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짤라오마 나무가 얼매나 아프겠노?”

월내 길상선원에서 입승을 오래 사셨던 법흥스님에겐 동인이라는 꼬마상좌가 있었다. 통영 미래사에서 키우다가 묘관음사로 올 때 데려온 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한창 부산스러울 나이라 언제나 일을 저질렀다. 큰일은 아니지만 어른들의 눈으로 볼 때는 야단맞을 짓을 벌리곤 하는 개구쟁이였다. 게다가 잠시도 입을 놀리지 않는 수다쟁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원주 스님이 지퍼를 채운다고 했을까.

어느 날 큰스님이 아끼고 사랑하는 동백나무 가지를 잘라 가지고 놀다가 된통 들켜버렸다. 동물도 사랑하지만, 꽃과 나무도 끔찍이 사랑하는 큰스님 눈에 띄었으니 동인이는 야단치기 전부터 벌벌 떨고 있었다.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동인이 이놈, 회초리 해오너라!” 이놈이 한참 만에 오더니 하필이면 애지중지 키워 고목이 된 진달래 가지를 꺾어온 것이다. “니는 매를 버는구나. 이기 뭐꼬?” 동인이는 아무 눈치도 없이 곧이곧대로 답했다. “진달래 가지요.”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겁에 질려 말했다. “야 이놈아! 살아있는 나무를 또 꺾어와. 그걸 그리 짤라오마 나무가 얼매나 아프겠노. 니도 팔 하나 누가 뿐지르마 아프겠제.”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몰라도 동인이는 눈물만 뚝뚝 흘리고 서있었다. 쉴 틈 없이 나불대던 수다는 어디로 도망갔는지 암말도 않고 장승이 되어버렸다. 한참 있다 입을 열더니 이렇게 말했다. ‘굵은 나무는 때리면 너무 아플 것 같아 가는 나무를 고르다보니 진달래 가지가 가늘어 안성맞춤이라 생각되어 꺾어 왔다’고 조곤조곤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큰스님은 어이가 없는지 한바탕 웃는 것으로 끝이 났다. 어린애다운 거짓 없는 말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꼬마 동인이는 달라졌다. 나무는 물론 화초도 함부로 꺾는 일이 없어진 것이다. 이제는 잘 자라서 지현이라는 어엿한 스님이 되었다. 해인사 강원시절엔 흥륜사에 몇 번 들렸으나 연락이 없어 궁금하다. 얼마 전, 은사인 법흥스님으로부터 전라도 쪽에서 주지를 살며 포교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눈망울이 크고 속눈썹이 길어 초롱초롱 하던 눈빛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리라.

[불교신문3268호/2017년1월25일자] 

법념스님 경주 흥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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