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음알이는 무명을 더 크게 만들 뿐          

中道 도리 이해되나 체득되지 않는

장벽에 부닥칠 때 비로소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삼법인 사무쳐

진정한 ‘발보리심’이 일어나는 것…

인생에 대하여 회의를 품고 생사문제를 해결하고자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한 사람이라면, 경전 첫 대목에서 벌써 은산철벽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매일 외우는 <반야심경>의 구절구절도 발심한 사람에게는 씹히지 않는 쇳덩이처럼 느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색즉시공’이나 ‘불생불멸’이라는 구절을 속 시원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법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의 설법에 따라 ‘십이연기’를 순관(順觀)으로 관하여, 노사(老死)의 괴로움이 결국 무명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이치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진실된 수행자라면 역관(逆觀)에 접어들자마자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의 대목에서 꽉 막혀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무명이 사라지면 순차적으로 결국 노사도 사라져서 괴로움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만, ‘실제로 무명이 소멸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언어로 전달될 수 없는 것이다. 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해야만 실제로 무명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무명만 소멸되면 순차적으로 노사까지도 소멸될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어떻게 해야 무명이 소멸될 것인가?’ 하는 것은 너무도 현실적인 문제라서, 단순히 연기법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십이연기를 아무리 잘 이해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첫 단어인 ‘무명’에서 꽉 막히는데. 무명의 실체를 이해로써 알고 해결할 수 있는가? 알음알이는 무명을 더 크게 만들 뿐이다. 여기서 발보리심이 시작되고, 사교입선(捨敎入禪)이 일어나는 것이다. 

교학을 잘 이해하면 할수록 실제 수행의 발심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이다. 교리에 대한 이해로써는 순간순간 일어나는 자기마음조차 조복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분별망상의 일이기 때문이다. 

갈애(渴愛) 때문에 고(苦)가 일어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 갈애를 해소할 수 없으면, 양심상 그 앎 때문에 오히려 더 괴로워진다. 조금이라도 자기 내면의 고통에 정직한 사람이라면, 무명업장의 실제적인 소멸이라는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벽으로 다가올 것이다.

깨닫기 전에는 연기법의 진면목을 바로 알기 어렵다. 십이연기는 모든 존재현상이 연기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이것은 외도의 상주론(常住論)과 단멸론(斷滅論)이라는 양극단을 떠난 것이기에 ‘중도(中道)’라고 부른다. 만법은 연기된 것이므로, 상주한다고 할 수도 없고 단멸한다고 할 수도 없어서, 굳이 말하자면 ‘중도’라고나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 ‘중도’는 사무치고 사무쳐서 끝내 통해야 하는 것이지, 이해로서는 도저히 그 실상을 파악할 도리가 없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아가 괴로움을 만들고 그 자신이 그 결과를 경험한다면, 이것은 괴로움이 저절로 생긴다는 것인데, 이것은 결국 상주론이 되고 만다. 자기가 행동하고 다른 사람이 그 결과를 경험한다면 이것은 괴로움이 남에 의해 생긴다는 것인데, 이것은 결국 단멸론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극단을 떠나 중도로써 법을 가르친다.”

연기법은 유무(有無) 단상(斷常)의 양변을 여읜 비유비무(非有非無) 비단비상(非斷非常)의 중도로 이어지는데, 이 중도의 도리는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실제로 체득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해는 되지만 체득되지는 않는’ 딜레마에 부닥칠 때에 비로소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삼법인에 사무치게 되고, 진정한 발보리심이 일어나는 것이다. 

<금강경>에는 이 발보리심이 일어난 수행자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이렇게 ‘연기중도’를 고리로 해서 초기불교는 자연스럽게 대승불교와 이어진다. 

[불교신문3244호/2016년10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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