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오조홍인대사께서 주석하시며 동산법문을 펴시던 황매산 오조사(五祖寺)를 참배한 적이 있다. 산문 입구에 작은 누각이 있는데 들고 날 때의 현판 글씨가 다른 게 이채롭다. 산문에 들 적에는 ‘放下著(내려 놓아라)’이고, 다시 세상에 나갈 적에는 ‘莫着過(그르쳐 가지 말라)’라고 쓰여 있었다.

산사를 오고 갈 때의 마음가짐조차 이러하거늘, 한 나라의 대통령 또한 이러해야하지 않을까? 대통령이 돼 청와대에 들 적에 이미 번다한 인연일랑 모두 방하착, 내려놓아야 했다. 그랬다면 어찌 지금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었겠는가. 아니 매순간 ‘고개 숙여 발밑을 보라(照顧脚下)’는 심정으로 살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러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분명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 ‘그르쳐 가지 말라(莫着過)’는 고구정녕한 말에 따라 정도(正道)를 가야 할 것이다. 계속 민의를 거스른다면 개인이나 국가 모두에게 불행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예로부터 군왕(君王)은 부끄러움을 모른다(無恥)고 했던가! 수많은 촛불 민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위정자의 오만과 독선 앞에 아연질색하게 된다. “이게 나라냐?”는 국민들에게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하는 지도자를 가진 국민은 불행하다. 거대한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처럼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만용을 부린다면 그 말로는 자명하다.

유가 글에 “하늘의 뜻을 순명하는 자는 살고,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자는 망하느니라(順天者存 逆天者亡)”라고 했다. 민심은 곧 천심인 것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어 가라앉힐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온 산하를 붉게 물들이던 만산홍엽도 다 지고 나니, 그야말로 체로금풍(體露金風)의 계절이다. 이렇듯 자연과 인과의 법칙은 너무나 분명하다. 이젠 ‘버림’과 ‘떠남’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 더 이상 욕되고 부끄럽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세월호 참사 추모곡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부르는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며 가슴을 울린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불교신문3254/2016년12월3일자]

진광스님 논설위원·조계종 교육원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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