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유억불 속 조선불교, 억압아닌 다른 시각으로 봐야”
“숭유억불 속 조선불교, 억압아닌 다른 시각으로 봐야”
  • 이경민 기자
  • 승인 2016.11.1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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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회연구소, ‘조선시대의 국가와 불교’ 학술세미나
불교사회연구소가 지난 16일 동국대 불교학술원 2층 강의실에서  ‘조선시대의 국가와 불교’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조선 전기 국가와 불교, 16세기 조선의 정치·사회와 불교계’를 주제로 발제한 손성필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사진 오른쪽)은 "조선시대 국가 정책을 모두 불교에 대한 억압 또는 이념에 의한 탄압으로 치환해버리는 연구 태도는 지양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 속에서 억압 당하고 배척 받았던 조선시대 불교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선시대 불교가 국가로부터 일방적인 억압을 당했다는 일반적 이해와 달리 당시에는 다양한 부류의 스님이 존재했으며 이에 따른 국가의 승려정책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불교사회연구소(소장 법안스님)가 지난 16일 동국대 불교학술원 2층 강의실에서 개최한 ‘조선시대의 국가와 불교’ 학술세미나에서 제기됐다. 이날 ‘조선 전기 국가와 불교, 16세기 조선의 정치·사회와 불교계’를 주제로 발제한 손성필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은 “불교사를 논할 때 조선시대를 완고한 유교 중심적 양반 사회로 일반화 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며 “실상은 조선의 정치와 사회가 계속 변화하고 구 시기별로 양상과 성격이 달라짐에 따라 승정체제, 사찰, 승려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발전해갔다”고 주장했다.

손 선임연구원은 승정체제의 개혁은 불교계 전반에 대한 억압이 아닌 국가체제 정비와 국가재정 확충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던 점, 적어도 1650여 개 사찰이 당시 조선사회에 고르게 분포돼 향촌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던 점 등을 들어 16세기 조선불교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봤다. 손 선임연구원은 “국가가 승려의 출가를 규제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불교의 추종자이기 때문이라기보다 농사에 종사하지 않고 군역을 부담하지 않는 계층이었기 때문”이라며 “도한 이 시기 불교계는 인적, 물적 기반을 토대로 다량의 불서를 간행하며 여말선초의 전통을 계승하고 새로운 전통을 창출했을 뿐 아니라 청허계, 부휴계 문파는 사족풍과 마찬가지로 16세기를 거치면서 점차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조선시대 국가 정책을 모두 불교에 대한 억압 또는 이념에 의한 탄압으로 치환해버리는 연구 태도는 지양돼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논의는 조선의 정치와 사회, 그 변화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정병삼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당시 상황을 불교계의 안정적 운영이라고 일반화하기에는 다소 무리인 면이 있다”며 “이제까지의 불교계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고 실제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만큼 유교 보급의 사회적 영향력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새로운 이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는 이병희 한국교원대 교수, 김용대 동국대 HK교수, 이종수 순천대 HK교수가, 토론자로는 장지연 대전대 교수,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노대환 동국대 교수가 나서 조선 초기, 전기, 중기, 후기 불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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