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온갖 꽃을 채집하듯 재물을 얻으라”

효도ㆍ보시도 시원하게 할 수 있어 

“재물 있으면 한량없는 복 얻을 것”

증일아함경 등 초기경전 언급 많아

 부처님은 <별역잡아함경>에서 “벌이 온갖 꽃을 채집하듯이 밤낮으로 재물을 얻으라”고 설하셨다. 처음에 이 구절을 접했을 때 ‘어쩌다 한 번 말씀하신 거겠지’라고 생각했으나 유사한 구절이 반복해서 나오자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별역잡아함경은 재가자들은 물론이고 스님들도 잘 읽지 않는 초기불교의 경전이다. 우리가 많이 읽는 <금강경>, <법화경>, <반야심경> 같은 대승불교 경전에 비해 초기불교의 경전들은 세련미가 떨어지고 다소 투박하다. 문헌학적 연구에 의하면 대승불교 경전들은 비록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고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처럼 서술되어 있으나 부처님이 쓰신 것 같은 형식을 빌어서 후세의 불교인들이 서술한 것이다. 비록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경전은 아니지만 불교교리에 기반해 쓴 경전이므로 불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초기불교 경전은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경전이므로 ‘부처님 직설’이라고 하며 부처님의 말씀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경전이다. 초기불교 경전에는 돈에 관한 구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대승불교 경전에는 돈에 관한 구절이 거의 없다는 것도 재미있는 차이점이다. 부처님이 경제에 대해 많이 강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제자들은 경제의 중요성을 간과했거나 경제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서일까? 여하튼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나 초기불교 경전을 제외하고는 경제에 대한 구절이 거의 없다. 어쩌면 그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와서 오늘날 불자들도 경제와 불교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정말 경전에 돈을 많이 벌라는 구절이 있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재물은 은유적 표현이므로 돈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불교에서 가장 강조하는 깨달음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앞뒤 구절과 문맥을 보면 너무나 명백하게 돈과 재물을 직접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돈을 버는 다양한 방법, 목축, 상업, 금융업, 부동산 임대업 등에 관해 설하고 계신데 깨달음을 내포하는 은유적 표현이라고 해석한다면 억지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

부처님은 왜 돈을 많이 벌라고 하셨을까? 누구나 돈을 좋아하지만 돈이 좋은 것이라 돈을 많이 벌라고 하신 것일까? 그렇다. 부처님은 돈이 좋은 것이니 열심히 돈을 벌라고 하셨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부처님은 <증일아함경>에서 ‘재물을 현재에 가지면 한량없는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설하셨다. 돈이 왜 좋은가하면 돈이 많으면 복 받은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옷 입고 사람들에게 베풀 수도 있고 효도도 쉽게 할 수 있고 보시도 시원하게 할 수 있다. 얼마나 좋은가. 우리는 이렇게 사는 사람을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생각하고 정신적인 것만 강조하고 물질이나 경제는 더러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불교가 가장 경계하는 흑백논리다. 돈 그 자체는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우리가 더럽게 사용하고 깨끗하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뿐이다. 더럽게 벌면 더럽고 깨끗하게 벌면 깨끗하다. 돈을 탓하고 억지로 가난해질 필요는 없다. 가난해도 돈에 대한 집착이 크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가난 그 자체가 불교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과 태도에 따라 돈이 더럽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하다. 우리는 돈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을 이미 잘 알고 있지만 괜히 돈을 멀리하고 고상한 척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돈은 좋은 것이니 많이 벌라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에 불편해 하는 걸까? 어쩌면 돈에 대한 인간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은 ‘돈의, 돈에 의한, 돈을 위한 세상’이다. 누구나 속으로는 ‘돈, 돈’ 하면서 아닌 척 고상한 척 하는 것은 현대인이 처한 경제문제를 정직하게 해결하는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불교처럼 돈이 많으면 좋은 것이며 복 받은 것이니 꿀벌처럼 밤낮으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자세가 바람직한 자세이다. 불교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금욕적이고 무소유의 종교가 아니라 돈과 경제에 대한 적극적이고 시장친화적인 종교이다. 불교를 통해서 21세기 시장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해보자.

[불교신문3266호/2017년1월18일자] 

윤성식 논설위원·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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