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모두가 

불교떡국만을 먹는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진정한 새해를 

불교와 함께 열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불교도들은 

붓다의 충만한 가피를 

한 번 더 향유하게 된다

설날하면 으레 세뱃돈과 함께 떡국이 떠오르곤 한다. 떡국은 밝은 흰색을 통해서 한 해의 상서로움과 모든 길함이 들어오는 것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그러므로 설날 맨 처음 먹는 떡국만큼은 김이나 달걀지단과 같은 고명을 얹어 먹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설 떡국에는 흰 밝음을 통해, 새로운 한 해의 모든 어두움을 물리치고 올바른 기운을 북돋는 기원의 의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백설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우리는 흔히 백설기하면 콩이나 건포도가 든 떡을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원래 백설기는 흰색을 통해서 길함을 상징하는 제사용 떡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용 백설기에는 콩 등이 들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왜 하필 흰색일까? 흰색은 단군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민족의 밝음에 대한 추구와 연관된다. 우리를 흔히 배달민족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의 배달은 ‘밝음’의 뜻으로 이는 백의민족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우리의 밝음과 흰색에 대한 추구는 참으로 유장한 연원을 가진다고 하겠다.

그런데 떡국에 ‘불교떡국’과 ‘유교떡국’, 두 가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불교와 유교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연원이 무척이나 길다. 이 때문에 전통문화와의 습합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불교떡국과 유교떡국을 구분하는 것은 가래떡을 써는 방식에 있다. 불교떡국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빗금으로 써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에 반해서 유교떡국은 수직으로 떡을 써는 데, 이럴 경우 단면이 동전 같은 원형이 된다. 오늘날에는 ‘세상에 이렇게 만든 떡국이 있느냐’고 하겠지만,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실제로 이런 동전모양의 떡국을 먹곤 했다.

조선의 성리학은 말단까지도 방정한 것을 추구한다. 이 때문에 가래떡을 사선으로 써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또 여기에 동전 같은 떡국을 먹으면, 금전운이 좋아진다는 상징성을 부가했다. 즉 흰색의 길상에 재물복이 첨가되는 셈이다.

불교떡국은 빗금, 즉 빗살로 썬 떡국이다. 빗살은 빗살문토기에서처럼 아주 오랜 연원을 가지는 벽사(闢邪)의 상징이다. 즉, 흰색의 길상에 모든 삿됨을 물리친다는 의미가 첨가되는 것이 것이다.

실제로 이와 같은 차이는 유교와 불교의 창호(窓戶)를 구성하는 문살에서도 살펴진다. 유교의 문살이 바둑판과 같은 방형으로 구성된다면, 사찰의 문살은 사선으로 된 빗살을 기본으로 한다. 물론 건물규모에 따라서 양자가 혼재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전체비율에서는 이 원칙이 오늘날까지도 지켜진다. 즉, 사선(斜線)은 불교, 정선(正線)은 유교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사선은 정선에 비해서 미적으로 뛰어나다. 이런 점에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은 불교떡국과 유교떡국의 선호도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우리민족의 미에 대한 추구는 결국 유교적인 조선시대에도 떡국만큼은 불교적인 압승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가 불교떡국만을 먹는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는 진정한 새해를 불교와 함께 열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불교도들은 붓다의 충만한 가피를 한 번 더 향유하게 된다. 이것은 불교도만이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축복이 아닐까!

[불교신문3268호/2017년1월25일자] 

자현스님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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