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었다. 지록위마는 <사기(史記)> 진이세기(秦二世紀)에 나오는 고사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것으로 남을 속이려고 옳고 그름을 바꾸는 것을 비유하는 의미이다. 신하나 측근이 윗사람을 농락해 권력을 휘두른다는 뜻도 담고 있다.

“56조 부채는 남겼지만 실패한 자원외교는 아니다”는 MB의 자원외교, “정치개입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는 국정원 댓글사건, “공문서 위조는 했지만 간첩조작은 아니다”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그리고 사상 초유의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 국정개입사건 등에서 보인 말과 행태는 지록위마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럼 2년이 지난 지금은 뭔가 달라졌는가? 졸속으로 급히 합의한 위안부협상으로 받은 돈을 “배상금적 성격을 띤 치유금”이라고 강변하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몇백억원을 몰아준 전경련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낸 돈이다. 강제성은 없었다”고 부인하며, 고(故) 백남기 농민의 주검 앞에 서울대병원은 “사망진단서 지침은 어겼지만 나라면 외인사라고 쓰겠지만…주치의 진정성을 고려해 병사로 결론을 유지한다”고 한다. 같은 모국어이건만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그야말로 ‘지록위마 시즌2’라 할만하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말(言)이 아닌 말(馬)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그 중의 압권은 역시 승마특기생인 한 대학생과 그 어미에 의한 말같지도 않은 말(馬)잔치다. 사슴을 말이라고 강변하면서 그것이 영원하리라 믿는 이들이 문제다. 정말 그들은 국민을 개나 돼지라고 생각하며 또한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까? 불교에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指月之指)의 비유가 있다. 달을 보아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봐서는 끝내 달을 볼 수 없다. 잠시 구름에 가리울 순 있어도 구름 뒤에는 항상 달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말이 더 이상 말이 아닌 시대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다만 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의 입을 빌어 한마디 하고 싶다. “예? 저는 제 입에서 고기를 씹을 때, 홍시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했다고밖에….”

[불교신문3244호/2016년10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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