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는 미국에서 전세계 사람 교화하겠다”

망중한을 즐긴 일타스님. 불교신문 자료사진

선교율 수행은 물론 대중을 자비로 인도하며 일생을 보낸 동곡일타(東谷日陀, 1928~1999)스님. “탐진치 때문에 어둠의 세상은 계속된다”고 설한 일타스님은 “계행을 지키지 않으면 불자 자격은 상실된다”며 엄정한 수행을 강조했다. 제10교구본사 은해사(주지 돈관스님)는 지난 11월17일 ‘동곡당 일타대종사 17주기 추모다례’를 엄수했다. 스님의 기일에 즈음해 <일타화상수월명(日陀和尙水月銘)> 등을 참고하여 수행일화를 살펴본다.

○…“불자들의 세 가지 법공양이란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 보리심(菩提心)을 성취하는 공양,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공양이니라.” <화엄경>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일타스님은 1985년 새해를 맞아 불자들에게 <화엄경> 구절을 전하며 “계율을 준수하고 생활화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라”고 설했다. 스님은 “부처님이 ‘깬 사람’이라면 중생은 ‘꿈 속에 있는 사람들’이다”며 “우리의 신심이나 신앙심이 생시(生時)에 지극하고 간절했다면 잠자는 꿈 속에서도 반드시 일여(一如)함을 얻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모두 이름만 불자가 아닌, 세 가지 법공양에 상응하는 참 불자가 되어 봅시다.”

○… 불감(佛龕)을 조성할 때 남은 나무조각과 톱밥, 망치, 펜치, 드라이버, 현금 100만원과 500원짜리 동전 7개. 일타스님 금고에 들어 있는 물품의 전부였다. 스님은 길가에 버려진 포장지도 주워 모을 정도로 평생 청빈하게 살며 정재(淨財)를 아꼈다. 한번 쓴 편지봉투도 다시 사용할 만큼 절약이 몸에 배여 있었다. 상좌 혜국스님(충주 석종사 선원장)은 <해인>지에 실린 글에서 “(은사) 스님을 시봉하면서 편지봉투 사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면서 “스님은 사바세계의 연꽃이었고, 삶 자체가 법공양이셨다”고 회고했다. 

○… “다음 생에는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 스님이 되어 전 세계 사람을 교화하겠다.” 노년에 찾아온 병마와 싸우던 일타스님은 내생에는 미국에 태어나 세계인을 부처님 제자가 되도록 법을 전하겠다고 발원했다. 스님은 젊은 시절부터 태국, 인도, 유럽, 미주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는 과정에서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대한 남다른 원력을 세웠다. 1980년 미국 LA 고려사에 주석하며 포교한 것을 비롯해 1992년에는 호주와 뉴질랜드를 순회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했다. 일타스님의 대발원은 입적하는 순간까지 변함이 없었다. 스님의 임종게 가운데 “만리(萬里)에 맑은 바람 오랜 거문고를 타는구나(萬里淸風彈古琴)”라는 구절도 이같은 원력을 상징적으로 전하고 있다. 

○… 일타스님은 불자뿐 아니라 사회 인사와도 교유가 잦았다. 스님의 인품과 수행에 감화 받은 내외국인 가운데 직접 찾아오거나 아니면 서한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웃종교인들과도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었던 스님은 김동한 신부의 10주기를 맞아 한편의 글을 썼다. 이 글에서 스님은 “우리는 곧 다른 종교인 사이라는 속된 생각 같은 것은 조금도 없이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누었다”면서 “(우리는) ‘신부님은 서양식 중’, ‘스님은 동양식 중’ 이라며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 일타스님의 가문은 불연(佛緣)이 아주 깊다. 친가와 외가는 물론 스님의 속가 집에서 일을 하던 이들까지 모두 49명이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됐을 정도이다. 큰외조부(추금스님), 큰외삼촌(천봉스님), 둘째외삼촌(영천스님)을 비롯해 아버지(자응스님), 어머니(성활스님), 형님(월현스님) 등이 출가의 인연을 맺었으니 전무무후(前無後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가 지금 귀의하옵는 공덕으로 어서어서 화두의 의단(疑團)을 타파하여, 복덕과 지혜를 성취하고,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여지다. 한량없는 불조(佛祖)와 수없는 선지식을 친견하옵고, 배우고 또 익혀서 억겁의 공덕을 원만하게 성취토록 하여지이다.”1988년 8월 세수 60세를 맞이해 작성한 일타스님의 ‘입원문(立願文)’ 가운데 일부이다. 14년 전 인도성지순례시 전염된 간염을 방치하여 간경화로 병마와 마주했지만, 오직 수행에 집중하며 재발심(再發心)의 인연으로 삼았던 것이다. 본래 한문으로 된 글이지만 <일타화상수월명>에 한글로 옮겨진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다시는 번거로운 세상 일에나 사마외도(邪魔外道)의 길에나, 사생칠취(四生七趣), 모든 허망한 세계에 빠지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정법 속에 튼튼한 장부의 몸 받아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되, 나의 이름만을 듣거나, 나의 얼굴만을 보거나, 나의 이야기만을 듣고서도 깨달음을 얻어서 대지혜를 성취토록 하여지이다.”  

