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여러 번 답사했던 

내가 왜 육품불상을 

이제 와서야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정유년에 만나게 될 또 다른 

육품불상을 반드시 볼 수 있게 

근기를 쌓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아직도 공부하다보면,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근기(根機)가 부족해서라고 한다. 근기란 받아들일 수 있는 개인의 능력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입으로 말씀을 전하시지 않고 빛을 나투어 설법했다고 한다. 빛으로 설법했다고 해 부처님의 설법을 광명설법(光明說法)이라고 한다. 근기가 부족한 나 같이 우둔한 사람은 부처님께서 아무리 그 빛을 나투신다고 해도 오롯이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다. 

지난해 말, 잠시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紫禁城)에 다녀왔다. 흔히 자금성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경복궁의 몇 배가 되는 황궁이 있는 곳으로 안다. 어마어마하게 높은 성벽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해자(물), 거대한 성문, 엄청난 규모의 태화전(太和殿) 등이 인상에 남아 있게 마련이다. 

불교미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금성은 중국 불상을 가장 다양하고 많이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징을 수도로 정했던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황실에서 만든 불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자금성이다. 이들 불상은 대부분 청나라 건륭 황제(1735~1795)가 만든 것이다.

문화와 예술에 남다른 조예가 깊었던 건륭 황제는 황궁에서 전문적으로 불상을 만들기 위해 양심전 조판처(養心殿 造辦處)를 설치하고, 완성된 불상을 직접 감수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자금성에는 양심전이 남아 있으며, 지금 이곳은 불상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양심전에는 중국 불상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을 만큼 많은 불상이 전시돼 있다. 이 중에는 육품불상(六品佛像)이라고 하는 눈에 띠는 불상이 있다. 건륭 황제는 황실 가족들만이 불교를 수행할 수 있는 육품불루(六品佛樓)라는 특별한 전각을 만들었다. 이 전각은 황실 가족이 육품을 수행하기 위한 공간으로, 육품이란 근기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 여섯 개의 품(등급)을 말한다.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이 수행법은 반야품(般若品)과 티베트 밀교의 5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실 가족들은 건륭 황제의 명에 따라 이곳 육품불루에서 각자의 근기에 따라 이 육품을 수행했다. 

육품불상은 육품불루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당시 8개의 육품불루가 설치됐고, 각 전각마다 크고 작은 불상이 786존이나 봉안돼 있었다고 한다. 육품불상이 일반적인 불상과 다른 점은 근기에 따른 수행의 단계를 나타내는 ‘반야품’이니 ‘덕행근본(德行根本)’이니 하는 육품의 품명(品名)이 대좌 뒷면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황동으로 주조된 독특한 이 불상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황실 가족만이 들어갈 수 있는 신성한 공간인 육품불루에서 수행하고 있었을 건륭 황제와 그의 가족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근기를 가지고 수행의 단계에 이르고 있었을까? 순간, 이곳을 여러 번 답사했던 내가 왜 육품불상을 이제 와서야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내가 근기가 부족해서 육품불상이 지금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정유년에 만나게 될 또 다른 육품불상을 반드시 볼 수 있게 근기를 쌓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불교신문3267호/2017년1월21일자] 

배재호 논설위원·용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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