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머문 그 곳] <20>속리산 문장대 일출

속리산 문장대에서 바라보는 일출. 매일 생기는 일출이지만 매번 그 모습이 다르다. 속리산 화북탐방지원센터에서 문장대까지 3.3km, 두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어두운 하늘 가득 별이 있다. 차가운 새벽 산을 찾았다. 경북 상주에 위치한 속리산국립공원 하북탐방지원센터에 오전 5시에 도착했다. 문장대(文藏臺)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어두운 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탐방센터를 300m 오르니 성불사 삼거리가 나온다.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적은 빛에 의존해 걷다보니 귀가 더욱 예민해진다. 낮에는 잘 듣지 못했던 간간히 만나는 계곡에서 들리는 물소리, 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선명히 들린다. 어두운 숲에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나면 닭살이 돋으면서 덜컥 놀라곤 한다. 혹시 내가 다가가는 걸 모르는 야생동물이 있을 까 싶어 헛기침을 하면 산을 올라간다. 어둠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은 숨이 차올라오면서 사라졌다. 헉헉 크게 숨을 쉬며 걷다보니 더 이상 어둠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랜턴을 끄고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가쁜 숨소리가 잦아들자 산은 완전한 적막에 들어간다. 어둠 뿐인줄 알았는데 산 능선에 거대한 바위가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실루엣처럼 보인다. 어두운 숲속에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온을 찾는다. 

문장대에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을 걷다보면 절묘하게 바위틈으로 난 길을 만난다.

다시 문장대로 향한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바람소리가 더욱 거세진다. 흑백사진 같기만 하던 하늘은 어느 색 천연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해가 떠오르는 지점은 점점 노란색으로 변해간다. 산행 2시간 만에 문장대에 다다랐다. 문장대는 큰 암봉(巖峰)이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 속에 감춰져 있어 운장대(雲藏臺)로 불리다가 속리산을 찾아온 세조가 이곳에서 오륜삼강(五倫三綱)을 명시한 책이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 불쑥 솟아오른 거대한 암봉인 문장대.

1054m 높이의 문장대는 속리산 주봉인 천왕봉(1,058m)보단 높이는 약간 낮지만 조망으로는 더 유명하다. 금세라도 해가 모습을 보일 것 같지만 아직 일출시간 까지는 20여분이 남았다. 해뜨기 전 몇 분간 우주가 선보이는 아름다운 공연을 감상한다. 360도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는 문장대에서 처음으로 해 뜨는 반대편 하늘에도 붉은 띠가 생기는 것을 보았다. 눈이 호강에도 불구하고 추위에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린다. 사방에서 귀를 베어가듯 날카롭게 바람이 분다. 장갑 낀 손끝도 얼어버렸다. 발을 동동 구르며 공연의 하이라이트 순간을 맞는다. 산등성이 너머로 겨우 고개만 살짝 내밀었지만 붉은 빛 사방으로 뿜어져 나온다. 문장대를 날려버릴 듯 강한 바람소리를 배경음악으로 2016년 12월2일 해가 떠오른다. 매일 펼쳐지는 황홀한 우주의 공연에 겨우 바람에도 흔들리는 존재가 한 없이 부끄럽다. 

감동적 일출을 맞이한 후 바람을 피해 문장대를 내려왔다. 많이 지쳤지만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 천왕봉으로 향한다. 문장대에서 입석대, 비로봉을 지나 천왕봉까지 3.4km 능선구간은 이 산이 왜 속리산(俗離山)이라 불리는 지 알려준다. 능선길은 능선의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가면서 신비한 풍경을 선사한다. 바람이 사라지고 추위가 가셨다. 격렬했던 문장대에서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산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너무나 평온하게 아름다움을 뽐낸다. 

시대를 거슬러 풍류를 아는 선비라면 지금의 이 순간을 맞는다면 시 한수 읊지 않았을까. 

속리산 주봉인 천왕봉.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고/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마치 내가 지은 듯 한 번 읊어 본다. 조선 선조 때 <중용(中庸)>을 800번 읽은 임제(1549~1587)라는 선비의 지은 시이다. 관리들이 서로를 비방 질시하며 편을 가르는 현실에 깊은 환멸을 느꼈던 임제는 벼슬을 멀리하고 명산을 찾아 방랑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 길을 걸으면 속리산(속세를 떠난 산)에 대해 쓴 글이다. 몇 번의 오르막 내리막을 거쳐 능선길을 돌아가니 천왕봉에 도착한다. 속리산 주봉인 천왕봉에는 문장대보다 훨씬 작은 표시석이 서 있다. 유명한 산이라 엄청 큰 정상표시석이 있을꺼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작은 표시석이 정겹다. 천왕봉에서의 조망도 문장대 못지 않다. 겹겹이 펼쳐지는 푸른 산들 사이를 하얀 안개가 장엄하여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세심정에서 법주사까지 지난 9월 새롭게 조성된 세조길.

산을 내려가 법주사로 향한다. 법주사까지 5.5km로 문장대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세심정까지는 산길로 가고 이 후는 평탄한 포장길이다. 사실 이 딱딱한 포장길을 걷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지난 9월에 세심정부터 법주사까지 우회탐방로인 ‘세조길’이 조성됐다. 조선 세조가 스승인 신미대사가 주석하던 법주사 복천암에 올랐다는 그 길이다. 2.35km길을 계곡과 저주지 옆으로 나무데크와 야자열매로 만든 폭신한 매트가 깔렸다. 세조길에는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하산하면서 무릎이 불편했는데 폭신한 매트 위를 걸으니 통증이 덜하다. 법주사에 닿았다. 1980년대만도 수학여행 등의 최적지는 속리산 법주사였다. 많게는 연간 250만명이 몰렸다. 하지만 서해안고속도로, 고속철도 등 타 지역에 교통이 좋아지자 방문객 수가 많이 줄었다. 법주사(法住寺)는 인도에 유학을 다녀온 의신(義信)스님 또는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대사에게 법을 받은 영심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법주사 청동미륵대불과 팔상전.

‘속세를 떠난 산에 법이 머무는 사찰’, 법주사는 그 이름만큼이나 신비한 지형 속에 자리하고 있다. 기암괴석으로 둘러싼 속리산 가운데 커다란 땅은 마치 절을 세우라고 남겨진 듯하다. 산에 있는 대찰임에도 불구하고 입구인 금강문부터 대웅보전까지 신기하게도 평지이다.  만큼이나 많은 성보들이 전해온다. 압도적인 25m 크기의 청동미륵대불과 더불어 신라시대 석등의 백미인 국보5호인 쌍사자석등, 법주사의 가장 커다란 상징인 국보 55호 팔상전, 법주사의 규모가 한 눈에 보이는 국보 64호 석연지 등 국보를 비롯 보물 12점 등 다양하고 아름다운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참배하고 나오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오늘 걸었던 연꽃 같은 바위 봉우리들이 법주사를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불교신문3256호/2016년12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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