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재산은 무엇인가”

40년 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능엄신주 약찬게 보문품 독경

붓글씨로 금강경 140번 사경

생사해탈 전법교화 뒷전인 채

치부와 편안함만 추구하는지

스스로 돌아보라 따끔히 경책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며 환하게 웃는 스님은 천진불 같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노스님의 방안은 정갈했다. 벽에 달린 옷걸이에 걸린 낡은 승복은 소박함을 보여줬다. 어른 키보다 큰 2개의 책장에는 우리말과 일본어로 된 불교학 서적들이 꽂혀 있다. 스님의 대학시절 은사인 조지훈 시인 전집도 보인다. 앉은뱅이 책상에는 스님이 좀 전까지 읽었을 법한 책이 펼쳐져 있었다. 사전과 경전 몇 권도 놓여 있다. 방 한 구석에 놓인 발우 2개도 보인다. 그 안에는 스님이 직접 부산 국제시장에 가서 산 주전부리가 가득 담겨 있다. 더함도 덜함도 없는 이 방 주인은 바로 조계종 원로의원 법흥스님이다. 

지난 4일 조계총림 송광사 화엄전 방우산방(放牛山房)에서 법흥스님을 만났다. 올해 연세 여든일곱의 노스님은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이제나 저제나 손님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삼배를 올리고 앉기 무섭게 스님은 연하장 대신이라며 평소 써둔 붓글씨를 건넸다. “인쇄된 천편일률적인 연하장은 왠지 정이 없다”는 스님은 “평소 경전이나 책을 보며 좋다고 생각한 글귀들을 적어 스님과 지인들에게 보내 신년인사를 한다”고 한다. 조지훈 시인 글이나 김동화 박사가 번역한 <불교학개론> 등 다양했다. 

스님은 맑고 청정해 보였다. 재미있는 얘기를 해준다며 웃을 때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천진했다. 미수(米壽)를 앞뒀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70대 이상 노인들이 난청으로 힘들다는 세간의 통계도 스님 앞에서는 무색했다. 보청기 없이도 잘 듣고 법문해주는 스님에게 먼저 건강비결을 물었다. 특별한 게 없다는 스님은 조주선사 이야기로 답을 대신했다. “조주스님이 120세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장수비결은 다름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 일과에서 비결을 찾을 수 있을까. 스님은 아침에 일어나면 화엄전에서 예불을 올린 후 능엄신주를 비롯해 <법화경요품>, <화엄경약찬게>, <관세음보살보문품>, <원각경>을 독경한다. 벌써 40년이 넘도록 해온 일과다. 손때가 묻은 경전에는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있다. 나머지 시간엔 불서를 읽고 주력을 왼다. 요즘엔 <백일법문> 개정증보판을 다시 읽는다는 스님은 성철스님 생전에 ‘백일법문’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연세 때문에 참선하기 어렵다는 스님은 주력을 한다. 날마다 ‘옴마니반메훔’을 외며 수행 중이다. 틈틈이 붓글씨도 쓴다. 평소 책을 보며 적어두었던 글귀를 주로 쓴다. 한지에 옮겨 적는 것도 좋지만 손글씨를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스님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지난 30년간 <금강경>을 사경해 만든 병풍만 해도 140점이 넘는다. 방우산방에는 스님이 손수 적은 금강경 병풍이 있는데, 촘촘하게 적힌 5400자를 보니 스님이 병풍 한 폭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기울였을지 짐작이 갔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수행하며 지내고, 공양 때는 포행 가듯 큰 절을 오가는 것이 스님의 건강비결인 듯했다.

