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 일으킨 가업을 이어받아 30년 가까이 불상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10대 후반에 불교공예에 입문했다. 작업 도중 왼손 힘줄을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수술까지 치른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것을 만류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복지사로 5년 동안 일했다. 그래도 장남의 책임을 저버리기가 어려웠다. 옻독이 올라 두 팔과 다리는 언제나 상처투성이다.

지금까지 200여 곳의 사찰에 불상을 보급했다. 남해 보리암, 화성 신흥사, 대구 불광사, 불교TV 무상사, 중국의 불교회관 등등. 남북화해를 염원하며 지난 2005년 조계종이 금강산에 세운 신계사에도 봉안됐다. 축성전과 명부전, 나한전의 불상이 그것이다. 내가 조성한 부처님이 경배의 대상이 되고 역사의 한 자락에 자리매김한다는 보람 덕분에 아무리 고되어도 그만둘 수가 없다. 

몇 년 전부터 내가 몰입하고 있는 주제는 ‘건칠불(乾漆佛)’이다. 한지와 옻칠로 만들어가는 종이부처님. 1000여 년 전부터 한반도의 장인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공법으로 대구 파계사, 영덕 장육사 등의 건칠불은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산 제품이 넘쳐나는 시절, 한국적 불상의 차별성을 지키기 위해 선택했다. 재료는 종이지만 촉감은 가볍고 단단한 플라스틱 느낌이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또는 제작기간이 너무 길어서 아무도 엄두를 못 내는 일이다. 그러나 웬만해선 팔리지 않을 작품을 완성하고 싶다는 게 나의 고집이다. 

한지는 부드러운 만큼 강하다. 옻칠은 천연도료로서 그 자체가 순수하다. 물과 만나면 금세 풀어져 힘을 잃어버리고 마는 한지를 한 장 한 장 정성껏 옻을 발라 쌓는다. 그리고는 그것을 습기 가득한 칠장 안에 넣으면 비로소 이것과 저것이 만나는 인연의 정체가 드러난다. 불교의 연기(緣起)를 체득하는 순간이다. 습기에 약한 한지란 놈과 습기가 있어야 하는 옻칠이란 놈이, 서로 상극인 두 존재가 만나 멋들어진 부처님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분업화가 정착된 시대지만 모든 공정 전체를 손수 도맡는다. 내가 만드는 불상에 시주된 돈에는 부자들의 거금만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쌈짓돈도 들어있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붓질 한번 허투루 할 수 없다. 불상 제작은 내게 사업이나 창작이 아니다. 수행이고 책임이다. 

[불교신문3267호/2017년1월21일자] 

이성건 금오불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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