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스님의 선시감상

마음활짝

주경스님/마음의숲

“사탕을 끝까지 먹지 않아도

달고 맛있는 줄 알게 되듯

선시 한편의 맛을 보면 

이미 그 끝맛을 알게 된다”

역대 고승들의 선시 가운데

마음 주제로 64편 선별해

생활속 언어로 풀어 설명

“인장어일표 오반포일우 갈래다삼완 불관회유무(寅漿一杓 午飯飽一盂 渴來茶三椀 不管會有無). 아침에는 죽 한 그릇, 점심에는 밥 한 그릇에도 배부르다. 목마르면 차 세 그릇 우려 마시니, 깨달음이 있고 없곤 상관 안 한다.”

고려 16국사의 한명인 원감국사의 선시다. 이 시를 주경스님은 “깨달음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한 것,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선시에 대한 감상을 전한다.

“아침에 죽 한 그릇, 점심에 밥 한 그릇, 그리고 저녁에는 차를 우려 마시며 사는 것. 보기에는 소박해 보이지만 수많은 일과 관계의 만남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시에 배워야 할 것은 단순히 적게 먹는 것이 아니라 ‘만족’입니다.”

불교신문 사장 주경스님이 선사들의 시를 골라 해설을 달았다. 마음을 인정하다, 마음을 비우다, 마음을 돌아보고, 쉬게 하며 성찰하는 글을 주제별로 가려 뽑았다. 한시의 내용을 번역 소개하고 독자가 먼저 느낌을 적은 다음, 스님의 느낌도 전해주는 형식을 띤 책이다.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한시는 어지간한 한문 실력으로 풀어내기에 어렵다. 한자 한 글자마다 뜻을 지니고 있으며, 고사를 통해 단어의 유래를 모르면 오역을 하기 쉽다. 특히 선시라 불리는 스님들의 시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의 마음과 기재, 세상에 대한 법문이 담겨 있어 더더욱 해설이 까다롭다.

주경스님이 선사들의 시 가운데 ‘마음’에 관한 내용 64편을 뽑아 번역했다. 기존에 번역이 좋은 작품은 그대로 전문을 소개하며 그 뜻에 담긴 느낌을 전하고 있다. 주경스님은 “경전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가르침을 종종 시로 정리하셨다. 선사들도 법문을 할 때 게송을 외우곤 했다. 불교는 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사탕을 끝까지 녹여먹지 않아도, 입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달고 맛있는 줄 알게 되는 것처럼, 선시도 한편의 맛을 보면 이미 그 끝맛을 모른다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선시 예찬론을 전했다.

“마음에 작은 티끌 하나도 일으키지 말라.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 진짜를 잃어버린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알고자 하는가. 꽃 떨어지고 새 우는 온 산에 봄이로구나.”(심두불허도섬진 상섭사유변실진 요식서래단적의 낙화제조만산춘 心頭不許到纖塵 裳涉思惟便失眞 要識西來端的意 落花啼鳥滿山春, 의첨선사 지음) 의첨스님(1746~1796)은 조선 중엽 출가해 당대 많은 고승들에게 가르침을 얻은 선사다. 이 시를 인용하면서 주경스님은 “마음을 흔드는 것은 무수한 잡념이다. 티끌처럼 작은 생각도 수행자에는 큰 방해가 될 수 있다”며 “생각만 바꿔먹으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도 굳이 끌어안고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을 바꾸면 달라질 일이다. 마음 속 작은 티끌 하나도 일으키지 말아라”고 말한다.

➲ 주경스님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수덕사로 출가했다. 서산 부석사 주지, 조계종 기획실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불교신문사 사장과 동국대학교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다음 생에 계속됩니다> <지혜의 길> <나보다 당신이 먼저입니다> 등 다수의 에세이 법문집을 출간한 바 있다.

선시에는 옛 고승들의 깊은 사색이 그대로 농축돼 있다. 은유를 통해 깨달음의 세계를 전달하면서, 한편으로 삶의 길을 일깨워주는 것이 선시의 특징이고 매력이다. 주경스님은 옛 고승들의 선시 가운데서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적합한 글을 선별해 소개한다.

1부 ‘마음을 인정하다’에서 4부 ‘마음을 쉬게하다’까지 인용한 선시가 ‘마음을 돌아보라’는 가르침을 담았다면, 5부 마음을 수행하다와 6부 마음을 성찰하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마음을 닦아라”는 가르침을 담았다.

“내가 말한 모든 법은 다 군더더기니, 오늘 하루를 묻는가. 달이 일천 강에 비치리.”(오설일체법 도시조병무 약문금일사 월인어천강 吾說一切法 都是早騈拇 若問今日事 月印於千江, 효봉스님)

효봉선사의 선시를 통해 주경스님은 삶의 자세를 이야기한다.

“마음에 있는 말들을 쏟아내고 나면 한결 홀가분해질 것 같았지만, 왠지 모두 쏟아내고 나면 가슴이 더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허둥지둥 주워 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뱉어낸 군더더기 말들입니다. 돌아보면 나에게 진정으로 위로가 된 것은 의미없는 말보다 따뜻한 눈빛이었고, 다정한 손길이었고, 환한 미소였습니다.”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누군가의 위로를 받으며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 그때가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주경스님이 선사들의 시를 통해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다.

[불교신문3253호/2016년11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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