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구 행렬, 조계사 청와대 지나 광화문 광장으로

청운동사무소에서 영결식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는 운구 행렬.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스스로 몸을 불사른 정원스님 영결식이 오늘(1월1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스님을 따르던 활동가들을 비롯해 범불교시국회의 소속 스님들과 시민들이 스님의 마지막을 지켰다.

‘민주정의평화의 수행자 정원스님 시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11시30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서울 조계사로 이동했다. 장례위는 조계사에서 범불교시국회의 스님들 집전으로 노제를 지낸 뒤, 조계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고인을 따르던 스님과 활동가들은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 앞에서 묵념을 하며 고인을 애도했다.

조계사에서 정원스님 노제가 열렸다.
조계사 일주문 앞에 마련된 정원스님 영정
조계사에 들어오는 운구 행렬.
범불교시국회의 스님과 스님을 따랐던 활동가들이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스님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범불교시국회의 스님들이 운구 행렬을 따랐다.

노제를 마친 운구 행렬은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로 향했다. 이어 스님이 생전 자주 외치던 “박근혜 즉각 구속하라” “사드배치 중단하라” “한일위안부합의 무효” 등이 써진 만장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으로 출발했다. 200여 명의 참배객이 운구 행렬을 따르며 고인과 동행했다.

오후2시 열린 영결식에는 400여 명의 시민이 함께했다. 범불교시국회의 소속 조계종 사회노동위 부위원장 도철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스님이 모셨던 부처님께서도 한 사람의 민중이었으며, 귀천 없이 오로지 민중들을 위해 길거리로 나오셨던 분”이라며 “비록 정원스님의 육신은 떠났지만 마음만은 광화문 광장에 남아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정원스님 곁을 지키며 시민사회활동을 펼쳐왔던 활동가들은 "큰스님"을 외치며 오열했다. 박교일 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 상임대표는 “지난 7일 22시30분경 큰스님께서는 세월호 1000일 집회가 끝난 후 광화문 열린시민광장 나무 밑에서 마치 부처님의 모습으로 소신공양을 통해 원적에 드셨다”며 “스님께서는 본인의 죽음이 민중의 승리가 돼야 한다는 가르침을 남기셨다”고 회고했다.

영결식은 추모 묵념, 추도사, 추모공연, 추모시 낭독 등으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곧이어 운구 행렬은 고양 벽제승화원으로 향했으며, 정원스님 유해는 화장돼 서울 금선사에 모셔질 예정이다. 

정원스님은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촛불시위에서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소신공양을 시도했다. 스님은 전신에 2~3도 화상을 입고, 인근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이틀 만에 원적에 들었다.

정원스님은 소신공양을 시도하기 직전인 7일 오후8시2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촛불이 기필코 승리하기를 바라오. 박근혜와 그 일당들을 반드시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의 정의가 바로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촛불은 가슴에서 불붙여 활활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안녕. 부디 승리하여 행복해지기를...”이라는 글을 남겨 소신공양을 암시하기도 했다.

정원스님은 1980년 범어사에서 벽파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1987년 환계제적원을 제출해 조계종에서 제적됐다. 서울의 한 사찰에서 주석하며 위안부 문제 해결, 촛불시위 활동 등을 펼쳐왔다.

추모사 하는 도철스님.
헌화하는 시민들.
영결식에서 염불하는 사회노동위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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