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동 기자 사찰숲길을 거닐다]⑩ 영주 부석사 선묘길
[여태동 기자 사찰숲길을 거닐다]⑩ 영주 부석사 선묘길
  • 영주=여태동 기자
  • 승인 2016.11.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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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단풍길따라 ‘선묘낭자’ 봉황산에 드네

佛法 호위한 선묘낭자의

아가페적 사랑이야기 감동

일주문서 천왕문 이르는 

은행 숲길 가을정취 더해

무량수전서 바라보는 

소백산 능선 경관도 일품 

①부석사 일주문과 천왕문 중간에서 바라본 일주문 전경으로 늦가을 은행나무 숲길이 환상적으로 형성돼 있다.

“지금부터 1300여년 전 한반도라는 지구의 한 곳에 ‘신라’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 사는 ‘진리’를 궁금해 한 ‘의상’이라는 스님이 ‘무명(無明)’ 같았던 이 깊고 깊은 소백산 줄기에 자그마한 법등 하나를 밝혔습니다. 그 법의 뜻을 따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 지켜 온 절이 부석사입니다.”

②일주문을 지나면 만나는 전각인 천왕문.

영주 부석사 조실 근일스님이 몇 해 전 부석사에 관한 책을 내며 쓴 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이나 안양루에 의지하여 어깨를 걸고 한 덩어리가 된 저 무한한 산줄기와 수많은 은하가 깃든 이 깊은 우주를 들여다보는 일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의 드라마에 참여하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달을 수 있으니까요.” 

영주 부석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지형 가람이다. 산 구릉에 사찰이 건립되었는데도 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산과 잘 어울려 사찰이 서 있다. 그래서 부석사가 서 있는 봉황산이 더 멋있어 보인다. 사람이 만든 절이 자연과 어울려 하나인 것 같기도 하고 전체인 것 같기도 한다. 곧 부석사는 봉황산과 ‘하나 속에 전체인 듯, 전체 속에 하나인 듯’ 존재한다. 이 사찰을 창건한 의상스님의 화엄사상처럼.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담겨 있고, 온갖 우주도 한 티끌 속에 담겨 있듯 산과 절은 하나인 듯 전체인 듯 서 있다. 

③안양루 난간 아래에서 바라보는 부석사와 소백산 능선 전경.

저녁녘에 도착한 부석사에서 켜켜이 바라다 보이는 소백산 능선이 마음을 아련하게 한다. 고향이 영주인 유년시절 찾았던 ‘부석사의 추억’이 낡은 필름처럼 지나간다. 철없던 시절 부석사 자그마한 전각에 그려져 있던 ‘선묘낭자’를 보며 ‘절에서도 여인을 모시고 숭상을 하는가?’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다. 첫사랑이 가슴 한켠에 들어올 시기였으니 그저 에로스적인 사랑만을 떠올린 중학생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 부석사 설화를 읽으며 의상스님과 선묘낭자의 국경을 넘는 아가페적인 사랑이야기를 이해하면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안양루, 뜬돌(浮石)이 마음속에 촉촉히 젖어들었다. 

어느 유명작가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 글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 부석사는 그렇게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내 삶에 남아 있었다. 매년 가을 노랗게 쏟아지는 은행잎을 보면 부석사가 그리워졌다. 드디어 올 10월 끄트머리 날을 잡아 선묘낭자가 진리를 찾아 끝모를 길을 헤매다가 영혼이 귀착한 영주 부석사를 찾았다. 

부석사박물관 김태형 학예연구사를 친구로 둔 덕분에 부석사를 자세하게 안내받는 호사를 누렸다. 해가 지기 전 낙엽과 어우러진 봉황산에 떨어지는 빛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뷰 포인트를 내놔 봐.” 전문가 수준의 사진을 찍는 그는 멀리서 온 친구를 말없이, 웃으면서 맞으며 카메라를 메고 무량수전 언저리를 맴돌았다. 

⑤무량수전 우측 북쪽에 위치한 선묘각 내부 모습. 

사찰을 찾은 지 30년이 지났건만 며칠 전 갔다온 사찰처럼 낯설지가 않다. 무량수전 옆 3층석탑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에 어른거리는 소백산 능선이 저녁안개와 섞여 물결처럼 흘러다닌다. 

한창 단풍철이라 방문객들과 사진작가들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부석사의 풍경을 카메라와 휴대전화에 부지런히 주워 담는다. 어떤 자리에서 찍어도 작품이 될 법한 경치를 내어주는 덕에 모두가 사진작가가 된 듯 분주하다. 

석양에 비친 무량수전과 안양루, 그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이 오랫동안 마음을 사로잡는다. 흐릿한 해가 구름에 잠기자 안양루 앞의 석등이 검게 실루엣으로 남기도 한다. 해가 다시 나오면 가을정취가 한가로운 무량수전의 윤곽이 천년고찰의 당당한 풍체를 더해준다. 

1300여년 전 의상스님이 부석사를 개창하던 날 일주문의 모습이 문득 궁금하다. 아마도 지금의 일주문보다 훨씬 더 아래에 있지 않았을까. 그곳에는 국경을 넘어 불법(佛法)을 호위하는 신장(神將)이 된 ‘선묘낭자’도 부석사를 호위하며 역사적인 광경을 보지 않았을까. 그때가 가을철이었다면 노란 은행잎이 아니더라도 떨어지는 단풍을 맞으며 개산의 감격을 함께하지 않았을까.

일주문으로 내려갔다. 이곳에서 시작되는 은행나무 숲길은 부석사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길이 되고 있다. SNS가 발달된 요즘 인터넷에는 ‘부석사’를 검색하면 은행나무 숲길이 단골메뉴다.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길 옆을 도열한 은행나무가 사찰 방문객을 반기듯 은행잎을 깔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고 무언의 환대를 한다. 

④소백산 능선으로 석양이 질 때 바라다 보이는 안양루와 석등.

정신없이 황홀한(?) 광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옆에서 부탁하는 사진 한 장도 못 찍어 준다. 저녁 숙소에 들어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는 부석사의 사진이 선묘낭자를 만나는 듯 설렌다. 다음날 새벽 선잠을 떨치고 다시 부석사를 찾았다. 일주문에서 천왕문으로 이어지는 노란 은행나무 숲길을 한번 더 보기 위해서다. 마치 부석사를 사랑했던 선묘낭자가 의상스님이 주석하는 영혼의 안식처를 찾아가듯. 

부석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선묘길’에는 노란 은행잎이 더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의상스님의 ‘일즉다, 다즉일’의 화엄사상이 뇌리에 오롯이 각인된다. 새벽 별빛이 내린 들판에 새벽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새벽빛이 일주문을 넘어오고 있었다. 환영처럼 의상스님이 합장하며 산문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선묘낭자가 의상스님을 호위하는 듯 봉황산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영주 부석사 선묘길

[불교신문3250호/2016년11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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