■ 어 록

“사바란 무엇입니까. 온갖 잡동사니가 모여 사는 게 사바입니다. 당연히 질투심 경쟁심 갈등이 만연하게 됩니다. 남보다 더 많은 권력과 재산을 가지려고 탐진치 삼독심을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솔직히 인간들이 이를 모르지 않습니다. 알면서도 탐진치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니 어둠의 세상은 계속 됩니다.” 

- 1997년 5월 20일 <불교신문> 

“불자된 이는 누구나 이러한 계율을 준수하고 이것을 생활화하여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고 조심해서 방일(放逸)을 멀리해야만 합니다. 만일 계행을 지키지 않고 무시한다면 이 사람은 벌써 불자의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 <일타화상수월명>

“화두를 하다가 무엇을 알았다든지, 보았다든지, 생각이 났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가 공부에 방해되는 망상심의 일환인 환상에 불과한 것이니, 절대적으로 일체 취착(取着)하지 말아야 합니다. 최상의 초월적 깨달음의 방법인 화두공안 하나만을 간절히 잡고, 끝까지 집중시킬 뿐입니다. 이 화두공안 하나로 큰 깨달음인 견성(見性)을 하고, 성불을 하고, 일체중생을 제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 1980년 ‘잭슨 박사에게 보낸 편지’

“불법은 계율(戒律)과 함께 영원히 빛을 발하고, 대승불교는 대승보살계와 더불어 수명을 같이 한다. 우리나라 불교는 대승불교이다. 대승불교이기에 그 교단은 보살 불자가 중심을 이루어야 하고, 그 대중은 마땅히 보살계를 받아 올바로 지녀야만 하는 것이다.” 

- <법망경 보살계> 자서(自序)

“기도는 실천이지 이론이 아니다. 하지만 법에 맞지 않는 기도는 올바른 결실을 이루어낼 수가 없다. 따라서 기도 방법을 제대로 아는 것은 성취만큼이나 중요한 일인 것이다. … 기도를 할 일이 있으면 법에 맞게 기도를 하고, 천도를 할 일이 있으면 법에 맞게 천도할 것을 … 그렇게 할 때 이 세상은 맑아지고 이 땅은 부처님 땅으로 바뀌어 간다.” 

- <생활 속의 기도법> 서문 

“깨달음의 세계나 정토의 세계는 책 속이나 정신 속에서만 추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지난한 노력과 실천행이 뒤따를 때라야 활짝 열립니다. 자등명 법등명하면 심신이 청정해지고 이웃이 깨끗해지며 나라가 행복해집니다. 내가 이웃이며 이웃이 나라는 사실을 알 때 비로소 공업중생(共業衆生)의 공동체 정신을 깨칠 수 있는 것입니다.”

- <일타화상수월명>

“무엇인가를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은 언제나 순수하고 완전히 비어 있으며, 완전히 비어 있기 때문에 철저히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물며 세속의 티끌을 벗어나는 불도(佛道)를 처음 배움에 있어서랴.”

- <시작하는 마음> 서문

 

■ 행 장

1928년 9월2일(음력 8월1일) 충남 공주에서 부친 김봉수 선생과 모친 김상남 여사의 2남2녀 중 3남으로 출생했다. 속명은 김사의(金思義). 공주 본정공립보통학교 졸업. 1942년 양산 통도사에서 고경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했다. 1943년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1945년 통도사립중학교를 졸업했다. 1949년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이후 응석사, 범어사, 성주사 선원에서 금오, 동산, 성철스님 회상에서 안거를 성만했다. 1953년 통도사 천화율원 자운율사 회상에서 율장전서를 열람하고 중수계법을 정립했다. 1954년 하안거 해제 후 7일간 3000배 기도를 하고 연지연향(撚指燃香) 발원을 했다. 1955년 태백산 도솔암에서 결사 정진한 것을 비롯해 화엄사, 해인사, 극락암, 불국사, 지족암, 칠불암 등 제방 선원에서 수행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교육위원, 법규위원, 감찰위원, 역경위원, 우리말 팔만대장경 편찬위원, 해인총림 율원장, 해인사 주지 등의 소임을 보았다. 또한 단일계단 전계대화상, 조계종 원로의원, 해인총림 수좌, 율주, 조계종 전계대화상, 은해사 조실로 스님과 불자들을 인도했다. 1999년 11월 29일(음력 10월22일) 미국 하와이 와불산 금강굴에서 입적했다. 세수 71세, 법납 58세. 법명은 일타(日陀), 법호는 동곡(東谷), 삼여자(三餘子), 퇴설(堆雪).

[불교신문3255/2016년12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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