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경선회’ 이름으로 철야참선법회 봉행

(耕禪會, 낮에 밭갈고 밤에 선수행)  

사미계를 받고 어언 40년 세월이 흘렀다. 효광스님은 봉암사 태고선원, 상원사 청량선원, 칠불사 운상선원 등 전국 제방 선원서 정진한 수좌다. 지난 21일 동짓날 팔공산 자락엔 부슬부슬 겨울비가 내렸다. 조용하고 맑은 스님은 따끈한 팥죽 한그릇을 권했다.

대중 다양성 인정·수용해서

원융화합으로 구현하는 ‘叢林’

간화선 종장 종정예하 주석도량

禪 근간으로 실천불교 ‘지향’

“주지(住持) 살라 하면 옛 스님들은 달릴 주(走)에 갈지(之)자를 써놓고 도망갔다죠. 도량수호하고 대중외호하는 주지소임이 수행에 걸림돌이라지만 심부름한단 일념으로 9개월째 이 자리에 있습니다.” 지난 3월 팔공총림 동화사 주지로 부임한 효광스님은 이달 초 화재로 잿더미가 된 대구 서문시장을 갔다. 동화사 스님들과 신도들이 십시일반 모은 구호금을 챙겨들고 시장 상인들의 거친 손을 잡아주며 아픈 마음을 위로했다. 서문시장은 대구시민들 삶의 터전이자 생업 현장이다. 

이들의 상실감이 동화사에 어찌 전해지지 않겠나.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부처도 아프다는 유마경 가르침이 현실이 됐다. “세상일이란 내 일 남 일 구분 없어요. 모두다 우리들 일입니다. 삼계육도 모든 일이 전부 내 일이라 여기고 보살행을 펼친 관세음보살, 문수, 지장보살을 생각해 보세요. 세상일이 내 일이라고 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세상의 주인입니다.” 

효광스님은 팔공총림 주지로서 신념과 원칙이 있다. 총림이 갖는 의미를 꿰뚫어 ‘화합’을 도모한다. “숲은 많은 풀과 나무가 어지러이 얽혀있는 듯하지만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큰 삼림을 형성합니다. 총림(叢林) 역시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여 아름다운 원융화합으로 구현하여 수행정진하고 전법도생하는 회상입니다. 총림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인류의 삶이 화합을 바탕으로 한 ‘사바총림’이 돼야 합니다.” 팔공총림에는 최근 재임한 진제 종정예하가 주석한다. 종정예경실장을 지내며 가까이서 종정예하를 시봉해왔던 효광스님은 “종정예하를 모시는 일이 어렵고 힘든 줄로 알지만, 사실은 간명직절(簡明直截)하고 단박한 사유세계를 갖고 계셔서 늘 걸림없고 만인을 편안하게 해주신다”며 “미국서 돌아온 다음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마당울력을 하실 정도로 청안하신 어른”이라고 귀띔했다. 

효광스님은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의 종지종풍에 걸맞게, 동화사 역시 선(禪)을 근간으로 전법과 포교를 지향하고 있다. 지난 10월 동화사에서 일주일간 개최된 ‘2016 간화선 대법회’는 종정예하를 중심으로 한 간화선 종장들이 선의 골수를 그대로 드러낸 뜻깊은 법석이 됐다. 날마다 수천명의 불자들이 법당에 넘쳐났고 7일 내내 동화사에 머무르며 선수행을 실천한 불자들도 적지 않았다. 수행에 목마른 불자들을 위해 매년 동안거 하안거엔 동화사 시민선원을 문열고, 매주 주말엔, 낮에는 밭을 갈고 저녁에는 선을 한다는 의미로 경선회(耕禪會)라는 이름을 걸고 철야참선법회도 봉행한다. 

출가하지 않은 범인들에 있어 선(禪)은 어떤 가치를 지닐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면 세상 살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하물며 농사짓고 고기 잡는 데에도 이치를 알아야 하지요. 천만가지 이치가 혼돈하는 가운데 가장 참다운 이치는 무엇일까요. 바로 ‘나’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결국 나를 간파하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나라는 주체를 정확히 간파하면 도둑질을 해도 ‘제대로’ 한다는 말입니다.” 스님은 서로 자기종교를 내세우는 세태를 꼬집으며, “가톨릭을 신앙하든 기독교를 신앙하든 이슬람을 신앙하든 내 본체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제대로된 종교인이 된다”며 “내 본체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 싸움만 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했다. 내 본체는 결국 ‘불이(不二)’에서 비롯된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만 불법(佛法)에선 원수를 설정하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 세상이 그대로 하나인데 하나인줄 모르고…. 내가 웃어야 거울이 웃지 내가 안웃으면 거울은 천년만년 안웃어요. 세상이 나의 거울입니다.”

