역경한 바 있다.
[불교신문 3273호/2017년2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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