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과 오신채 없이 보름 살기 기자 체험기

육식과 오신채를 잠시 끊어보기로 한 건 해외출장에서 만난 두 불자 때문이다. 30년 이상 육식과 오신채를 먹지 않고 참선수행을 해왔다는 보살님들은 점심식사로 고기와 마늘이 들어간 음식이 나오자 끼니를 건너뛰었다. 굶으면 굶었지 육식과 오신채는 먹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제때 식사를 못해 배가 고플 것이 분명한데도 차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래는 두 분을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기자님도 한번 해봐요. 건강에도 참 좋고 정신도 맑아져.” 

이 체험기는 육식과 오신채 없이 사는 식습관이 다이어트나 건강에 ‘좋다 나쁘다’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체험 전 자문을 위해 만난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식단이 갑자기 바뀌면 체중 감량 효과는 나타날 수 있으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 식단에 적응을 하게 되면 다이어트와는 상관없다”며 “부족한 단백질과 지방을 콩이나 들기름과 같은 식품으로 대체해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면 건강에도 무리가 없다”고 했다.

부처님 법은 어찌 보면 굉장히 어렵고 고상하지만 알고 보면 일상적인 삶 속에 있다. 육식과 오신채 없이 사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스님들이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불편들이 있다. 외식이 불가피할 때면 도시락을 싸서 다니거나 이마저 준비하지 못하면 끼니를 거르는 수행자도 있다. ‘고기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인생, 한번쯤 육식과 오신채 없이 살아보기(12월5일부터 19일까지)로 했다. 손만 뻗으면 먹을 것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 직장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야근과 회식문화에서,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 1일차

복병은 바로 찾아왔다. 회사에서 맞는 점심시간, 메뉴 고르는 것부터 난관이다.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새싹비빔밥 한 가지. “파마늘 들어가지 않은 메뉴는 없나요?” 한창 바쁜 점심시간, 진상손님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다행히 나물이 들어가지 않은 비빔밥이라 끼니는 때울 수 있지만 자꾸만 손이 김치로 가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젓가락만 들었다 놨다하며 애먼 숟가락만 씹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첫날 저녁부터 빠지기 힘든 약속이 잡혔다. ‘한국불교기자협회의 밤’, 1년에 한 번 있는 행사다. 풍성한 뷔페식 요리를 눈앞에 두고도 샐러드만 골라 담자니 먹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괴롭다. “다이어트 하세요?” “더 드세요” 소리가 쏟아진다. 평소 같으면 몇 접시는 먹어치웠을 텐데 이날은 두 접시에서 멈췄다. 허기진 배를 쥐고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서 두부를 꺼내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 3일차

습관처럼 들르던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고르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즐겨먹던 과자와 음료수 뒷면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쓰인 성분표에는 젤라틴이나 탈지분유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다. 입에 달고 살던 초콜릿은 포기해야 했다. 심지어 젤리에도 돼지고기 성분이 함유돼 있을 줄은 몰랐다. 감자칩 대신 말린 고구마를, 음료수 대신 물을 먹었다. 

# 7일차

체험 후 처음 맞는 주말이다. 고기 먹을 자격이 있다며 삼겹살에 소주, 치킨에 맥주로 1주일을 보상받았던 예전이다.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 폭발할 것이 뻔했다. 대체재를 찾아야 했다. 아침으로 올리브유를 듬뿍 두르고 토마토를 잔뜩 넣어 스파게티를 해먹었다. 점심에는 된장찌개와 호박전, 나물반찬을 해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예전 같았으면 고기를 먹느라 반도 먹지 못했을 밥 한 공기를 다 해치웠다. 채식을 하면 살이 빠진다는 건 다 편견이다.

저녁 약속이 있어 이태원으로 나갔다. 당분간 채식을 한다고 했더니 “네가?”라는 기가막히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기름기 잔뜩 있는 육식 위주의 이국적 요리가 주를 이루는 맛집 즐비한 이태원 거리에서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한참을 헤맸다. 지척에 식당을 놔두고 먹을 것을 찾아 40분을 방황한 끝에 채식전문 빵집을 찾아냈다. 수제 햄버거와 바비큐가 먹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을 끌고 가 통밀 100%로 만든 빵과 풀떼기를 뜯고 있자니 친구들의 따가운 눈빛이 느껴졌다. 그래도 오랜만에 먹는 빵이라 기분은 한결 나았다. 

# 10일차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험을 알리지 않기로 했지만 원칙을 지키는 것은 어려웠다. 점심 때 취재차 나갔다가 오랜만에 반가운 지인을 만났다. “밥 먹고 가라”는 권유를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지인은 몸보신을 시켜준다며 삼계탕집에 데려갔다. 닭을 푹 삶아 우려낸 뽀얀 국물, 마늘이 잔뜩 들어간 빨간 깍두기가 나왔다.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미안해하면서도 “왜 그런 고생을 하냐”고 타박을 줬다. ‘유난떨지 않기’로 했지만 유별한 사람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소금을 반찬삼아 밥 한 공기를 꾸역꾸역 넣었다.

