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를 신고 절에 가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절에 가기 전에는 목욕탕에 가야만 하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그렇게 알았다. 사찰예절 등 불교라는 종교의 형식에 대해서만 그냥저냥 숙지했다. 그렇지만 불교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랐었다.
어떻게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됐느냐고 누군가 물으면 “전생부터의 인연”이라고 답한다. 5명의 딸을 두신 할아버지께서 아들을 얻겠다고 울산 문수암에서 100일 기도를 하셨다. 기도에 열중하던 도중 달빛에 비친 개 그림자를 보시고 ‘절에 웬 개가 있지?’라고 생각하셨단다. 잠시 후 한 스님이 지나면서 ‘금방 호랑이가 지나갔는데 별일 없었느냐?’고 물으시는 걸 듣고서야 개가 아닌 호랑이가 법당 앞에 앉아 있었음을 알게 되셨다고 한다. 그 후 아버지를 얻으시고는 ‘문수’라 지었다. 어쩌면 나는 문수보살의 아들이겠다.
불교계에 종사하게 되면서 불교와 가까워졌다. 대학생 시절 참배한 법주사와 인연이 되어 군을 제대하자마자 법주사에 들어가 종무소 소임을 봤다.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에서 포교사로 일했고 전북 완주 송광사 상임포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종무원으로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기만 했다. 그러나 불교에 평생을 걸어야 할지는 반신반의하는 상태였다. 지난 2002년 부안 내소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게 되면서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사찰에서 묵으며 스님들의 생활을 체험하는 템플스테이는 전 국민적인 문화상품으로 자리했다. 템플스테이 실무자로 일하다 보면 템플스테이의 매력이 비단 수사(修辭)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진실로 다가온다. 산사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는 외국인들을 숱하게 봤다. 그들은 한국불교가 가진 위대한 종교성에 진심으로 감복한 듯했다. 종무원으로서의 자긍심과 희망을 느꼈다. 무엇보다 사찰문화를 외국인과 비불교도들에게 널리 알리는 포교활동은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어느새 미래의 확실한 비전으로 자리했다.
템플스테이 진행이란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휴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일이다. 지금도 절에 갈 때는 구두보다 운동화를 신으려 한다.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참배하고자 한다. 제대로 된 불자인가에 대해 아직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나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을 반갑게 맞아 이들을 친절하게 안내할 때만은 오롯한 불제자임을 절감한다. 내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남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보람으로 오늘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불법은 바쁘게 뛰는 나의 운동화 속에 있는 것 같다.
[불교신문3260호/2016년12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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