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들고 버거운 이들은 

누구라도 언제든지 찾아와 

어깨동무하자는 뜻도 담겨

할아버지, 어저께 엄마랑 절에 다녀왔어요. 그런데 할아버지, 절에 들어가는 일주문은 왜 문은 없고 기둥만 서 있어요? 어째서 일주문이라고 하나요?

절 어귀에 두 기둥만 우뚝 서 있는 일주문은 절에 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문이지. “문이 없는데 어째서 문이라고 부르느냐?”고 하는 물음은 할애비에게도 적잖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구나. 음…. 몇 십 년 절에 다니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드나드는 어른도 적지 않은데 우리 누리는 찬찬히도 살폈구나. 

먼저 ‘일주’라는 말부터 살펴보자꾸나. 기둥이 하나밖에 없는 문이라는 얘기인데 기둥이 둘이 서 있단 말이야. 기둥이 하나밖에 없으면 문이 될 수 없지. 문은 울타리나 담과 이어져 있는데 일주문에는 잇대어 있는 야트막한 울타리나 높다란 담이 없어요. 옆에서 보면 기둥이 한 줄로 서있다고 해서 일주문이라고 하게 되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고, 한 마음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뜻이 담겼다고 하는 이들도 있더구나. 여기서부터는 바깥세상에서 겪는 여러 가지 생각 갈래를 내려놓고 오로지 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다가서라는 뜻에서 일주문이라고 불렀다는 얘기가 알맞을 것 같구나. 

할아버지는 누구라도 넉넉한 부처님 품에 안기듯이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문은 말할 것도 없이 울도 담도 세우지 않았다고 여겨요. 누리야! 네가 좋아하는 우리 집이라는 동요 생각나지? “내가 커서 아빠처럼 어른이 되면 우리 집은 내 손으로 지을 거예요. 울도 담도 쌓지 않는 그림 같은 집…”하는. 절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그림 같은 집이라는 얘기야.

생각나니? 부처님은 늘 “우리는 모두 서로를 살리는 참 좋은 어깨동무”라고 하셨다고 지난번에 한 말. 이와 같이 울도 담도 없고 문조차 없는 일주문에는 삶이 힘들고 버거운 이들 누구라도 언제든지 찾아와서 어깨동무하자는 뜻이 담겼어요.

사람들은 이 문 안에 들어설 때는 학교성적 같은 걱정거릴랑은 다 내려놓고 오롯이 부처님과 하나 되려는 마음으로 손을 모으고 머리 숙여 반절을 올린단다. 그렇지만 부처님을 뵙는 게 너무 반가운 사람은 한달음에 달려 들어가도 괜찮아요. 참 좋은 어깨동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불교신문3267호/2017년1월21일자] 

변택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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