# 12일차

식단에 몸이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크게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 만나기는 여전히 두려웠다. 일반 식당에 가면 민폐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함께 간 사람이 표현은 안해도 골칫덩이 취급받기 십상이다. 인터넷을 뒤져 채식전문 식당을 찾아냈다. 그런데도 “밥 먹자”고 먼저 말하기 껄끄럽다. 일반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채식식당은 ‘가격은 비싸고 맛은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럴 바에 차라리 혼밥(혼자먹는 밥)이 편했다. 

수소문해 찾아낸 채식전문 식당에서 혼밥을 했다. 짭조름한 꼬시래기, 고소한 무들깨탕, 풋풋함이 살아있는 취나물, 흙향이 느껴지는 돼지감자장아찌, 양념으로 뒤덮여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음식이 아닌 재료 본연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밥상을 받았다. 향긋한 풀 향과 바다 내음은 지금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자각하게 했다. 자연스레 과하게 담지 않게 됐다. 밥 한 톨 남기는 것이 아까워져 그릇을 싹싹 비웠다.

# 15일차

체험 마지막날, 그간 고생했으니 고기를 사주겠다며 선배가 불고기 정식을 시켜줬다. 신기하게도 고기에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김치는 너무 달고 짰다. 들깨로 심심하게 간을 한 고사리 무침에 자꾸 손이 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랜만에 배가 꽉 찼다. 더부룩함도 같이 왔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간식을 사러 간 편의점에서는 원재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는데” 하면서도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자꾸 찾아보게 된다. 

‘채식 하니 1주일 만에 -3kg’ 뭐 이런 걸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보름동안 몸무게 변화는 거의 없었다. 나름대로 영양소를 골고루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탈모 증상도 생겼다. 때때로 몰려오는 익숙치 않은 허기는 헛헛한 마음도 들게 했다. 

‘육식과 오신채 없는 식단’의 가장 큰 장점은 음식에 대한 집착을 없앤다는 것이다. 보름 동안 배가 불러 괴로웠던 적은 없었다. 자극적 조미료와 기름기를 뺀 정갈한 식단은 폭식과 과식을 막았다. 더불어 작은 티끌 하나에도 천지의 은혜가 있고 만인의 노고가 있음을, 지금 이 순간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피게 했다.

우리는 늘 건강을 위해 뭔가 특별한 것을 먹고 좋은 것 나쁜 것을 가린다. 마른 체질로 타고나지 않은 이상 해마다 다이어트를 계획하고 도전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음식은 참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고 즐기는 것이다. 다만 맛에 집착하거나 습관에 사로잡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게 되면 그때는 음식이 음식이 아니라 집착임을 알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육식과 오신채 없이 산다는 것은 불편하다. 또 다시 진상 민폐녀로 전락하고 싶진 않다. 그럼에도 욕심이 생긴다.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는 것,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아는 것, 더불어 건강과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한번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찰음식은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고, 버섯과 다시마, 재피, 들깨 등 천연 조미료를 사용해 영양상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풍미를 더한 것이 특징이다. 자료협조=한국불교문화사업단

 ‘채식과 오신채’

사실 불교는 육식과 오신채를 금하고 있지 않다. ‘수행자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세간의 시선은 오해다. 율장에 육식과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금한다는 규정은 없다. 다만 수행하는 스님과 재가자 중에는 일상에서 육식과 오신채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법도에 따라 육식보다는 채식이 생명을 존중한다는 면에서 조금 더 낫고, 향과 맛이 강해 정신과 육체를 탁하게 하고 욕정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오신채는 되도록 자제하는 것이 수행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도 단계가 있는데 가장 윗 단계인 비건(vegan), 즉 엄격한 채식주의자는 멸치 한 마리도 먹지 않는다. 꿀도 마찬가지다. 벌꿀이 생산한 부산물이기 때문에 동물성분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물성 식품에는 동물로 만든 음식, 동물로부터 나온 유제품, 동물성분을 물에 넣고 끊인 국물도 포함된다. 

그러나 부처님은 어느 음식을 가려 ‘먹지마라’ 하지 않으셨다. 수행자들은 그저 수고한 이들의 노력과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며 적당한 양만을 먹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을 지키며 살아갈 뿐이다. 8년 전부터 수행 방편의 하나로 오후불식을 하고 있는 변택주 작가는 “부처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오신채보다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를 먹지 말라고 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불교신문3263호/2017년1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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