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실에서 법을 청하다 ] 조계종 원로의원  도문스님

도문스님은 “불교 공부 어려울 것 하나 없다. 나쁜 일 하지 말고 착한 일 하면 된다. 부처님 법을 깨닫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 그거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용성스님 가르침 알리기 위해

공덕비 건립, 책 편찬·배포 등

55년 동안 하나둘씩 유훈 실현

“젊은 사람도 팔십 노인에게도

어려울 것 없는 게 부처님 법 

어느 것 하나 사소한 만남 없어

인연 소중히 생각하고 마음내야”

시간이 날 때마다 용성스님을 알리는 글을 썼다.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책으로 묶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는 인연마다 한아름씩 안겨주다보니 지금까지 배포한 책이 150만권이 넘었다. 용성스님이 남긴 유훈(遺訓)을 받들어 실천에 옮긴지도 햇수로 55년째다. 사람들은 도문스님이 여유가 많아 다양한 유훈 사업을 펼치는 줄 알지만 스님은 늘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밤잠 설쳐가며 열성이다. 

스님의 유훈을 받들어 실천하는 일이 도문스님에겐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도문스님은 한국불교의 대선사이자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었던 용성스님의 법맥(法脈)을 잇는 조계종 원로의원이다. 용성스님의 생가터에 죽림정사를 세우고 용성스님을 기리기 위한 공덕비를 건립하는 등 유훈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소한 만남도 소중한 인연이고 그 인연 따라 마음 하나만 잘 쓰면 좋은 세상이 된다”고 믿는 도문스님을 지난 10월18일 장수 죽림정사의 부산포교당 천마산 중생사에서 만났다.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스님이 나타나질 않았다. 앞서 시작한 법문이 길어진 탓이었다. 스님을 따르는 법사 한 분이 “그저 불교 이야기라면 끝이 없으신 분”이라며 연신 겸연쩍어했다. 짬이 난 틈에 법당을 둘러봤다. 100년도 더 된 주택을 개조한 법당은 걸을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날 정도로 낡고 오래됐지만, 벽마다 빽빽이 들어선 불서들은 먼지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새 것 같았다. 모두 용성스님의 유훈을 담은 책이었다. 

법문을 막 마치고 만난 도문스님이 천진불 같은 미소로 반겼다. 불과 몇 분 전 반나절의 법문을 막 끝낸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문스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용성스님 이야기부터 꺼냈다. “용성진종조사 행적비명, 동헌완규조사 행적비명… 얼마 전 용성조사 오도 130주년을 맞아 공덕비를 또 하나 세웠어. ‘불사성취 공덕비명 건립발원’ 33개월 1000일 기도에 들어간 지도 13개월이 됐단 말이지. 그런데, 용성스님을 잘 아는가?” 

도문스님과 용성스님의 인연은 70여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전라도 지역의 만석꾼이었던 도문스님의 증조부는 용성스님의 독립운동 자금을 몰래 대며 의형제를 맺을 만큼 남다른 친분을 쌓았다. 용성스님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도문스님의 증조부를 찾아왔고, 또릿또릿한 어린 도문스님을 봤다. 용성스님은 그 날 “이 아이를 출가시켜 내 유지를 잇도록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애국심만큼 불심도 깊었던 집안 어르신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만석꾼 집안의 외아들, 6살 나이였다. 

시작은 우연이었을지 몰라도 출가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도문스님은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어린 것이 뭘 알았겠어. 매일 한문공부하고 조선역사 배우고 그랬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고조할머니, 고조할아버지 너나할것없이 나를 잡아놓고 공부를 시켰어. 그래도 코피 한번 안 흘렸어.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공부라면 밤을 새워도 아무렇지 않아.” 

스님은 대중에게 설법을 할 때면 끼니도 잊는다. 불서라도 쓸라치면 며칠 밤을 새는 것쯤은 예사다. 올해로 세수 82세,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나이. 그래도 부처님 법 공부하고 알리는 데는 며칠을 뜬 눈으로 보내고 밥을 안 먹어도 거뜬하단다.  

