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스님, 신도를 위하여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매일 아침 중앙종무기관 종무원들이 예불을 하며 독송하는 발원문의 한 구절이다. 오늘 아침에도 가슴에 새긴 말이다. 종무원으로서 맡은바 소임이 불사(佛事)임을 자각하고, 내가 만나는 사찰, 스님, 신도님이 바로 부처님임을 깨닫고 있다. 아울러 일상 속에서 수행 정진하는 불자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하루를 연다.

귀중한 삼보정재에 힘입어 생계를 누릴 수 있게 됐으니 참으로 희귀한 청복(淸福)이다. 어려서는 부모님을 따라 절에 다니며 막연히 불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해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불교에 대한 안목이 조금씩 열렸다. 불교적인 사유와 실천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1994년 종단개혁을 맞았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의 일원으로서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 미력이나마 힘을 보탰다. 그리고 이름 없는 대중의 힘으로도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개혁으로 거듭나는 종단을 바라보며 불자로서의 자존감도 부풀어 올랐다. 이후의 대학생활은 모든 것을 불교에 맡겼다. 대불련 대구경북지부장과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우리 사회를 보다 행복하게 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법보종찰 해인사였다.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는 (도림법전) 종정예하가 주석 중인 사찰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여기서 내가 역량을 발휘하면 한국불교가 발전하고 우리사회가 발전하리란 거대한(?) 포부를 품었다. 통일신라 목조부처님을 봉안할 대비로전 낙성법회, 약 6개월간 밤을 새가며 준비한 제1회 해인만다라 글·그림 잔치, 지역사회와 소통과 화합을 위해 마련한 해인사 주지배(杯) 배구대회, 해인사만의 특별한 문화제인 비로자나데이 축제 등이 내 마음 속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절, 참선, 염불도 중요하지만 종무원으로서 사심 없이 업무를 대하고 만나는 모든 불자에게 미소와 친절로써 대하는 일도 결코 의미가 적지 않은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성철스님은 수시로 “부처님 밥값을 내놓으라”며 선방에서 정진하는 수좌들을 경책했다. 깨달음의 심오한 경지에 대해 내가 말할 계제는 못 된다. 다만 내가 주어진 자리에서 공심(公心)을 행동으로 옮기며 최선을 다해 사부대중을 보듬는 일도 밥값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시 한 번 발원문을 되뇐다. 내가 만나는 모든 이가 부처님이다.

 

성만제 조계종 종무원조합 위원장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