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모두에게 

프로정신을 요구한다 

프로정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무심한 

일 처리로 허망해진다

힘든 세상이지만 

희망을 찾고 싶다 

어딘가에 희망은 있을 것이다

보름전의 일이었다. 쳐 놓은 그물 세 틀에 광어는 올라오지 않고 해초만 가득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오일장 다녀오는 길에 들었다. 바람 때문에 바다가 워낙 거칠어서 그랬단다. 일기예보가 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냥 듣고만 있기는 그렇고 상태도 알아볼 겸 아내와 함께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최 선장 내외는 하루 종일 서서 해초 제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 내외가 내려갔을 때는 이미 반 이상을 털어내고 있었다. 파래며 청각이며 다시마며 작은 게 따위를 한 마디 말도 없이 떼어내고 있었다. 점심은 컵라면으로 때웠다고 했다. 쓰레기가 더미를 이루고 최 선장은 경운기 적재함 가득 두 번이나 경운기로 실어 날랐다. 최 선장네는 임 선장네와 더불어 내가 이곳 산중에 기거하는데 전적으로 도움을 주는 이웃이다. 

산중 생활의 어려움을 달래주기도 하고 솔선수범해 고쳐주고 농사일도 일일이 가르쳐 주고 챙겨주기에 임 선장에게서 최 선장의 이야기를 듣고 마냥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최 선장은 그런 우리를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이웃 간의 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내심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 흐뭇한 날이었다. 그날 밤 그 작업으로 인해 아내는 허리 병이 도져 꼼짝도 못하고 누워 지샜다. 

그랬는데 어제 또 일이 벌어졌다. 집에서 저녁을 함께 하는데 최 선장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그물 걱정 때문이었다. 아침에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바람이 일고 비가 내리고 험하게 파도가 일었다. 고요한 아침 바다를 보고 일상 하던 것처럼 그물을 세 틀 쳐놓고 들어왔다고 했다. 나도 며칠 전 일 때문에 심히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다음날 오전 풍랑주의보가 해제 되고 최 선장은 그물을 건지러 바다로 나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전화를 하는데 먹을 시간이 없단다. 

점심 먹고 내려와 달라기에 바다로 나갔다. 그물은 온전하지 않았다. 최 선장 형님이 쳐 놓은 그물과 뒤엉켜 있었고 종전과는 달리 꽃게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꽃게 제거 작업을 했다. 광어 잡는 그물에 꽃게며 잡게며 쓰레기들이 붙어 올라왔으니 그들을 제거하는 일이란 여간 힘 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날따라 손님이 와서 나는 일을 마무리 해주지도 못하고 올라왔다. 광어잡이 그물에 해초가 걸려오든 꽃게가 걸려오든 그럴 때마다 최 선장 내외는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바다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오로지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의 운명을 사랑할 따름이었다. 최 선장은 자기의 생애를 글로 써 달라고 할 정도로 일생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부두를 돌아 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일기예보가 조금만 더 정밀했다면 이렇게 선한 사람들이 온종일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을, 누군가의 무감각하고 개념 없이 처리하는 일에 누군가는 허리가 휠 정도로 고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수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철저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해준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더욱 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인가를 절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둘러보았다.

세상은 모두에게 프로정신을 요구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에는 실패하는 것이라지만 그것이 프로정신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무심한 일 처리로 인한 것이라면 더욱 허망할 것이다. 힘든 세상이지만 희망을 찾고 싶다. 희망을 보고 싶다. 어딘가에 희망은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3243호/2016년10월26일자] 


 

이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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