구순이 가까워 오지만 스님은 여전히 남다른 기억력을 갖고 있다. 별명이 ‘컴퓨터’ ‘녹음기’일 정도다. 과거 어느 날의 일을 연도와 날짜까지 정확하게 짚어서 이야기해주는 것은 물론, 읽었던 책 내용도 정확하게 기억해 들려준다. 세월이 흘러도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 속사포처럼 빠른 스님의 법문도 그대로였다. 이런 스님을 두고 구산스님은 생전에 “총기가 좋다”고 자주 칭찬했다고 한다. 지금도 스님은 <불교학개론> 중 ‘지혜론’이나 대은스님의 법문들을 줄줄 욀 정도다. 스님에게는 평소 책을 보다 마음에 든 글귀를 적어 놓는 공책이 있다. 가로쓰기가 편한 요즘 세대와 달리 세로쓰기를 즐기는 스님은 공책에 한자 한자 옮긴다. 책 구절을 적어놓은 공책을 펼쳐 보이는 스님은 끊임없이 탁마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출가해 지금까지 검약하며 공부하는 삶을 이어온 스님인지라 오늘의 한국불교 현실을 보면 안타까운 점도 있다고 한다. 스님은 해인사에서 기도하면서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을 하루도 안 빠트리고 들었다. 당시 성철스님이 지적한 한국불교 문제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절 부처님은 영험해서, 우리 절에서 기도한 사람은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면서 그저 치부(致富)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본질을 잃고 있다는 게 스님의 지적이다. 

스님이 출가할 당시 만해도 정화운동으로 한국불교가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용돈은 고사하고 고무신 한 켤레 얻어 신기도 어려웠던 때였다. 직지사 강원에서 1년간 관응스님의 가르침을 받을 때도 공양시간에 밥을 돌리다 부족하면 다시 걷어 나눠먹고 살아야 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저녁이 되면 스님들은 텔레비전 보고 있고, 어지간한 사찰 주지마다 자가용을 다 가지고 있다”며 “세상이 화려하고 잘 사니 어디 공부하려고 하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중 한 구절을 일러줬다. “총명한 지혜가 업의 힘을 능히 막을 수 없고 마른 지혜만 가지고 윤회의 고통을 면할 길이 없다. 말을 짓고 설법하는 사람은 그럴 듯하게 얘기하지만, 경계에 부딪히면 미혹해져 말과 행동이 다르게 된다. 생사가 없는 이치를 알긴 알았지만 견성 못한 것은 공부가 아직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자라면 응당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이라는 듯 스님은 몇 번이나 이 대목을 강조했다. “우리가 불교를 믿는 목적은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에 가는 데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꾸준한 탁마를 당부했다.

58년째 수행자로 살아온 스님, 여생 또한 수행자의 면모를 잃지 않을 스님은 삶과 죽음 또한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강조했다. “태어났다면 늙으니 병들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늙고 병들면 죽게 마련이니 나라는 육신은 가아(假我)라 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은 이 순간에도 일초 일초 시간이 가기 때문에 죽음의 경계로 한다. 생과 사는 동일한 점에서 출발하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열심히 사는데 그게 곧 죽음을 향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생사가 열반이고 열반이 번뇌”라고 설했다. 사즉생, 생즉사라 결국 일체유심조,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스님은 ‘재미있는 이야기’라며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유럽여행길에 오른 한 남자가 알프스 산을 올라갔다. 문득 목이 말라 시냇물을 마셨는데, 마시고 보니 안내판에 독을 뜻하는 ‘포이즌(poison)’이란 글자가 보였다. 독이 든 물을 마셨으니 이제 죽나 싶어 걱정이 된 남자는 서둘러 스위스 제네바 병원으로 갔다. 의사를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의사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 그건 독이 아니라 생선을 뜻하는 프와송(poisson)으로 낚시를 하지 말라는 안내판이라고 알려줬다. 그 순간 남자의 병은 다 나았다. 그게 바로 일체유심조이다. “현대인이 추구하는 돈이나 재산, 지위나 권력은 모두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스님은 “생사해탈 하려면 결국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죽을 때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재산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시라”며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졌다. 

게다가 직접 쓴 글귀를 짚어가며 설명해줄 만큼 자상하다.

[불교신문3268호/2017년1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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