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현장스님 지음, 책읽는섬


명당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강론을 통해 청빈의 삶 제시한

법정스님의 가르침 담아…

 

“따스하고 만족하는 마음으로

단순하고 검소하게 살라”

 

법정스님의 글과 글씨

그리고 편지 통해 전하는

현대인을 위한 ‘위로’

“암 세포와 싸우는 동안, 64킬로그램이었던 법정스님의 몸무게는 45킬로그램까지 내려앉았다. 병상에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육신이 거추장스럽다. 빨리 번거로운 거 벗고 다비에 오르고 싶다.’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을 극히 싫어했던 스님은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된 것을 무척 거북해 했다.”

1975년 봉은사에 머물던 법정스님이 손병철 박사에게 보낸 글과 그림. ‘다경에 이르기를 차는 바위틈에서 자란 것이 으뜸이요, 자갈 섞인 흙에서 자란 것이 그 다음이라 하더라’는 내용이다.

법정스님이 병상에서 있던 어느 날, 전남 보성 대원사 회주 현장스님이 속가 어머니와 함께 법정스님을 찾았다. 속가 인연으로 치면, 법정스님은 현장스님의 삼촌뻘 이었다. 법정스님은 현장스님의 어머니에게 “나 보고 싶으면 불일암으로 오라”는 말을 남겼다.

법정스님이 떠나고 어느새 7년이 흘렀다. ‘법정스님의 향기가 그립다’는 현장스님은 본인이 소장한 자료를 대중을 위해 풀어놨다. 1997년 12월14일 명동성당에서 가진 법정스님의 강론과 스님이 쓴 붓글씨, 그리고 스님이 지인과 주고받았던 수 십 통의 편지다. 특히 명동성당 축성 100주년을 기념해 가진 강론은 이해인 수녀를 통해 구해 복사해 보관하던 내용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일수록 우리가 각성해야 할 것은 경제 때문에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인간존재입니다. 너무 경제, 경제 하면서 인간의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양심이 마비되고 전통의 가치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삼스럽게 가난의 덕을 배우고 익힐 때가 됐습니다.”

당시는 사상 유래없던 IMF로 인해 경제적 한파가 몰아치던 시기다. 그 위기의 대안으로 스님은 소유물을 줄이는 맑은 가난, 청빈의 삶을 소개했다. 청빈을 위해 첫째 따스한 가슴을 지닐 것, 둘째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닐 것을 말한다. 그리고 “청빈의 덕을 쌓으려면 단순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을 들일 데 없으니 둘러놓고 보리라는 시조가 있습니다. 문명은 사람을 병들게 하지만, 자연은 사람을 거듭나게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 때 사람은 시들지 않고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현장스님이 정리한 명동성당에서의 강연은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가르침이다. 지금 한국 경제의 어려움에 대해 ‘제2의 IMF다, 1997년 보다 더 경제가 어렵다’고 말한다. “이럴 때 일수록 욕망을 반성하고, 인간의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라”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더욱 와 닿는 이유다.

현장스님은 “법정스님은 붓글씨 쓰는 것을 좋아했다”고 소개한다. 지인들이 찾아오거나 편지를 보낼 때 종종 붓글씨를 곁들였다고 한다. 2장에서 현장스님은 법정스님의 글씨를 소개한다.

“달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달이 물밑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조차 없네. 대원성도 이같이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신년 초에 스님을 찾은 한 신도에게 전한 글이다. 스님의 평소 성품과 수행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세 번째 장은 편지글이다. 여러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 가운데 현장스님이 세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을 뽑았다. 1993년 동안거 결제일에 상좌인 덕현스님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법정스님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덕현에게. 다시 겨울 안거를 맞이하게 되었다. 혼자서 지내는데 고생이 많을 줄 믿는다. 수행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어차피 홀로 할 수밖에 없다. 홀로 지내는 시간에 충만된 시간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홀로 지내더라도 자신의 질서 안에서 지낸다면 덕을 갖추게 될 것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떠나고 없지만, 법정스님이 남긴 향기는 아직도 진하게 전해진다.

[불교신문3266호/2017년1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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