종일 계속된 법문에 지칠 법도 한데 스님은 힘든 기색 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살아있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도 닦는 것 별거 없고, 불교 공부도 어려울 것 하나 없다. 우리가 숨 쉬고 들이쉬는 바로 이 순간, 악업 안 짓고 선업 짓겠다 마음먹으면 된다. 부처님 법 깨닫고 좋은 일만 해라. 옳은 것 나쁜 것 구별할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 생각도 하지 마라. 그저 내 마음 하나 잘 쓰면 된다. 과거세에서 받은 것이 현재세이고 현재세에서 받은 것이 미래세인 것을 알고 인연을 소중히 여겨라. 젊은 사람도 80살 먹은 노인네도 누구나 알아듣고 행할 수 있는 것이 불교다.” 

“그저 내 마음 하나 잘 쓰면 된다”는 도문스님의 말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도문스님은 “어제까지만 해도 얼굴도 모르던 기자님하고 나하고 지금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데, 이 인연이 어떻게 됐지요? 이 인연은 기자님과 나라는 존재가 지금 이 순간 부딪혀서 나온 것”이라며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인연이 생기면 그 인연을 따라 좋은 마음 내고 도업을 닦으면 된다. 불교 공부 대단한 것 없이 그게 전부다”라고 했다. 

스님이 팔십 평생을 불교에 바친 것은 일체 의심 없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스님은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 자기의 마음을 맑게 하고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을 위해 몸으로써 수고하는 것, 진실하고 성의가 담긴 말을 하는 것, 이것이 모두 선업을 짓는 것”이라며 “모든 사람을 대할 때 기분 좋게 눈웃음 짓고 대하며 생활하는 것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문스님에게 불교는 먼 데 있지 않았다. 스님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인연을 따라 나온 것이니 좋은 인연을 지어 선업을 쌓으면 된다”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악업을 짓지 말고 마음을 깨끗하게 해 실천에 옮기면 성불의 길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게 선업을 ‘행’하는 일이다. 도문스님의 얼굴에선 80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천진난만한 웃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얼굴은 결코 거짓말을 못한다고 했던가. “밥 먹을 때도 그냥 먹지 말라.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먼저하고 수저를 들라”며 맑게 웃던 스님의 얼굴에서 자애로운 부처님의 미소를 봤다. 

 도문스님은 …도문스님은 1935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1946년 대모암에서 만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1960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경주 분황사와 영주 부석사, 공주 마곡사, 의성 고운사, 장성 백양사, 정읍 내장사, 서울 대각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등을 지냈다. 지난 2007년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 품계를 받았으며, 현재 장수 죽림정사 조실로 주석하며 후학을 제접하고 있다.

용성스님의 ‘아난’ 도문스님

용성스님의 맏상좌인 동헌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도문스님은 평생 용성스님의 유훈을 실현시키는 일을 해왔다. 유훈 실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가 1961년이니, 벌써 햇수로만 55년째다. 이제 대중들은 도문스님하면 용성스님부터 떠올릴 정도다.

도문스님은 동헌스님으로부터 용성스님의 유훈 10가지를 물려받는다. 대표적인 유훈은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등 한국 불교의 전래지를 성역화하고 부처님이 태어나고 깨달음을 얻은 인도의 5대 성지를 가꾸라는 것 등이다. 100만권의 경전 번역 및 배포, 100만명에게 계를 줘 성불의 인연을 지을 것 등의 유훈도 남겼다. 

도문스님은 이 뜻을 따라 가야불교 전래지인 경남 창원 봉림산 봉림선당지, 백제불교 전래지인 서울 서초구 우면산 대성사, 신라불교 전래지인 경북 구미 도개면 아도모례원 등을 성역화했다. 부처님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 국제사원구역에 1997년 한국 사찰인 대성 석가사를 건립한 것도 유훈 실현 사업의 일환이다. 

용성스님이 한글로 번역한 <상역과해 금강경> 등 경전 편찬에도 앞장섰다. 스님이 그 동안 배포한 경전과 조사어록만 해도 150만권이 넘는다. 

여든이 넘은 나이지만, 스님은 몸 아낄 줄 모르는 것이 자랑이라면 자랑이다. 스님은 “용성스님 유훈이 실현된다면 평생의 원력을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보시금이 모일 때마다 유훈을 하나둘씩 실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불교신문3247호/2016년1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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