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중국 상해 여행 중에 정안사에 다녀왔다. 백화점과 세계적 명품점이 있어 유럽의 거리를 연상하게 하는 상해시 남경서로에 있는 절이다. 정안사는 오나라(238~251년) 때인 247년에 창건되었으니 1800여 년이나 된 절이다. 안내 책자에 보니 절의 원래 이름은 중원사 또는 중운사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북송 태종 원년인 1008년에 지금의 정안사가 되었다고 한다. 원래 위치는 우쑹강 북쪽 기슭이었으나 강이 범람하여 절의 토대가 위험해지자 남송 시대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원나라 명나라 시대에 수차례 무너지고 다시 지었다고 한다.

지금 건물은 청나라 때인 1880년에 중건하였고, 1998년에 보수를 시작하여 옛 모습을 재현하였다고 한다. 절의 외벽이나 지붕, 황금색 탑이 주변의 건물들과 어색하지 않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에 들어서니 한 움큼 향을 쥐고 공손하게 기도하는 사람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발원이 마당을 연기로 가득 메우고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평생 죄를 짓고 살지 않을 것만 같았다. 

화강암과 대리석 회랑, 나무로 지은 웅장한 법당을 돌아보면서 불상의 크기와 재료의 다양함에 놀랐다. 옥이나 향장목으로 조각하고 은으로 만든 불상이 보인다. 나무기둥과 기와로 연이은 처마, 밀도 높은 기둥들을 보면서 정밀하면서도 웅장한 전통사찰 건축기술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잘 보이는 아름다운 황금탑은 절 뒤꼍에 서 있었다. 탑에 가까이 가니 탑의 기단 처마에 매달린 풍경들이 마치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과 같다. 바람이 불때마다 풍경이 쨍강쨍강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법당의 검은 기와지붕과 용마루에 금장을 한 용머리와 잉어꼬리와 코끼리. 늦은 오후의 햇살이 금장을 한 잉어 꼬리에서 반짝 튀었다. 

절을 나와 홍차오공항으로 오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였다.

첫째가 이름과 자리를 바꾸고, 여러 차례 무너지고 지어지기를 거듭하면서 존재하는 절의 크기와 외양이 주변에 있는 현대 빌딩들과 잘 어울려 섞여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빌딩들은 대자본의 돈으로 짧은 시간에 지었지만 절은 방문객의 입장료와 시주 등 푼돈과 기도로 천천히 지어졌다는 것. 빌딩들은 파산하고 노후화가 되면 헐리겠지만 이 절은 기도와 발원으로 오래 건재할 것이다. 

두 번째는 황금탑 아래 쌓여있는 녹슨 쇠붙이와 자재와 폐목들이었다. 쓰레기도 눈에 띄었다. 탑을 보수하지 않으면 아름다운 황금탑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폐목을 둘 수밖에 없고 쓰레기를 모아둘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겉에 드러난 것만 보지, 겉을 만드는 수고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세 번째는 용마루에 얹어 놓은 금장 잉어꼬리에서 반짝하고 튀던 햇빛이다. 아마 인생은 한 순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다. 그 반짝하는 순간은 아무도 잡을 수 없다. 아니라면 100세 인생 속에 빛난 순간도 잠시라는 것을 암시하는 지도 모른다.

나는 절 마당가 옥바위 뒤에 쌓아놓은 <지장보살본원경> 한 권을 기념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정안사에서’라는 시를 써서 강원도에서 내는 월간 <태백>에 보냈다.

※ 필자는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 산문집 <맑은 슬픔>, 시창작론 <이야기기 있는 시창작 수업> 등을 냈으며 윤동주문학대상,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했다. 

[불교신문3266호/2017년1월18일자] 

공광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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