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자 그 분은 

아예 컨테이너 하나를 

텃밭 가장자리에 앉혔다

흰 와이셔츠와 기지바지는

퇴직 이전 직장생활의 

어떤 상징 같았다 

가을이 되자 아내로 보이는 

한 여인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타났다…

내가 사는 아파트 옆에 작은 텃밭 하나가 있다. 이 텃밭의 주인은 외형으로 보아 아마도 명예퇴직을 한 분이 아닌가 싶다. 이 분은 지난해 봄부터 적극적으로 텃밭 농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텃밭에 나타났을 때는 흰 와이셔츠에 기지바지 차림이었다. 이 분은 책상머리에나 어울림직한 예의 그 복장으로 땀을 뻘뻘 흐리며 한바탕 전쟁을 치르다 가곤 했다. 흰 와이셔츠에 기지바지 차림으로 농약을 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덩달아 나까지도 알 수 없는 우울 속으로 끌려들어가곤 했다. 그 분에게는 텃밭농사가 일종의 화풀이 같은 것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였다.

여름이 되자 그 분은 아예 컨테이너 하나를 텃밭 가장자리에 앉혔다. 그 사이에 흰 와이셔츠는 바뀌었지만 기지바지는 여전했다. 기지바지는 퇴직 이전 직장생활의 어떤 상징 같았다. 처음에는 구두까지 신고 왔으니, 고무장화를 신은 그의 모습은 농사꾼으로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었다. 그 분은 컨테이너 안에 각종 농기구와 농약들을 들여놓을 때마다 흐뭇한 표정을 짓곤 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러다 대농을 꿈꾸는 게 아닌가 싶어 실로 걱정스러워지곤 했다.

가을이 되자 아내로 보이는 한 여인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텃밭에 나타났다. 그 여인은 말없이 밭고랑을 따라 농작물을 수확했다. 그 여인이 텃밭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아, 아마도 남편의 느닷없는 농사전쟁이 마뜩치 않았던 것으로 여겨졌다. 두 분 사이에 늘 침묵의 도랑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내 짐작이 그리 틀린 것만은 아닌 듯 싶었다. 비록 기지바지로 지은 농사이지만 소출은 넉넉해 보였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이 부부 덕분에 대파와 오이, 그리고 옥수수가 자라는 장관을 보는 즐거움을 톡톡히 누렸다.

그런데 올해에는 남편의 텃밭 출입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들인 공력에 비해 소출이 적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강행군으로 체력이 고갈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텃밭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의 그 뜨거웠던 열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에 뒤늦게 동참한 그의 부인은 텃밭 농사에 재미를 붙였는지 남편보다 더 자주 텃밭을 찾았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를 끝으로 명예퇴직을 한 아버지께서도 퇴직 이후에 선산에 딸린 작은 텃밭을 가꾸는데 매진하셨다. 나는 가까이 산다는 죄로 수시로 불려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공력 대비 소출을 말씀드리며 툴툴거리곤 했다. 매년 전쟁을 치르시던 아버지께서는 기력이 떨어지자 텃밭에다 채소 대신 매실나무와 드릅나무를 심으셨다. 죄 없이 불려 다니던 어머니께서도 한시름을 놓으셨다. 며칠 전, 어머니께서 냉동고에서 꽝꽝 얼린 개드릅을 보내주셨다. 문득 그 기지바지 아저씨가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불교신문3255/2016년12월7일자]

이홍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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