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침묵과 설법은 삿됨을 경계

<증일아함경> 지주품에 산골에서 헌 옷을 기우며 지내는 수행자에게 ‘타인을 위하여 설법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궁금해 하며 질의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수행자(智者)를 찬탄하며 말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가르침을 펴지 않습니까? 결박(번뇌)을 끊고 거룩한 행동을 하는데도 어찌하여 잠자코만 계십니까?(智者所歎說 何故不說法 壞結成聖行 何為寂然住)”

상대를 찬탄하며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상은 약간의 불만도 섞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시 가르침을 펼 능력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불도의 수행은 혼자만의 것이 아닌데, 왜 깨달음을 홀로 즐기는가(法樂)”하는 힐문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출가자가 깨달음을 성취하고 성스러운 행위를 하면서도 타인을 위하여 가르침을 펴지 않는다면 재가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궁금할 것입니다. 교단의 구조를 출·재가자로 나눈다면 재가자가 시주하는 재시(財施)로, 출가자는 불도를 수행하며 법시(法施)로 회향해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달리 말하면 재가자가 삼보전에 올리는 공양으로 안온하게 수행하는 출가자는 그 과정이나 결과를 다시 세상에 펴야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질문에 담긴 의미를 잘 알기에 이렇게 답합니다.

“부처님과 또 사리불과 아난과 균두반과 그리고 여러 존장들께서 묘한 법을 잘 펴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항상 스스로 힘써 삿된 법을 일으키지 말고, 또 성현의 침묵을 배우라는 이치를 잘 관찰하였기 때문에 침묵을 지킨다.”

이 말에 따르면 존자께서 묵언했던 것은 수행자의 본분을 다하지 않거나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성현의 침묵’을 잘 알기에 그랬던 것이며, 이와 유사한 말이 <법원주림>에도 있습니다.

“고요히 나무 아래 앉아 마음은 열반에 들어 참선하나 게으르지 말라. 말 많은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靜住空樹下 心思於涅槃 坐禪莫放逸 多說何所作).”

말이나 글로 묘한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 온전치 못하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약속된 언어나 문자만으로 다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자의 침묵은 단순히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 그 자체일 수 있습니다. 마치 <유마경>에서 차별의 원리로 평등의 경지(不二, 超越相對之差別 而入於絶對平等之境地)를 묻는 것에 유마힐이 침묵으로 답변한 것처럼 말입니다.

수행에선 침묵보다 ‘묵언’이라는 표현을 즐겨 씁니다. 글자로 보면 ‘말하지 말라’의 의미이나, ‘진실하여 헛되지 않은 말이 아니면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래는 참된 말, 실다운 말, 그와 같은 말, 거짓이 아닌 말, 다르지 않은 말을 한다”는 <금강경>의 구절에 견주어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말을 하라고 해도 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무수한 말이 오고 갈 수밖에 없다면 “말이 착하고 정당하면 천리 밖에서도 호응하고, 그렇지 못하면 천리 밖에서도 어기려 든다(言善則千里之外應之 言不善則千里之外違之)”는 조언을 유념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말이나 행동에서 가끔 주(主)와 반(伴)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예를 들면, 환자가 의사보다 병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를 더 잘 알듯이 할 때입니다. 비록 병원장이더라도 진료 받을 땐 담당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상식이라서, 치과의사가 ‘아’하면 지위에 관계없이 ‘아’하고 입을 벌려야 합니다. 교리로 설명하면 <십현문(十玄門)>의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의 응용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주인공이나 조연으로 역할이 바뀌더라도 자신은 그대로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항상 주(主)를 고집하고 반(伴)을 꺼리는 것은 마치 빈 배에 마음만 높은 것(空腹高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달콤한 것은 가까이하나 쓴 것은 외면합니다(邪言魔語肯受聽 聖敎賢章故不聞). 이같은 삿된 법을 경계한 존자는 할 일을 해 마친 뒤에도 산골에서 한가로이 헌 옷을 기우며 설법처럼 침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불교신문3255/2016년12월7일자]

범수스님 금정총림 범어사 교무국장 삽화 용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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