동화사는 매일 사시마다 대중 스님들이 모여앉아 발우공양을 한다. 발우를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긴다. “이 공양이 오기까지 수없이 논갈고 밭갈기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벌레들이 희생되었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의 존엄성까지도 칭송하고 거기에 감사의 마음을 느끼고 그로인해 내가 받은 빚을 갚아야 한다”고 발원하며 공양을 한다. 

이같은 선사상을 중심으로 한 자기 존재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왜 굳이 불교인만 알아야 하는가, 스님은 반문했다. 스님은 손등의 피부를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이게 내것이 아닌데 철석같이 내것인줄 알아요. 부모님에게 빌렸다면 내것이라 해보겠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조상대대로 올라올라 가서 비와 바람 물과 햇살까지 신세를 지면서 잠시 빌려 쓰는 것입니다. 하찮은 물건도 빌려 썼으면 돌려줘야 하거늘, 이 몸을 80년 90년 빌려쓰고 돌려달라 하면 잘 썼다고 반납해야지, 왜 안돌려주려 발버둥 칩니까. 그것이 바로 부도입니다. 건네지(渡) 않으니(不) 부도(不渡)나는 것이죠.” 

이 대목에서 스님은 ‘자기를 속이지 말라(不欺自心)’는 성철스님의 법문을 언급했고, 자신에게 속아서 세상이 이 지경이 됐다며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시국을 걱정했다. 이 몸뚱이도 진정 내 것이 아닌데,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나 사욕, 명예가 내 것인양 서로 탐하는 세상이다. 

스님은 “선수행을 함으로써 자기 정통성이나 정체성 자기 존재의 가치 의미를 확립한다면 결국 모두가 행복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길로 우리 모두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무둥지 돌덩어리를 깎고 다듬어 불상으로 조성하면 우리는 그 앞에서 목이 아프게 염불하고 다리 아프게 절을 합니다. 불상 옆에 부처님처럼 청정한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가 있어도 그 아이에겐 고개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부처님 형상을 한 불상 앞에선 오매불망 엎드려 있습니다. 뭔가 잘못됐지요? 불상에 절을 하라 하는 것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진짜 부처님’을 바로보기 위함이란 걸 왜 알지 못할까요?” 

효광스님은 최근 대구불교총연합회 차원에서 대구불교 활성화를 위한 포교연찬회를 열었다. 스님은 ‘수행 위주의 실천불교’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다(非知之難 行之爲難)고 합니다. 세상 가장 먼 거리는 이 머리에서 손까지의 거리 아닐까요. 실천보다 더 구체적인 행이 있을까요.” 

스님은 음력 초하루가 아닌 매월 첫날 대중법문을 설한다. 선(禪)이란 것이 그리 어렵고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수행법보다 간명직절하고 일상이 그대로 선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조계종 포교원이 인가한 최고 등급의 대구불교대학은 역사와 전통을 자부하면서 많은 ‘엘리트 불자’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선다회 관음회 선우회 등 크고작은 신행단체들 역시 동화사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내몸맘쉼’, ‘내몸그린’ ‘산사愛’를 주제로 한 특색있는 템플스테이로 ‘3년 연속 템플스테이 우수사찰’로 지정돼 있는 동화사다. 

마지막으로 효광스님에게 한해를 보내는 불자들 위한 법문을 청했다. “탐심의 벽, 진심(瞋心) 치심(癡心)의 벽 수면욕 재산욕 명예욕의 벽…. 첩첩이 쌓아서 가려져 있는 벽을 과감하게 깨부숴 버림으로써 수천광년의 허공과 하나가 되는 위대한 현장이 깨달음입니다. 그 현장에 당당하게 바로 설 때 우리는 진정한 인간으로 완성됩니다.”

[불교신문3261호/2016년12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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